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와 오메가

하나바이블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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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들 이제 대학가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무엇일 것 같나요
전도사님은 문과라서, 이과 대학을 잘 알지는 못해요. 그렇지만 전도사님이 겪어본 대학교, 대학원 생활을 종합해서 설명을 해보면 바로 서평을 제일 많이 합니다. 그것도 겁나 많이 합니다. 보통 17~19학점 정도 수업을 듣게 될텐데, 결국 일주일엔 수업을 17~19시간 정도 듣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한 과목에 2~3학점 정도 진행되고 한 학점에 쉬는 시간 포함해서 1시간 정도 되니까, 전도사님네는 50분 수업이에요. 결국 한 주에 대략 15시간 정도 수업을 듣게 됩니다. 과목수로는 7~8과목 정도 됩니다. 근데 재밌는 건 교수님들마다 과제를 요구하세요. 우리 친구들 대학 가면 실컷 놀 수 있을 것 같았나요? 아쉽게도 그건 어른들이 우리 친구들 희망주려고 한 이야기입니다. 어른들도 다 과제하면서 컸어요. 대학가도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 과제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우리 친구들도 솔직히, 내신 준비 다 하잖아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매주 숙제... 과목마다 내시는 분량도 다르고, 공부할 양도 다르잖아요. 근데 대학교는 내가 결정한 학과의 커리큘럼에 따라 모든 수업이 중요해지니, 한 과목도 소홀하기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내 머리와 지혜는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그 과목들 전부를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과제를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다들 꼼수를 씁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진 않지만 좀 큰 학교를 가보면 해피캠퍼스에 A+ 과제들이 올라오기도 하고요, 그 교수님 수업에 대한 족보들이 돌아다니기도 해요. 물론 그 과제들을 그대로 배껴 제출하는 건 도둑질이지만요, 열정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제물들을 보고 유형을 파악하고, 교수님의 채점 기준에 맞는 답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건 뭐 고등학교랑 차이가 없죠.
그런데 문과 기준으로 많이 하게 되는 과제의 유형 중 서평은 쉬운 과제에 속합니다. 왜냐면요, 보통 교수님들께서 수업시간에 준비해오신 강의자료가 그 서평 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교수님께서 시간이 모자라 언급하지 못하신 내용들도 보통은 서평 책 안에 포함 되어 있고, 교수님들께서도 이 책을 읽어보라는 의도에서 서평을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깐요 시간이 지나면 서평을 어떻게 하느냐? 책을 읽지 않고 서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정말이에요. 대신 뭘 보냐? 목차를 봅니다. 우리 친구들 책 읽을 때 목차를 어떻게 해요? 목차 안보고 넘기기도 하죠? 근데요 목차는 되게 중요해요. 전도사님 첫 설교 때도 했던 이야기지만, 제목이 중요하잖아요? 목차에는 이 제목들의 모음이 들어 있어요.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한 게 뭐에요. 제목이잖아요. 각 단락에 맞는 제목들이 한 줄씩 정리되어 있는 것. 그게 바로 목차에요. 시간이 지나면요, 서평을 한 100번쯤 넘게 쓰다보면, 책을 다 읽고 글을 쓰는 거랑 목차만 읽고 쓰는 거랑 퀄리티 차이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이게 대학생활 팁입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 책은 안봐도 목차는 봐야 하는 이유가 뭐에요. 방금 전도사님이 설명했지만, 목차에는 책의 내용의 요약이 들어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설명하면요, 목차에는 책의 A to Z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알파와 오메가인데, 이건 사실 알파벳이에요. 헬라어라고 표현하고, 현대에는 그리스어의 알파벳입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마지막에 오메가. 결국 알파와 오메가는 영어로 이야기하면 A to Z라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1장 8절 말씀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8>
예수님은 처음이시고, 마지막이십니다. 우리 친구들, 예수님이 언제부터 계셨는지 알고 있어요?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언제부터 계셨는지 이렇게 소개합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성경이 말하는 태초는 창조 전을 의미해요. 과학이 설명하는 빅뱅이론은 거의 사실처럼 확실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해요. 빅뱅이론은 빅뱅 이후에 대해서는 모든 설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어떻게 빅뱅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있어요. 바로 하나님과 그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말씀으로 의인화하여 설명합니다. 요한복음의 요한과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같은 인물이에요. 예수님의 제자이자, 야고보의 형제였던 요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의 요한이에요. 이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요한복음에서 기록되어 있어요.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자라고. 그런 요한이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겠어요.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말씀이라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곧 하나님이신 말씀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을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자 전능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신학적인 설명이 필요해요. 결국 신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기독론을 배우고, 그 예수님으로부터 얻게 되는 구원론, 구원받은 자들이 모이는 교회론, 최종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배우는 종말론이 있습니다.
