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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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서론]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끝자락 즉, 약속의 땅 진입하기 바로 전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이제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새로운 세대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누릴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치와 시점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2023년을 끝내고 이제 2024년을 막 진입한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 역시 2024년 어떻게 하면 새로운 해에 하나님의 복을 누릴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럼 과연 신명기는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새해 마음의 다짐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치루는 전쟁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땅을 누가 차지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즉 천국에는 하나님이 감춰두신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두번에 걸쳐 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첫번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 사건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땅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미 온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누릴수 있을까요?
새해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예비하신 하나님의 복을 받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연합입니다.
12-13절입니다.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였을 때에, 나는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아르논 골짜기 곁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의 반쪽과 거기에 있는 성읍들을 주었습니다.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는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인 온 바산 지역을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에서 아모리 족속의 두 왕인 시혼왕과 바산왕옥을 무찔렀습니다.
첫 세대는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전쟁에서 두 차례나 연이어 승리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기기 힘든 거인족인 아모리 족속을 이긴 이유는 자신들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믿음과 순종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두차례나 연이어 승리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은 매우 고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의 일부가 요단 동편 땅에 머물겠다고 요청한 것입니다.
땅이 비옥해서 자신들이 가진 가축들을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입니다.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민수기 32장을 보면 이 말을 듣고 모세는 매우 화를 냈습니다.
자신들은 빠지고 나머지 지파들만 요단 서편에 가서 싸우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요단동편의 전쟁은 요단서편 전쟁의 전초전에 불과합니다.
훨씬더 힘겨운 싸움이 곧 시작되는데 빠지겠다니 화가 나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18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당신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에게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이 땅을 주셔서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당신들의 동기인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도 땅을 차지할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모세는 요단동편에 머물려는 세 지파에게 나머지 지파들을 도우라고 명령합니다.
나머지 지파들이 하나님의 과업인 가나안 땅 정복을 이룰때까지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2지파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셨습니다.
12지파는 반드시 연합해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연합입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연합이란 쉽게 말하면 남의 필요를 살피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때 마니또를 합니다.
마니또는 내가 뽑은 사람을 눈치채지 못하게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입니다.
그의 필요를 살펴 때로는 물질적 정서적 영적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나의 마니또들입니다.
그들의 필요를 살필때 우리는 연합할수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수 있습니다.
연합이 쉬운일은 아닙니다.
혼자있는게 혼자하는게 더 편하고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을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함께 할때 이뤄갈수 있습니다.
단지 물리적으로 함께하는게 아니라 마음과 행동으로 연합할때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학교도,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해야 합니다.
교회라고해서 무조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게 아닙니다.
교회일지라도 그곳에 다툼과 분열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는 임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들이 서로 진심으로 연합할때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불협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는 굉장히 듣기 불편합니다.
예전에 어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를 무시해서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오케가 각자 자기 소리를 내니까 엉망진창이어서 제 옆에 있던 분이 욕을 하더라구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휘자이신 하나님을 따라 우리가 순종하며 연합할때 아름다운 하모니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연합할때 반드시 동반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둘째, 하나님 나라는 희생입니다.
18절 후반절부터 19절입니다.
당신들의 용사들은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보다 앞서서 요단 강을 건너가십시오. 다만 당신들의 아내와 어린 아이들은 여기에 남아 있게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에게 집짐승이 많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으니, 그 집짐승도 당신들의 가족과 함께, 내가 당신들에게 나누어 준 성읍에 머물러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의 동기들에게도 편히 쉴 곳을 주실 것이니, 그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요단강 서쪽에 마련하여 주신 땅을 차지한 다음에라야, 당신들은 제각기 내가 당신들에게 준 이 당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모세는 세 지파들에게 가족들과 가축들은 그곳에 두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편의를 봐준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만큼 남겨진 가족들은 적들의 위험에 노출될 위험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이런 타지 땅에 가족들만 남겨둔채 적들과 싸우러 간다는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가려는 이유는 자신들의 형제지파들을 도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나안을 정복하고 다시 돌아올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민수기 32장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세 지파가 화를 내는 모세에게 먼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자신들의 가족들을 남겨두고 그런 다음에 전쟁을 도우러 나서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마치 모세가 말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신명기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일까요?
