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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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7–19 (NKRV)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식당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음식 맛이 좋거나 서비스가 좋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그 이유는 좋은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잘 되는 식당은 30분 1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이 계시던 당시에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어쩔 때는 산위로 또 바다로 가야 할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이 병든자들을 고쳐 주셨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손만 대면 모든 병이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에게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겠는가?
우리집에서도 아이들이 어디를 다치면 나를 찾아 온다. 엄마는 그정도면 괜찮아!! 하는데 아빠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얼마나 아플까? 하고 꼭 약을 발라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아이들이 다치면 꼭! 아빠를 찾는다. 아이들도 이런데 당시 의학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예수님 시대에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등장 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겠는가?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바다로 물러 가셨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많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음을 알 수 있다. 무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들이 모두 예수님을 좋아서 따라나녔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예수님을 경계 했던 율법 학자와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잘못을 찾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다니기도 하였다.
여튼 어떤 이유에서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5병 2어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당시 5천명은 노인과 여자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제외한 수였으니 실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사람은 수만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귀신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귀신도 예수님을 알아본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귀신들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앞에 엎드려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다. 귀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되는 것이다. 귀신과 제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귀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안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아는 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제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그의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의 삶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귀신과 다름 없다는 것이다. 우리안에 예수님의 말씀을 품고 품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짖는 귀신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3:12 (NKRV)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예수님은 귀신을 향해 당신의 정체를 발설하는 것을 금하신다. 그 이유는 귀신은 예수님을 증언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된 기대감으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 잘 못 전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귀신을 통해 일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람을 세워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직접 삶으로 알려주셨다. 그들이 바로 사도라고 불리우는 12명의 제자이다.
앞에서 말한 것 같이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다. 그들중에 12명을 뽑은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면 수만명중에 12명을 선택하였으면 그것도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뽑으셨으니 정말 훌륭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뽑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수만명중에 뽑힌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누구보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좋은 스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 않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그중에는 성품이 훌륭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많은 부를 소유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좋은 학벌, 그리고 정치적으로 힘있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중에 12명을 뽑았으니 얼마나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들이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안다. 예수님이 임명한 12명의 제자는 당시 좋은 가문도 아니고, 좋은 학벌, 많은 부를 소유한 사람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학벌도 좋지 못하고 부와 정치적 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성품이 좋아서 뽑았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베드로는 다혈질이다. 온화한 성격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병사의 귀를 욱하는 마음에 자른 사람아닌가? 그 성격때문에 늘 실수를 하는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다. 그리고 오늘 특별히 요한에게는 가리켜 보아너게 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당시 요한이라는 이름이 흔하였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 지어준 별명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별명을 지을 때 그 사람과 전혀 상관없는 것을 지어주지 않는다. 그 사람의 특징을 부각시켜 별명을 짓는다.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보아너게” 라는 별명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레의 아들”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천둥의 아들”이다. 이걸 듣고 “토르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천둥의 아들이라는 말은 과격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은 모든 면에서 본이 될만한 사람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빌립은 늘 계산적이었다. 믿음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병이어 사건에서 예수님이 일부로 빌립의 믿음을 시험하는 장면도 나온다.
요한복음 6:5–7 (NKRV)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믿음 보다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했던 사람이 빌립이었다.
도마 역시 늘 믿음보다는 의심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없었다. 그래서 도마에게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이야기 하였을 때 도마가 한 말이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가 그의 손이ㅡ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직접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신 것 뿐만 아니라 넣어보라고 까지 말씀하실 정도로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세리 마태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님을 은30으로 팔아넘긴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제자중 하나였다.
12명의 제자중에 몇명만 이야기 하였지만, 이들은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리고 이들보다 훨씬더 믿음이 있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선택해 제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우리는 무슨일을 할때 팀원으로 모든 것이 갖춰진 사람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왕이면 능력이 있는 사람, 이왕이면 남들보다 많은 것들을 소유하여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의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세상의 기준으로 무엇인가를 갖추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으면 내가 믿음이 좋아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자리에 있다고 잘 못생각을 한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만들어진 것을 원하지만 우리의 주님은 만들어가시며 우리와 함께 사역하신다는 사실이다.
12명의 제자가 자격이 있어서 제자 된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이 임명하여서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맡고 있다면, 그것은 그저 주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사중에 기드온이라는 사사가 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미디안 군대와 전쟁을 벌인다. 상대는 10만명이 넘는 대군이었다. 그래서 기드온이 군대를 모집하였는데 3만 2천명이 모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전쟁에 나가길 두려워 하는 사람을 보내라고 하신다. 그러니 1만2천명이 집으로 돌아갔고 2만명이 남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중에 물을 손을 대고 먹는 사람과 엎드려 물을 마시는 사람을 구분해서 손을 대고 물을 먹은 300명만 남기고 다 돌려 보낸다. 그리고 10만명이 넘는 미디안 군대와 300명이 전쟁을 벌이게 하신다.
이 사건을 보면 우리는 혹여나 300명이 엘리트였나?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사를 추리실 때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백성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사사기 7:2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사사기 7:4 (NKRV)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택하셨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자의 축복이다. 내가 잘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기에 내 능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신대로 순종으로 나아가면 그때 그때마다 주님이 능력과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제자가 되는데 자격은 없다. 제자가 되는 자격은 없지만,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 삶은 바로 주님과 늘 동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임명하시고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들과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다녔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때로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들이 꿈꾸고 그리던 메시아의 모습과 달랐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과 함께 거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제자의 삶인것이다. 늘 주님안에 거하는 삶,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제자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럴때 우리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제자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님과 함께 먹고, 주님과 함께 자고, 주님과 함께 다니는 그 삶이다. 그 삶을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이러한 제자를 통해 반드시 주님은 일 하실 것이고, 그 제자를 통해 주님의 나라가 선포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