이런 신학, 여기서는 조직신학이죠. 조직신학에서 교리에서 설명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과 비공유적 속성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오늘은 신학이 폭주를 할텐데, 함께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과 사람이 같이 공유하는 속성이에요. 예를 들어, 공유적 속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 영적인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공유적 속성은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단일성이 있습니다.
어렵죠. 전도사님이 이런 걸 공부했어요. 자꾸 지난주부터 자기자랑하는 것 같은데, 우리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거에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모든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어요. 시간마저도요. 초대 교부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우리 친구들, 현대 과학에 따르자면요, 시간도 변해요. 중력에 따라 시간이 변해서,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개념이라고 설명을 해요. 그런데 이 모든 개념조차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에요. 공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지 못하실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그렇기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영원히 계신 분이신 거에요. 정말 무한처럼 느껴지는 유한이 아니라, 시간조차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죠. 전도사님이 우리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어서 준비해온 예화가 있어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세요. 우리 친구들 나비효과라는 이야기 아시나요? 아마존 강에 사는 나비가 펄럭인 바람이 힘을 얻어 3년 뒤에는 뉴욕에 태풍으로 올 수 있다는 이야기, 아주 작은 선택지가 커다란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이야기는 거의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선택지들을 아시고, 선택지에 대한 결과도 다 아시는 분이세요. 우리 타임리프물 본 적 있어요? 어바웃타임에서도 자녀를 낳고 시간을 돌려보니, 아들이 딸로 변해있었잖아요. 논리적으로 보면요, 하나님은 다 경험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니 ‘전지’에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것.
우리 친구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보면, 이 드라마를 0.5배속으로 볼지, 1.5배속으로 볼지 선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1화부터 봐도 되고, 마지막화를 봐도 돼요. 내가 보고 싶은 시간대의 영상을 내 맘대로 틀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우리라고 생각해보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넷플릭스로 본다고 상상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날 때도,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릴 때도, 나중에 누구랑 결혼할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다 알고 계셔요. 그러나 드라마 주인공인 우리가 볼 때는 이해할 수 없겠죠. 여기서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주인공, 즉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이렇게 살면 안 돼, 너 여기서는 이렇게 살아야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어. ‘너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아’
친구들, 우리는 파멸의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요. 죄인인 우리가 구원 받을 길은 오직 우리의 죄를 죄 없는 누군가가 대신 짊어지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내리신 최선의 선택. 이 세상에서 죄를 없애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다음의 문제에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지 않으면, 우리의 죄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큰 축제요,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저주였습니다.
전도사님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천국, 하나님이 안계시면 지옥. 예수님께서는 지옥으로 오신 것이에요. 물론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죠. 근데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시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신 것은, 죽음이 예수님을 삼킬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죽음이 예수님을 삼키고 사흘이 지나는 동안 죽음이 죽을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살리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이유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께서는 결국 이 죽음을 죽이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날에 우리는 죽음이 죽었기 때문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곧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신 것은 죽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죽으러 오신 것이에요. 그 마음으로 예수님은 30년을 살아내셨고, 3년간 우리와 함께 사역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핏값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고, 예수의 흘리신 보혈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값없이 주신 복음이 값싼 복음이 되도록 만들어선 안됩니다. 그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귀한, 기쁜 성탄절이, 예수님의 입장에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너희를 만나러 오신 날입니다. 그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신 분께서 지금 우리 친구들을 만나주시고, 또 만나러 오실 것입니다.
다음 주, 12월 24일 성탄 예배를 드립니다. 25일에도 아기 예수 나심을 기뻐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이 때만 예수님을 기뻐하실 것인가요? 우리는 예수님으로 기뻐하고, 예수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의무가,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의무가 있어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그 사실을 알리고, 믿게 만들고, 같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지 40일 만에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8-20>
이 지상명령을 가슴 속에 새기며, 우리 그가 오신 이유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죽으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합시다.
(2) 부끄럽게도 죽으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입니다. 우리는 슬퍼할 것이 아니라 그 죽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누리며 예수님을 찬양 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을 찬양하며 기도합시다.
(3) 예수님의 우리에겐 명령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제자를 만들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기억하며 주님 도와주세요.
세 가지 기도제목을 갖고 함께 기도하고 제가 기도하면서 기도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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