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나안으로(신 2:1-25)

매일성경 새벽기도(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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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순종하여 다시 광야로 돌아갔던 이스라엘이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조건 그들이 밟는 땅을 정복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모압과 암몬과 에돔 족속의 땅은 결코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상고하며 세 가지 점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광야가 우리를 새롭게 하는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어제 살펴본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길로 광야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은 이제 북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즉 이제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해 올라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출애굽 일 세대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광야가운데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나안을 향한 출애굽의 여정마저 중단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심판의 종착점이었지만, 하나님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생장점이었습니다. 지체되고 지연되고 돌아가는 듯 보여도 그 광야의 시간이 나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두려워하고, 광야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그 광야가 우리를 새롭게 하는 변화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연단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제대로 보게하며, 제대로 준비시키는 장소가 광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원래 고자질 잘하는 철부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애굽, 더 정확히 말하면 감옥이라는 광야에서 그는 연단되고 준비되어 애굽의 총리로 바로 설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받지 못하고는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서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 광야를 지나며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는다면 우리는 그 광야를 지나기는 커녕 죽을때까지 그 광야에 매몰되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광야로 인도하실때에, 비록 힘들고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실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귀하게 쓰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이스라엘이 지나가야 할 요단 동편의 땅은 약속에 땅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옥하여 누구나 탐낼만한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나갈 때 통과만 할 뿐 다투거나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길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겁박하거나 겁탈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모압과 암몬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정복주의나 승리주의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대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신중하게 세상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중동은 선교가 어려운 지역입니다. 그 이유는 십자군 전쟁때문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뜻이 성지 수복에 있다고 생각하고, 처들어가서 무지막지한 살륙을 감행했습니다. 일설에 전하기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사람을 하도 많이 죽여서 피가 발목까지 찼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지요. 그 일 후에 무슬림은 기독교를 증오하고, 그 증오는 지금도 대를 거슬러 내려오고 있습니다. 근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구 기독교가 전 세계를 식민지로 삼고 착취한 일로, 여전히 많은 나라의 백성들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정복하고 힘으로 다스리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서 신중하게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여서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힘을 사용하고,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힘이 있어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양보하고 내려 놓을 수 있는 아량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세번째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르를 차지한 과정이 범상치 않습니다. 10절에 보면 이전에 이 아르에는 ‘에밈’ 사람이 거주하였습니다. 그런데요, 그 사람들을 한 번 보십시오! 아낙 족속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을때 봤던 그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룻 자손 정확하게는 모압과 암몬 족속이 그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12절에 보면 에서의 후손은 호리 사람을 멸하여 세일산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왜 그들이 이렇게 강대한 적들을 정복하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에게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이 강해서 그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거대한 성곽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하나님을 빽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해서 가나안 정복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보다 약해 보이는 모압과 암몬과 에돔이 강한 적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정복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즉 가나안 전쟁도 나의 밖에 있는 군사 전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영적인 전력이 좌우할 것이라는 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만 있으면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그 바위를 깨뜨릴 수 있고, 우리가 이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깨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일, 하나님의 복을 받는일, 그렇게 먼데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밖에 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믿음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밖의 조건으로 따져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방법이 아닌 우리 안에 있는 신실한 믿음을 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시련과, 광야와, 또 위험에 있을때일수록 여러분의 신실한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도우시고 복 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광야를 지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임할때 우리는 그것을 오해해서 잘못된 선택을 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에 있든지 신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이런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복된 삶을 허락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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