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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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내었으나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여호수아15장에 이미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두 부분으로 나눠지게 되는데, 먼저 11-15절의 말씀을 보시게 되면, 유다 지파의 노장 갈렙은 늙었지만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에 직접 나섰습니다. 갈렙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드빌이라는 곳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드빌, 곧 기럇 세벨이라고 불리우는 이곳을 공격하는 자에게는 자기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공표를 합니다.
이것은 지친 병사들에게는 아주 큰 상급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처녀를 한 사람 차지하는 것은 보통 큰 상급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병사들은 갈렙의 딸을 서로 차지하려고 용기를 내게 되었는데 누가 결혼하게 되지요? 13절 말씀을 보시면, 사사기 1: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기럇 세벨을 빼앗고 악사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즉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하더라도 장수가 자기 딸을 상으로 내어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인데 이런 식의 근친상간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당시 사람들이 결혼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이 오늘 우리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당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엄청난 신부 대금을 아내 쪽에 지불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나쁘게 생각하면 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의 결혼관은 지금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고, 아마도 갈렙은 자신의 딸의 결혼이 하나님의 땅을 회복하는데 좋게 사용될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뜻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는 신앙의 순결을 위하여 근친결혼이 용납되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열심히 싸운 옷니엘은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 상급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갈렙의 딸은 그냥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결혼 지참금으로 얻어갔습니다. 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4–15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아마 유다 백성들에게는 딸을 가지고 기럇 세벨을 정복하게 한 아버지도 대단하지만 그 딸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딸은 가장 중요한 샘을 두개나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용감한 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을 축복으로 얻게 된다는 대표적인 예로 유명해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의 독일 병사들의 짐 속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괴테의 책이 언제나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젊은 사람의 순진한 사랑이 다른 곳의 전승 보고보다 더 시원한 창량제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보면 믿음으로 전쟁을 시작한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복된지 모르겠습니다. 유다 지파는 믿음으로 전쟁을 감당했기 때문에 아도니 베섹 같은 악한 왕을 죽일 수 있었고, 헤브론의 세 명의 거인도 죽였으며, 그나마 전쟁 중에 아름다운 사랑의 스토리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걸어 기럇 세벨을 정복했다면, 딸은 결혼을 걸어서 남쪽에 있는 샘물을 두 곳이나 챙겼습니다. 결국 이 옷니엘이 처음으로 사사 시대의 문을 여는 용사가 됩니다. 옷니엘은 한 번은 결혼을 위하여 싸우고 다음에는 사사기 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싸움을 합니다. 옷니엘은 위대한 사사 시대의 문을 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모든 복을 이미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복을 풍성히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백성 된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소망하게 하시고, 영원한 평안과 기쁨, 안식과 하늘의 부요함이라는 복을 충만히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만일 사사기 1장이 18절로 끝난다면, 거의 완벽하게 고무적이고 사사기 전체에 좋은 징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9절에서이 경종을 울리는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는 유다 지파가 신앙적으로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을 믿음으로 산지 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앙적으로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한 사건입니다.