모세가 잘난체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요?
모세는 세지파의 순종을 부각하고 싶은 것입니다.
신명기의 핵심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세는 세 지파가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선봉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일 위험한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먼저 땅을 차지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큰 희생을 치뤄야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도 민수기를 보면 세 지파들이 모세에게 먼저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에서는 마치 모세가 명령한것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지만 민수기와 신명기의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세는 세지파의 순종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지도자 모세의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내 이익을 먼저 챙기기보다 먼저 희생하겠다는 태도가 공동체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잘되는 공동체는 내가 먼저 내가 더 많이 희생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곳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나라는 서로 희생하려는 마음이 있는 곳에 임합니다.
공동체의 연합도 결국 먼저 희생하려는 태도가 있을때 가능합니다.
어떤 신체 장애를 가진 자녀들을 키우는 아버지의 간증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집의 모든 활동과 스케줄이 모두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디를 가고 싶어도, 무엇을 먹고 싶어도, 무엇을 하고 싶어도 절제하고 희생해야만 합니다.
그게 가족이기 때문이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역시 가장 약한 자에게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어쩔수없다는 말처럼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없습니다.
교회에 어쩔수없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만큼 희생이라는 핵심가치를 가진 공동체도 없습니다.
세상 공동체는 자기가 손해보지 않을만큼만 희생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이 손해보더라도 희생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리더들은 위에있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종으로 오셔서 자신을 죽이기까지 섬기는 신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연합과 희생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직 빠졌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이뤄질수 없습니다.
마지막 셋째, 하나님 나라는 맡김입니다.
23-29절입니다.
그때에 내가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크심과 권능을 주님의 종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신이 주님께서 권능으로 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할수 있겠습니까?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요단 저쪽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들 때문에 나에게 진노하셔서 나의 간구를 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네게 족하니, 이 일 때문에 더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 너는 이 요단 강을 건너가지 못할 것이니, 저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너의 눈을 들어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아라. 너는 여호수아에게 너의 직분을 맡겨서, 그를 격려하고, 그에게 용기를 주어라. 그는 이 백성을 이끌고 건너갈 사람이며, 네가 보는 땅을 그들에게 유산으로 나누어 줄 사람이다. 그때에 우리는 벳브올 맞은쪽 골짜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모세는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한 지도자입니다.
그만큼 더 희생하고 더 고생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을 마치고 싶어합니다.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주님이 주신 그 땅을 보고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세에게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모세가 죄를 지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모세가 그 정도 죄를 지은 것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게 이해가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세 개인의 죄때문이라기 보다 공동체의 죄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 공동체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모세가 므리바에서 바위에 지팡이를 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모든 일에는 백성들이 불순종한 죄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26절만 보면 마치 모세가 백성들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을 변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도자로서 백성들이 불순종한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그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세는 불순종한 옛 세대의 대표자인 셈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생각할때 모세는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토록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기며 여기까지 왔는데 말입니다.
모세만큼 희생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25절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주님이 행하셨던 그 놀라운 일들을 그 땅에서도 볼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 땅을 차지하고 싶다는게 아니라 그냥 볼수만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의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우상숭배하여 하나님이 분노하셔서 전멸할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모세는 중보기도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냈습니다.
이때까지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한번도 거절하신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 하나님은 모세에게 더이상 자신에게 이 문제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같으면 굉장히 억울할거 같습니다.
연합과 희생에 있어 그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런데 이제와서 여호수아에게 모두 넘기고 빠지라니요?
그러나 하나님은 마냥 모세의 요청을 무시하신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비스가 산 꼭대기로 올라가 사방을 바라볼수 있게 해주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너가 바라보는 약속의 땅을 반드시 점령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말고 너의 사명은 다 이뤄진것과 같으니 이제 여호수아에게 넘겨주고 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모든 노력을 다했더라도 결국 주님께 내맡겨야 합니다.
내가 내 자리에서 충실히 역할을 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자신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것만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것을 버릴수 있는 것은 더 큰 믿음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새해 여러분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세가지를 배웠습니다.
바로 연합하는 것, 희생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가지를 통해 우리 삶 가운데 이뤄질 것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