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길목에서 (신1:19-33)
매일성경 새벽기도(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7 viewsNotes
Transcript
오늘 본문은 민수기 13장과 14장에 나타난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먼저 19-21절에서 모세는 자기들이 호렙산에서 출발하여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는 과정을 매우 간략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의 산지를 그들에게 주셨다는 것도 밝히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 길목에 위치한 이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갈림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으로 들어갈지, 하나님을 의심하며 광야에 남을지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믿음으로 생명의 땅으로 나아갈지, 불신으로 죽음의 땅에 남을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정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가네스 바네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면서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열가지 재앙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 결과 마치 애굽에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그들은 모든 자기들의 소유뿐만 아니라 애굽 사람들의 재산도 가지고 나올수 있었습니다. 홍해에서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을 뒤쫓는 애굽의 군사들로 인해 두려워했지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그들은 홍해를 마른땅처럼 건너며, 그들이 홍해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내산에서 그들은 엄청난 신비함 경험과 함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최초의 백성이라는 복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은혜의 연속선상에서 하나님은 드디어 그들을 가데스 바네아로 보내서 테스트 하십니다. 어떤 테스트를 하십니까? 그들이 진짜 하나님을 신뢰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려고 하십니다.
새로운 한 해, 새로운 선택 앞에 설때마다 그곳이 우리의 가데스바네아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올해 힘차게 출발하지만,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그런 기로가운데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고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나안으로 갈래? 아니면 광야에 남을래?라고 말이지요. 그런 기로에 설때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계산이 아니라 믿음이어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여러분 한 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빌립은 오천명의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계산으로 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라도 들고와서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요 계산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그냥 순종합니다.
올 한해 우리 지세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선택의 기로앞에 계산하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교회로 말이지요. 우리가 여러가지 사역을 할려고 할때, 우리의 형편상 우리는 계산을 해야만 하지만, 올 해는 정말 계산이 아니라 우리 믿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계산이 아닌 믿음올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나아갈때, 올 한해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여기 앉아계신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 줄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22-24절 말씀을 보십시오! 21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아모리 산지를 이미 주셨으니 이제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반응은 모세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미온적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냥 들어가서 정복하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에 앞서’정탐꾼을 보내어 살피자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 같은데요, 사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데 무슨 정탐이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왜 정탐꾼을 제안할까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탐이 필요 없을 만큼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과 역사와 인도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못한 진한 의심 때문에 이들은 정탐꾼을 보내자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며 불신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주저하면서 계속해서 그 일을 미루면서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대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지 않습니다. 항상 여러가지 핑계로 그 일을 지연시키거나 아니면 순종이라는 열차에서 살그머니 내려버립니다. 때로는 불순종을 신중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하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는 것이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에는 우리 이런 신중을 빙자한 불순종의 삶을 추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좀 무작스럽더라도, 말도 안되는 용기를 낸다는 말을 듣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로 앞에서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번째로 23-28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지도, 믿음의 길로 가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가나안을 정탐한 정탐 꾼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열명은 비관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믿음이 있었다면 열 정탐꾼의 비관적인 보고에 넋을 잃고 배도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관적인 보고를 한 열 정탐꾼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고를 듣고 마음이 빼앗긴 백성들의 잘못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떠올리면서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만 비판합니다. 물론 이들의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좀 있으면 선거철입니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들이 아무리 비관적인 말을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을 해도, 대다수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떨어지고 맙니다. 아무런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직접 맛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믿지 않고, 그동안 자기들을 돌보시고 사랑해 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모두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빼고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죽는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하나님의 약속보다 그 땅 사람들과 성읍을 더 크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하나님의 존재도, 은혜도, 사명도 다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과거에 아무리 은혜를 입었어도, 성령의 충만을 받았어도, 우리가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까맣게 그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돈입니까? 직장입니까? 사람의 관계입니까? 건강입니까? 아니면 그밖의 또 다른 것입니까? 만약 그런 두려움이 있다면 오늘 이시간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의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와 찬송이 되는 역사가 넘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30-33절에서 모세는 비관적인 보고를 듣고 비탄에 잠긴 백성을 설득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걸음마다 길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일깨워 줍니다. 출애굽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 가나안 정복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고, 크고 두려운 광야 길로 인도하셨으니 크고 두려운 가나안 족속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여기까지 어떻게 우리를 이르게 하셨는지 되돌아 보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는 이정표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막막하다고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며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올 한해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하며 누구보다 밝은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된 일을 날마다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