첫번째 쫓아내었으나 라는 단어를 통해 이 사건을 보게 되면, 이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은 후에 전투를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2절 말씀을 보시면,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11:22–25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그 모든 나라 백성을 너희 앞에서 다 쫓아내실 것이라 너희가 너희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차지할 것인즉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밟는 모든 땅 사람들에게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 을 다시 확인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출애굽 역사에 대한 결론은 하나님의 은혜 곧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루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다지파, 시므온지파, 요셉(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출애굽 역사의 교훈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여호와의 목소리에 청종하고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거룩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아마 정복에 성공할 때마다 하나님이 싸우셨습니다 라고 감격적인 찬양을 드렸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한 마디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로 고백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편째 표현으로 ‘철 병거가 있으므로’라는 표현보게 됩니다. 이는 군사력과 무기의 차이 때문에 쫒아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19절의 문장은 앞과 뒤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모순어법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철병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자손의 믿음이 ‘철병거’를 물리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철병거’가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한계 상황이라는 의미입니다. 한계상황, 또는 극한상황은 어떤 상황이나 일 따위가 한도에 다다른 것을 말합니다.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족속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가나안 땅에 이주해 온 듯하며, 합금 기술의 개발을 통해 다른 어느 부족보다 더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철제 무기는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당시 철제 무기는 매우 구하기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던 그들이 철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믿음의 한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철병거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극한적 무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사사 드보라와 대장군 바락은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철병거 900대를 기손 강에서 물리쳤습니다. 드보라의 노래 중 사사기 5장20-21을 보면 하나님께서 건기에 순식간에 집중적인 폭우가 쏟아지게 하심으로 가나안 왕 야빈의 철병거들과 군사들을 표류하게 하여 진멸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이 철병거는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극한적 무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세번째 표현은 쫓아내지 못하였더라는 표현입니다. 왜 쫓아내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지 않고 쫓아내지 못하였다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쫓아내지 않았다는 것은 쫓아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고, 쫓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힘에 굴복당한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주신 땅을 발로 밟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 레호리쉬’는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아니한 직무 유기 또는 고의적 회피 행위로서 이미 주신 땅을 차지할 믿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철병거라는 힘에 굴복 당했다는 것이 아니라 ‘가치있다’는 이 힘에 굴복당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쫓아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철병거’라고 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둔 사고방식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쫓아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되지 못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1: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었노니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탓티우는 예언의 완료형이 사용되어서 하나님께서 이미 그 땅을 주셨다는 사실을 확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 강까지 헷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쪽 대해까지를 성민 이스라엘의 영토로 주셨다는 사실을 확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에서 밟는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티드로크는 미완료형으로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하나님이 영토로 주신 그 가나안 땅을 발로 밟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발바닥으로 밟는다는 것은 단순히 발바닥으로 그 땅을 밟고 걸어다니는 것을 넘어서 대적의 목을 발로 밟아서 승리를 확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이루는 수단과 방편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확증 곧 확실히 나타내서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어 이루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점점 쫓아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믿음은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하고,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세대가 등장하면서 믿음도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 없는 상식이 여기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기업을 확보하지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가나안 주민은 앞으로 수 세기 동안 옆구리의 가시로 증명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의지하거나, 혹은 단순하게 순종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근거를 우리의 계산에 두면, 우리는 유다처럼 결정하게 됩니다.
옷니엘은 하나님의 힘으로 도시를 공격한 반면, 유다 족속은 그들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는 절반의 제자도입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결국 절반의 제자도가 완전한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경고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분명 여호수아에게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여기까지 자신을 인도해 오신 분이 여호와시니까 여호와만 섬기고 우상은 결코 섬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자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앞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이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에 의해서 가나안에 들어왔음을 안다면,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보며 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보며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저것은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순간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철병거가 있어서 쫓아내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철병거가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가나안을 모두 쫓아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너희들의 도움인 것을 잊지 말아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이 우리들의 도움이시다.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철병거가 아니라 그 어떤 좋은 것이라고 해도 쫓아내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철병거도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곧 여호와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유다는 철병거에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여기십니까?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반대로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쫓김을 당합니다.
