노예로 팔려간 요셉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1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요셉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죠?
그런데 시작은 아주 처참했습니다.
요셉의 집안은 콩을 갈아서 팔던 집안이었어요(다 웃고 있죠? 이거 다 뻥입니다).
요셉의 집안 이야기를 잠깐 해 드릴까요?
엄마는 네명. 배 다른 누나는 다른 족속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그의 오빠들이 여동생을 강간한 민족 남자들을 다 죽였다.
큰 형은 아버지의 첩과 성관계를 가졌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을 때 해산의 고통으로 죽고 말았다.
이런 바람 잘 날 없는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은 더욱 강조된다. 야곱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야곱은 가정에는 소극적인 아버지였다.
디나가 강간 당했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큰아들 르우벤이 자신의 첩 빌하와 성관계를 가졌을 때도 별다른 말을 안했다.
가족들이 볼 때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야곱은 요셉만 편애하는 것이다.
다른 형들은 야곱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어머니들이 사랑 받지 못하는 걸 보고 자랐고, 자연스레 그 어머니들의 자식인 자기들에겐 별다른 관심을 안 보였다.
그러니 매사에 불만이었다.
그런데 요셉은 어땠겠는가?
야곱은 요셉의 어머니 라헬만 사랑했다.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아쉬울 게 없었다.
사랑 받는 어머니의 자녀는 마음이 평온하다(자녀들의 정서를 안정적이게 키우고 싶으면 남편들은 아내들을 많이 사랑해주시고, 아내들은 남편들을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그것이 최고의 교육이다).
그러니 요셉은 까다롭지 않았다. 그러면 당연히 더 애정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야곱이 참 사람이 모자란게 그 편애하는 걸 티를 팍팍 내는 것이다.
야곱은 편애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사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힘으로써 아버지의 편애를 노골적으로 나타냈다.
“이 옷은 소매가 있고 길이는 발목까지 닿았다.”
소매가 달려 있고 기장이 발목까지 오는 옷을 입고, 특히 이 옷이 비싸며 화려하게 장식된 옷이라면, 일하기가 어렵다.
‘너는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된단다. 왜냐하면 네 형들처럼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야.’

본론

여러분. 진짜 속이 뒤집어지는 집안 아닙니까?
형들의 속에는 항상 불이 붙어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이 기름을 붓는 행동을 합니다.
자신이 꿈을 꿨다면서, 꿈 얘기를 해줍니다.
요셉이 눈치가 없는걸까요? 아닐거예요.
요셉은 이 때 십대 후반이었습니다. 눈치는 있었을거예요. 그런데 그 꿈이 하나님이 주신 꿈인 것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일단 말하는거예요. 성경을 보면 요셉의 태도를 알 수 있어요.
창세기 37:6 (NKRV)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청한다는 건, 부탁한다는거죠? 조심스럽게 꿈 얘기를 해요. 꿈 내용이 뭐였죠?
(ppt로 보여줌)
하지만 형들은 이미 요셉의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았어요.
그저 진짜 어이가 없고, 이 녀석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온통 지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형들에게 기회가 온다.
형들이 양을 치러 나갔는데,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로 보낸다.
이것도 참 답답한 일이다. 얼마나 집안에 소극적이었으면, 형들이 요셉을 죽이고 싶어할만큼 싫어한다는 걸 몰랐을까?
요셉을 그 형들에게 홀로 보내다니..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형들이 요셉을 진짜 죽이려 한다.
제일 보기 싫었던 채색옷부터 벗긴다.
그런데 큰형 르우벤이 죽이지 말고 굴에 집어넣자고 한다.
그리고 진짜 황당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요셉을 굴에 집어넣고 그들은 점심밥을 먹는다.
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이다.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굴 아래에서 요셉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들을 했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그 때 이스마엘 사람들이 애굽으로 향하는 걸 본 형들이 요셉을 팔아넘긴다.
여러분.
요셉이 끌려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약 300km를 걸어갔다. 여기 안산에서 대구까지가 한 300km 정도 된다.
여기서 청도까지 걸어가보라고 하면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먼 거리를 걸어가면서 요셉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요셉은 생각보다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기도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가면 갈수록
애굽으로 향하는 것임을 알았을 것이고,
그 애굽 땅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걸 잘 알았을 것이다.
