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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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2:1-5, 20-21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크리스마스도 가까웠으니 설교를 일찍 끝낼게요
이것은 전도사님 대학교 처음 입학했을 때, 교수님께서 수업 시작마다 하셨던 말씀이셨어요. 문제는 그 때가 3월이었단 말이죠. 교수님의 말씀의 뜻은 이거였어요. 어제보다 오늘, 아까보다 지금이 크리스마스에 더 가까워졌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매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수업을 일찍 끝내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으니 수업을 일찍 끝내주시진 않았지만, 이 말씀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일을 우리는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를 잘 알려주는 예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사님이 지난 주에 할렐루야 카드섹션 준비하면서 친구들에게 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 생일날 자꾸 나쁜 말 할래? 예수님 생일날 잘하고 있다.
우리 친구들 사실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오셨다.
예수님이 오신 년도가 0년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 현재의 ‘서력’이지만 사실 이 서력도 틀렸습니다.
이 서력에 대해서는 조사해보니 이렇게 설명하네요
‘기독교의 달력을 만든 것이 서력(西曆)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서력은 525년 로마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만들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를 원년으로 계산한다. 그리스도 탄생 전을 ‘기원전(BC, Before Christ) 또는 주전(主前)’, 탄생 후를 ‘기원후 또는 주후(主後), 서기(AD, Anno Domini)’로 표기한다. ‘Anno Domini’는 라틴어로 ‘주님의 해’라는 뜻이다.
다만 디오니시우스가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올해가 서기 2022년이지만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지 2022년째는 아니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B.C. 7년~2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B.C. 4년이다. 디오니시우스의 실수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너무나 방대한 역사의 연대가 기록된 터라 그것을 수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디오니시우스의 서력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오신지 대략 2027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근데 우리 친구들 어떻게 살고 있나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며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아직도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나요? 왜 그러고 살고 있나요? 결국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길 다짐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을 통해 함께 배워보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이자 결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결말은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께서 오시면서 승리하는 모습으로 말씀이 마무리되며, 곧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길 소망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번 찾아 오셨습니다. 처음 오신 것은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이 땅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이 땅에 오시는 것은 미래의 일입니다. ‘그 날’로 통칭되는 날입니다. 이것에 대해 D데이와 V데이라는 예화를 하는데, 너무 유명한 예화라 우리 친구들도 한번 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전 계획의 날 D데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날 빅토리의 V데이.
오늘 심판의 날은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날’로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이건 초림도 포함이긴 합니다. 구약에서 등장하는 이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지만, 여호와를 믿는 모든 백성이 승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두 번 오신다는 사실은 우리의 두 번째 부활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첫 번 째 죽음이 있습니다. 이 죽음에서 예외를 입은 사람은 단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에녹과 엘리야.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은 모두에게 있지는 않습니다. 심판과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자는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영원한 심판, 두 번째 죽음이 있을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한 심판이 예수님의 재림, 즉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이뤄질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이자, 오늘 본문이 기다리고 있는,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날입니다.
그 날까지는 이 세상에는 죄가 범람하고, 악이 판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4-30>
여기서 말하는 추수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견디는 우리의 고통은 언제 끝날까요? 예수님이 오셔야 끝납니다. 우리는 누가 알곡인지, 누가 가라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결국 마지막 날에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이미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첫 째 죽음은 모두에게 동일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죄는 우리 곁에 항상 있을 것입니다. 신학에선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설명해줍니다.
Already but not yet
이미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면서, 구원을 날마다 이뤄갑니다.
이 문제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하나님의 관점에서 봐야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전에 말했던 넷플릭스 채널을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왔다갔다 하면서 동영상을 보시는 하나님의 비유, 즉 시간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비유를 통해서 이 관점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시간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의미가 없습니다.
벧후 3:8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그 분께서는 최후 심판을 준비하신다. 오늘 이 본문도 최후 심판과 관련된 본문입니다.
최후 심판에 관한 많은 정보들이 있지만,(구절 마 25, 고전 3, 벧후 3, 계 19, 마 7, 고전 15, 살전 5, 살후 1, 계 20, 마 13, 요5 등등...) 이것이 정리되지 않은 혼란한 우리 친구들을 위해 전도사님이 특효약을 준비해왔습니다. 바로 미래의 일을 예언한 책을 판매합니다. 단 돈 3만원에 모십니다.
3만원 준다고 한 친구들 바보입니다. 이미 우리 친구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는 요한이 계시를 보게 된 사실과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를 소개하며 2장부터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두고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에베소교회는 첫 사랑을 잃었으며, 서머나와 빌라델비아처럼 비난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도 있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칭찬 없이 질책만 받은 교회도 있다. 이 일곱 교회는 결국 마지막 날에 이를 교회들의 예시이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에는 많은 예언들이 있다. 7교회, 7인, 7나팔, 7대접, 용과 여인, 아들, 구원, 천년전쟁.
그리고 마지막 끝이 오늘 본문 계시록 22장입니다. 계시록 21장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고, 계시록 2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오신 후의 에필로그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완성된 하나님나라는 이런 모습이다 우리에게 소개해줍니다. 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왕의 자리, 즉 보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요. 이 ‘생명수의 강’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던 거예요. ‘생명수의 강’이 처음 등장한 것은 에덴동산이에요.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 2:10>.
에덴동산에서 강이 흘러나오는데 이 강이 ‘생명수의 강’이에요. 생명수의 강은 생명을 주고, 생명을 보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누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을 때,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을 얻게 되어 우리가 영원한 두 번째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죄로 인해 실패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다시 회복의 약속을 주시는 거죠. 이 구약의 약속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성전이 되신 예수님,
즉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통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에요. 정리하면 에덴동산에서 죄로 인해 생명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다시 생명수의 강이 흐르게 되고,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며, 하나님과 영원하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그림을 요한계시록 22장 2절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 22:2>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는데 강 좌우에 무엇이 있어요? 생명나무가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채 생명나무를 먹게 될 까하여,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생명나무가 사람들에게 다시 허락됩니다. 성경 전체의 엔딩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에서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를 다시 보여주는 것을 통해 인간의 죄로 인해 실패했던 에덴동산의 회복을 보여줌과 동시에 생명에 대한 소망의 회복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회복의 메시지가 등장하고 있죠. 결국 3절에서 죄와 죽음의 저주는 완전히 사라지고, 우리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사이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의 완성된 이미지가 바로 오늘 5절에 등장합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요한계시록 22:5>
가장 밝은 빛 되신 하나님께서 계시기에 더 이상 어둠이 있을 곳은 없습니다. 다른 빛도 필요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권세를 힘 입어 왕 노릇 하게 됩니다. 회복된 우리의 정체성은 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해요. 이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이미 시작한 하나님 나라 속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즉 사랑과 섬김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적극적인 기다림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시계로 보고 창세부터 창세기, 예수님이 오셨을 때를 마태복음으로 본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이미 요한계시록의 시대를 왔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된 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많습니다. 계시록에 예언된 사건들이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근데 다 이뤄질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시키실 그 날을 기다리며,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고백하는 마라나타의 신앙을 갖고 주님 오실 날만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주님께 충성하며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 친구들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말씀 마치겠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회복의 때를 소망하며 우리 이 시간 다시 밤이 없겠고,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이 오실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2)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다운 삶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3)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을 세상 가운데 전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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