하나님은 철병거를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철병거는 그냥 두고 하나님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들에게서 쫓겨나야 할 것은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 쫓겨남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입니다. 이것은 그냥 그렇게 알고 살아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었음을 안다면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뜻을 두고 살아가라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이 사랑에 마음을 두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뜻을 두고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들의 마음은 유다가 철병거에 마음이 사로잡히듯이 세상의 것들에 우리들 마음이 붙잡힌 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것을 쫓아갑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은 항상 세상을 향해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날 살게 하신 것이 아니라 돈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환경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살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가나안이 더 살기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가나안의 좋은 것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더 즐겨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기보다는 가나안의 것들을 높일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에 붙들린 마음이고 무엇에 끌려가는 마음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고, 하나님의 사랑에 끌려가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이시간 우린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잠겨야 할 줄로 압니다. 내 수중에 있는 돈 몇 푼보다도, 내가 가진 직장이나 집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귀하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살아간다면 그는 분명 자신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사랑 외에 다른 것은 용납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하느냐?'를 묻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살고자 하느냐?'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격이 되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고 붙들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쫓아내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삶에 무엇이 크게 보입니까? 세상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무엇에 끌려갑니까? 세상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입니까? 세상에서 살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은총은 전혀 가치 없는 것으로 보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천국에서 사는 자로 남는 것에 간절함이 있다면 그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피보다 귀하고 가치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찬양 : 오직 주의 사랑에 메여
결단기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철병거에 마음이 사로잡히듯이 세상의 것들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를 위한 기도
-담임목사님 영육의 강건함과 성령충만함, 목회계획을 위해
-1/14(주일) 구역회로 모든 2023년을 결산을 잘 하며, 2024년 예산편성에 지혜를 더하도록
-1/14(주일) 오후 찬양대/교사 임명 예배로 결단하고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1/19(금) 연합속회에 주의 성령이 함께하시고, 2024년 속회마다 모이기에 힘쓰며 함께 부흥을 경험하고, 속장·준속장에게 지혜가 임하도록
-1/21(주일)~24(수) 신년 부흥성회 강사 이현식 목사님의 성령 충만함과 전 성도가 부흥의 주역으로 함께 은혜받고 사명 감당하도록
다음세대와 성인양육을 위한 기도
-다음세대들이 의미 있는 방학 기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 성장을 위한 쉼과 도약의 시간이 되도록
-제자반 훈련생(여자반) 모집과 계획하고 있는 양육 일정 위에 주의 지혜가 임하고, 성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이 불일 듯 일어나도록
-1/16(화)-17(수) 피플퍼즐 세미나에 많은 훈련생이 모집되게 하시고, 건강한 관계 형성을 위해 자신을 이해하며, 스타일을 발견하는 시간 될 수 있도록
1.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자녀들이 되도록
2.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3. 주님의 꿈을 꾸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도록
4. 우리 자녀가 주님의 손에 붙들리도록
어느덧 수능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마음에 평안과 담대함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사 41:10)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게 하옵소서. 육신의 부모는 시험장까지 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자녀의 마음까지 지켜줄 수 없지만,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습니다.
수능 당일, 시험에 임할 때 최상의 컨디션을 허락하시되, 지금까지 공부해 온 내용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력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모르는 문제에 당황하지 않고, 아는 문제에 온전히 집중하게 하옵소서.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26:7)” 말씀을 기억합니다. 욕심을 따라 잘못된 일을 행하지 않게 하시며, 정직함으로 시험에 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수능을 치르는 우리 자녀들과 부모들이 중요한 인생의 고비를 넘으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 동안, 한계 많은 우리의 힘과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세상의 가치와 안목 속에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를 닦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입시의 모든 절차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고자 하오니, 입시 전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신 주님의 인도를 깊이 경험하게 하옵소서