정신을 똑똑히 차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는 내내 기도했을 것이다.
울다가, 지쳐서 졸도했다가, 다시 일어나서 기도했다가, 또 울다가, 기도했다가를 반복하다가 애굽에 도착했을 것이다.
애굽에 도착한 이후의 요셉의 삶을 여러분들 너무 잘 아시죠?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지내다가 보디발의 아내가 성관계를 하자고 요구하죠?
그런데 요셉은 이미 300km가 넘는 죽음의 행군 내내 기도로 무장한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나올 수 있어요.
보디발의 아내는 왜 요셉을 유혹했을까?
자신은 지위가 높은 장군의 아내였고, 요셉은 그저 노예였는데,
성경을 보면요.
창세기 39:6 (NKRV)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이렇게 나와있어요. 이걸 다른 말로 해석하면요.
키도 크고 얼굴이 정말 잘생겼다는 뜻이에요.
이 연예인 아세요? 차은우라는 배우예요.
요셉이 이 급으로 잘생겼던 거예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외모가 아름답고 잘생겼다고 표현된 게 딱 네 번 있거든요?
요셉, 사울, 다윗, 압살롬.
성경에 나오는 네 명의 꽃미남들.
그 중에서 원조가 요셉이었던 거예요.
그러니 아주 지위가 높았던 보디발의 아내도 유혹했던 거예요.
그런데 요셉은 그 유혹을 이겨냅니다.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와요.
요셉은 아주 많은 고난을 겪어봤기 때문에 눈치가 백단이었어요.
자기가 그 집을 뛰쳐나오면 분명히 자신에게 큰 위기가 찾아올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치만 요셉은 자신이 손해를 보고, 위기를 겪어도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릴 순 없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 강대국 애굽에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요셉 한 명뿐이었습니다.
요셉은 그냥 그 애굽의 문화에 취해서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요셉은 그러지 않았어요.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 했어요.
그러니 여러분.
요셉도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요셉을 떠나시겠습니까?
절대 떠나지 않으십니다. 한 순간도 요셉 곁을 떠나신 적이 없어요.
요셉이 형들 손에 던져진 굴 속에서도, 300키로가 넘는 죽음의 행군 속에서도 보디발의 집에서도 늘 요셉의 곁을 지켜주셨어요.
성경에서 증명하고 있어요.
창세기 39:2 (NKRV)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세기 39:21 (NKRV)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세기 39:23 (NKRV)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렇게 요셉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애굽의 총리가 됐어요.
온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된 거예요.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이 먹을 걸 얻기 위해 요셉을 찾아오게 되죠.
요셉은 그 형들을 그 즉시 죽여버릴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자기들을 죽일까봐 잔뜩 겁에 질려있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우리말 성경 (45장)
7 그러나 이 땅에서 형님들의 자손들을 보존하시고 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자기가 그 고생하면서 애굽으로 온 건, 나를 팔아넘긴 형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미리 보내주신 거라고 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게 신앙입니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들이 설령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이 상황으로 인도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의 고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것!
그것이 신앙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겪고 있는 상황들이 너무 힘드십니까?
올 한 해, 2023년. 돌아보면 정말 너무 지긋지긋하고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이 많았습니까?
겪으신 그 상황들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요셉을 애굽에 보내셔서 그 갖은 고난들을 겪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에게 양식을 주어 살리고, 형들 뿐만 아니라 애굽과 가나안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셉 한 사람의 고난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으로 올려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들과 2022년에도 죄만 지었고, 올 한 해 2023년에도 죄만 지었던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그러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우리에게 아픔을 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을 죽이시려고 그러신 겁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잠시 잠깐 고난을 허용하신 겁니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는 옆 사람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죄만 지으며 살다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있으면 우리는 기도합니다.
고난이 있으면 우리는 옆 사람을 돌아봅니다.
고난이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다가 천국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2024년에는 고난이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목적을 알고 맞이하는 2024년은 달라질 겁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평안입니다. 기쁨입니다!
우리의 고난과 슬픔은 결국 구원과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2024년이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을 늘 잘 발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한 해 될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 함께 선포합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나의 고난은 결국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