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변화된 삶을 살려면 이것을 바꾸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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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변화된 삶을 살려면 이것을 바꾸십시오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코끼리농장을 지나다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덩치의 코끼리들을 우리에 가두거나 쇠사슬로 묶어 놓지 않아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달아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장치라고는 네 다리 중 하나에 묶여 있는 가느다란 밧줄이 전부였습니다.
육중한 체구의 코끼리들이 조금만 힘을 쓰면 언제든 끊어버리고 도망갈 수 있을 듯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들은 꼼짝도 않고 얌전히 묶여 있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궁금해서 조련사에게 물어봤다.
“저 코끼리들은 왜 가만히 서서(stand still)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건가요?”
조련사가 답했습니다.
“어려서 덩치가 조그마할 때부터 똑같은 굵기의 밧줄에 묶여 있었습니다.
당시 나이에는 끊고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성장하면서 덩치가 저렇게 커져 쉽게 밧줄을 끊고 달아날 수 있을 만큼 힘도 세졌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 가느다란 밧줄 하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려는 시도와 노력을 아예 해보지도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 가치들에 익숙하게 적응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많은 일들은 그러한 세상 가치들에 의해 학습된 것일수 있습니다.
마치 자전거나 자동차를 처음에는 배우고, 살피며 타야 하지만 익숙해지면 무의식적으로 타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길들여진 가치라는 밧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묶여 있습니다.
그 가치들은 우리 인생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정해진 틀 속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밧줄을 끊어주셔서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하시려는 일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은 신명기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신명기가 어떤 책입니까?
죽음을 앞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을 남긴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땅에서 반드시 명심해야할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복된 삶입니다.
과연 그들은 이런 복된 삶을 어떻게 누릴수 있을까요?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본론]
1-3절입니다.
이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입니다.
당신들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이것을 지키십시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면 당신들과 당신들 자손이 오래오래 잘 살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이 모든 말을 듣고 성심껏 지키면,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당신들이 잘 되고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강조하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서 오랫동안 잘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궁금했던 것은 어쩌면 다른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하면 그 땅에 사는 엄청난 민족들을 몰아내고 땅을 점령할수 있을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어떻게하면 그 땅에서 농사를 잘지어서 먹고 살수있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딱 한가지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렇게 말씀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실까요?
신명기에서 자주 강조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시내산 사건입니다.
왜 중요할까요?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신 이유도 이런 언약백성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도대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결혼에 비유할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그들을 신부로 삼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에 들어가 오랫동안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참 보잘것없는 이집트 노예에 불과하던 민족에게는 과분하고 놀라운 특권입니다.
저도 제 아내를 책임지겠다고 하고 결혼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랑 결혼한게 아내에게 특권이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가 특권을 누리는 것일까요?
아무튼 이스라엘은 엄청난 특권을 누린만큼 그에 따른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만 일관되게 섬기는 것입니다.
결혼한 남편과 아내가 바람피우지 않고 서로에게 충성해야할 의무가 있듯 말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그들의 특권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러한 의무를 잘 지킬수 있도록 선물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 제사를 철저히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 백성이 되는게 아닙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점퍼만 입고 다닌다고 서울대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학교 학생에 걸맞는 수준과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만 학생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제사들과 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렸지만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역시 누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인지 말씀해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21-22 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과연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기적을 체험한 사람입니까? 예배 열심히 드리는 사람입니까? 성경 열심히 읽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까?
유대인들이 무엇인가를 ‘안다’라고 말할때에는 그 속에 실천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코 머리로만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언자 호세아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친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이스라엘이 모른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대단한 목사나 성경학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안다고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삶은 말씀을 아는 만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새해 우리가 힘써야 할것은 성경지식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려는 의지와 태도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올한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순종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기는 쉬워도 순종은 참 어렵습니다.
알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순종해야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받을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왜 이리 어려울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욕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짜 원하고 사랑하는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내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 있을까요?
4-5절입니다.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이 말씀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수천년동안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고백입니다.
신명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바로 4-5절입니다.
다시 4-5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과 뜻과 힘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도 원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의 사랑과 갈망을 하나님의 사랑과 갈망에 일치시키라는 명령입니다.
내가 무엇을 사랑한다, 무엇을 욕망한다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내가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믿는 것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이 내가 진짜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사랑의 대상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 말씀과 계속 부딪히고 저항하고 도망가려고만 할 것입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은 아무리 누가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말해줘도 멀리하려고 할 것입니다.
나의 욕망과 더 잘 어울리는 것은 달콤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가치들이 내 입맛에 잘 맞습니다.
그러므로 가만두면 내 마음은 마치 자석처럼 세상에 달라붙습니다.
우리가 왜 자꾸 불안할까요?
우리 마음을 나침반에 비유하자면 우리의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하면 결국 불안을 느낄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중 한명인 어거스틴은 이것을 중력에 비유했습니다.
불은 항상 위를 향하려고 합니다.
돌은 항상 아래를 향하려고 합니다.
물 속에 공을 넣으면 아무리 눌러도 떠오르려고 합니다.
그래서 물 속에 공을 가둬두려고 하면 공은 자꾸 불안한 상태가 됩니다.
그는 우리 마음도 같다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이 세상을 향하면 항상 불안하고 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향할 자리는 어디일까요? 바로 하나님 입니다.
우리 영혼의 참된 안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때 임하는 것입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임스 스미스의 ‘습관이 영성이다’라는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일들이 바로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루 동안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은 겨우 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95퍼센트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라는 것입니다.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묵상하거나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 보는 일입니다.
SNS검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짜 원하고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의 이러한 무의식적 행동들이 바로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곧 습관이라면, 거룩한 습관을 통해 우리 마음의 눈금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은 마치 나침반같아서 가만 내버려두면 자꾸 세상을 향하게 되는데 거룩한 습관들을 통해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재조정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그토록 강하게 금지하신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의 마음은 자연스레 그 땅의 우상을 향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매력적인 우상, 풍요의 신 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세상에도 가나안 땅에 있던 우상들이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 하나님을 사랑할수 있을까요?
6-8절입니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또 당신들은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말해서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말씀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묵상은 세상을 향해있는 우리 마음의 눈금을 하나님께 재조정할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을 속박처럼 여깁니다.
하나님이 너무 일방적이고 강압적인것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속박하려하시는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마음의 나침반이 제대로된 방향을 찾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나 쉼없는 삶이 아닌 참된 평안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순종이 이토록 어렵습니까?
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순종할수가 없습니다.
내 사랑의 대상이 바뀌지 않으면 순종할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맛이 새롭게 바뀌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진 습관을 버리고 의지적으로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힘이 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세상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삶은 물 속에 갇혀 튀어오르려는 공처럼 언제든지 불안하고 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쉼으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올 한해 어떤 거룩한 습관을 들여야 할까요?
운동하는거? 공부하는거? 청소하는거? 다 좋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수는 없습니다.
올한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