영아부,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다음 세대가 이 시대를 바른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우고 그리스도의 가치관으로 섬길 수 있는 영성과 실력, 겸손을 겸비한 기독교 인재들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향해 갖고 있는 마 음을 품게 하시사, 이 땅의 아픔, 소외된 자들을 향한 사랑, 교회의 사명, 민족 공동체의 회복의 과제를 공감하게 하여 주시사 이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자로 세워주시고, 기도하는 영성을 갖게 하여 주시고, 기도의 일꾼으로 자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다음 세대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참된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예배를 통해 영적 자족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늘 갈급해 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셔서예배가 늘어나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새벽이슬 같은 교회학교가 거룩과 능력으로 무장되어 이나라와 세계 교회를 이끌고 나갈 존귀한 인물들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자신의 삶만 겨우 책임지는 인생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로 저들의 인생을 사용하여 주시사 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하는 디딤돌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먼저 믿음의 길로 이끄시고, 귀한 신앙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전할 수 있게 하셔서 우리 아이들이 주님의 은혜로 자라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음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에 걸 맞는 믿음의 용량을 허락해 주셔서, 저들이 매순간 맞대고 살아가는 세상의 세속적인 문화를 극복해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 모든 환경을 복의 통로로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영적인 안목이 열리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만나 주셔서 가슴에 영생의 소망을 품고 살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의 삶에도 주인이 되어 주셔서, 저들의 평생을 책임져 주시고 영광스럽게 쓰임 받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의 선대가 누린 은혜와 축복을 잘 계승하게 하셔서 초대교회 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세계 교회의 주역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자신의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여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기둥 같은 인물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 안에 다음 세대 사역에 헌신된 신실한 일꾼들과 준비된 지도자들을 예비해 주셔서 열우물교회의 다음 세대 사역이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일본의 지진과 그 여파로 인한 쓰나미의 위험성, 며칠간 지속될 수 있는 여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보호하심이 함께하며, 일본의 한현숙 선교사님의 선교지와 삶을 지켜주시고 선교에 어려움이 없도록
-전쟁의 여파로 극심한 위기와 절망을 겪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주께서 보호하시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평화의 길로 나아가도록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떠한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으며, 나라를 위한 참된 일꾼이 세워지고, 국민들이 깨어있어 함께 선거에 참여하도록
환우를 위한 기도
박화서 장로, 박향 권사, 정권성 권사, 최숙희 권사, 김신영 권사, 김명숙(서) 권사, 이도원 성도,, 오인세 권사, 박욱주 권사, 김수연 권사, 김순옥 권사, 조경아 집사, 허영주 집사, 강연자 권사, 지정화 권사, 김관옥 권사, 김금환 권사, 호경희 권사, 박삼례 권사, 이강문 집사, 남유경 성도, 공준식(이영란 집사 남편)
박향권사 : 산소호흡기로 호흡중이시며 회복을 위해
정권성 권사 : 서구 국제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치료
최숙희 권사 : 얼굴 앞면 마비로 동춘동 나사렛병원 입원하여 치료중
김신영 권사 : 수술 후 일반병동에서 회복중에 있으며 내일 퇴원예정.
오직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고 치유가 있음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함을 입어 죽은 세포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재창조와 치유의 역사가 일아나며 질병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의 영은 떠나가고 생명과 평안으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고통 앞에서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며, 모든 질병의 고통들이 치유의 증거가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만병의 치료자가 되시는 예수님!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기도합니다. 아픈 부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덮이고 치유되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나의 질병이 나음을 입었음을 믿고 고백하오니 믿음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들이 내 몸에서 사라질지어다! 모든 혈액의 수치들이 정상적으로 회복할지어다! 마른 뼈 같은 우리 몸에 생기가 넘칠 찌어다! 강건케 될지어다!
우리의 모든 불안, 낙심, 절망도 감사와 평안으로 회복케 될지어다!
이시간 성령의 불로 아픈곳 태워주시옵소서 연약한곳은 온전케하여 주시옵고, 마비된곳은 풀어주시고, 죽었던 신경과세포는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부정적인 생각 의심의 세력 물리쳐주옵시고 믿어지는 믿음을 주옵소서
만군의 여호와시며 나의 왕이신 하나님아버지 나를 경외하는 너희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리라 하셨으니 저에게 치료의 광선을 내려주시어 영육이 연약한 성도님들에게 거룩한 주 나사렛 예수님 이름으로 병이 치료가 되어 건강과 활력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치료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본 받아 우리의 삶이 말씀 안에서 터를 잡고 세워나가게 하옵소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
오늘도 우리와 함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저희들을 믿음으로 붙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많은 철병거와 같이 마음을 사로잡히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면 쫓아내게 해 주시옵소고,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리고, 끌려갈 수 있도록 꼭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보다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음을 선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귀한 예물 드립니다. / 호명 / 이 예물을 축복하시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예물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역사하심이
온전히 쫓아가야 할 것,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사명 감당하기를 힘쓰는
모든 성도들 머리 위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