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숭배 금지령(신 4:15-31)

매일성경 새벽기도(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1 views
Notes
Transcript
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때 받는 복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코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먼저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어떤 것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자연의 것들을 섬겨서는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왜 이러한 것들을 금지할까요? 이런 것들을 섬길때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상을 왜 섬깁니까? 대부분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상에게 정성을 다하고 섬기면 우상이 우리의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준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우상과 인간과의 관계는 기브앤 테이크가 됩니다. 내가 우상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우상도 그만큼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문제는 우상을 이렇게 섬기다가 보면 하나님도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내가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여 섬기면 하나님도 나에게 그만큼 베풀어 주셔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즉 하나님을 우리의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신 정도로 격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신비함이 사라집니다.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도 바뀝니다. 어떻게요, 인간이 통제 가능한 신이 되어버립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상을 누가 만듭니까? 인간이 만듭니다. 누가 관리합니까? 인간이 관리합니다. 누가 정성을 다해 예배합니까? 인간이 합니다.
자 여기에서 무슨 신비함이 있고, 무슨 초월성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까요, 신을 믿기는 하지만, 의지하지는 하지만, 이 신은 인간이 보살펴주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에게 종속된 존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우상을 섬기다 보면 하나님도 이런 우상처럼 바라보고 우상과 같은 분으로 섬기게 될 요지가 충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우상을 왜 만들어 섬깁니까? 일단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예술작품처럼 뛰어난 우상의 형상이면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신보다는 보이는 신이 더 매력적이고 더 사람들에게 와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은 인간에 손에 놀아나는 그런 신이 아닙니다.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통제가 아닌 우리를 초월해 계시며, 우리가 결코 알수 없는 신비속에 계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우상과 동급으로 취급될 수 없는 존귀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상과 비교될 수 없는 높으신 분임을 알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우상을 넘어서는 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애굽의 10가지 재앙은 그냥 재앙이 아니라, 각각 애굽의 열가지 신을 이기신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솔직하게 말해서,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우상을 만들지도 않고, 우상을 섬기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상 숭배에서 자유롭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 가족이나 그 밖에 또 무언가입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만 가장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은즉”
여러분 모세가 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민수기 이십장에 나오는 므리바 사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물이 없어 모세와 아론에게 따지고 비난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잡고 회중이 보는 앞에서 바위에게 명령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태에 너무 화가 나서 그 명령대로 하지 않고 바위를 두 번 지팡이로 칩니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나와 백성들과 가축떼가 마셨지만, 모세는 이 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 숭배를 저지를 경우,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시고 여러 민족중에 흩어버리셔서 비참하게 우상이나 섬기며 살게 하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것처럼, 가나안 땅에 쫓겨나서 다시는 그 곳에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 것에 노예가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모든 복을 거두어가 버리시고, 우리를 저주받은 가운데 살도록 방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 복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하고, 우상이나 섬기고 사는데, 하나님이 뭐가 예쁘다고 우리를 복주시고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로 삽니다. 명예의 노예로 삽니다. 이를 위해 신앙을 도구로 삼을때가 참 많습니다. 도시 교회에 있다가 보면 자기의 영업을 위해서 이리 저리 교회를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과 같은 자리를 얻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을 믿는 것을 빌미로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하셨던 분의 아내 권사님이 불교에서 법명을 받아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편 대통령 당선을 위해 그렇게 까지 해야 했나라고 자조섞인 푸념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도구가 아닙니다. 만약 신앙이 도구가 되어버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단호하게 심판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반열에서 탈락시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결코 타협할 것이 아닙니다. 결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떠났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고 맞아주신다고 말씀합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와의 언약을 어긴 백성에게 진노하실때에도 그들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며 멸하지 않으십니다. 하박국 삼장 이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자신의 말씀을 어겨서 징계를 받더라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언제나 우리를 맞아주시고 기다리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