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가나안의 경계에서 (신 1:1-18절)

매일성경 새벽기도(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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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매일성경이라는 책을 가지고 여러분들과 새벽기도를 할려고 합니다. 그런데 내일은 새벽기도가 없는 관계로 신명기 1:1-18절 말씀을 송구영신예배 시간에 살펴보려고 합니다. 준비하다가 보니까 송구 영신예배와 딱 맞는 내용이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신명기를 가리켜 성경학자들은 구약의 심장 박동이라고 말합니다. 즉 구약성경 전체의 생명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 바로 신명기라는 것입니다. 함께 신명기를 살펴보며 이런 박동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40년 11월 1일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모세가 율법을 다시 설명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무려 40년 이상을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왜 그들이 그럴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하고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 관점에서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불순종한 출애굽 1세대들이 다 죽고 난 다음 제 2세대들에게 모세는 다시 율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에 대한 그들의 순종 여부에 따라서 앞으로의 그들의 삶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모세가 광야 생활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4절에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가나안땅까지 자기들이 지나온 여정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중요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시내산에서 열하루면 갈 수 있는 가나안인데, 무려 40년이나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의 무능해서입니까? 아니면 변덕을 부려서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불신과 불순종 때문에 이렇게 지체되고 지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고 다짐을 저버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서 멀어지는것 만큼 약속의 땅에서도 멀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여정에 있어서 장애물은 여건도, 환경도 아닙니다. 바로 뿌리깊은 불신이고 불순종입니다.
우리가 가령 등산을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등산로에 있는 표지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 표지판을 믿지 못하고 우리 마음대로 산을 오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정상에 도착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수밖에 없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는 과정 가운데 없는 길을 만들어 간다고 온갖 고생을 해야 합니다. 게다가 군데 군데 있는 함정과 올무와 덫을 피한다고 예민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정말 갈수 없는 길이어서 실컷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수고도 해야 합니다. 즉 그 시간은 표지판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걸리고, 고생과 수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길은 지도나 네이게이션이 알려주는대로 가야지 우리 마음대로 가다가는 목표지점에 제 시간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아예 못가서 큰 낭패를 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대로 그냥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냥 하나님만 바라보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기만 하면 아무 문제없이 빠른 시일내에 가나안 땅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요, 그들은 하나님의 판단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불신했습니다. 그들을 애굽땅 종살이에서 건져내고,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퍼부으시고, 그들의 재산과 가족들을 온전히 보전한채로 애굽을 탈출하게 하셨고, 그들이 광야길을 가는 동안 물을 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주시며 그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는데요,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때에 자기들 마음대로 정탐꾼을 보내자고 합니다. 그냥 시키는대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 자기들 눈으로 한 번 가나안 땅을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가나안 땅은 좋다. 그런데 거기 백성은 너무 강해서 우리모두 싸우면 다 죽는다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원망하고, 짐싸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까지 합니다. 결국 죄로 광야에서 무려 사십년이나 허송세월하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결국 신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 이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신뢰가 중요합니다. 특별히 우리도 본향을 향해 순례하는 순례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덕목이 요구됩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신뢰와 순종입니다.
이제 2023년이 마무리 되고, 곧 2024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저는 우리 지세포 제일교회 모든 성도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고, 모든 안전장치를 다 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우리 가운데 문제가 없다고 보장하지 못합니다. 2024년 우리 모든 성도들의 삶이 형통하고 걱정거리가 없기를 소망하지만, 인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저는 우리가 맞이할 2024년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상황에도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며,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결단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에서의 풍성한 삶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복된 삶의 열매를 신뢰와 순종을 통해 거두는 2024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로 6-8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호렙산을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호렙산이 어디일까요? 바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입을 말합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지나 광야를 거쳐서 이스라엘은 시내산에 도착하였습니다. 6절에 오면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라고 합니다. 네 오래 머물긴 했습니다. 무려 이 곳에서 열 한달정도 머물렀습니다. 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충분히 오래 머무르며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호렙산이야 말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정말 특별한 장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짜릿했던 영적인 경험과,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감동이 호렙산을 생각할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을 때에, 초막 셋을 치고 살자고 했던 베드로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이 호렙산이 출애굽 여정의 종착지도, 영원히 머물러서도 안되는 곳임을 강조합니다. 왜요? 하나님은 이 시내산이 아니라 바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여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세상에서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여기 오래 있었으니 산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 우리는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보냄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호렙산 위에만 머문채 세상을 등지는 존재가 아니라, 산 아래로 내려가야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해야 사람들이 바로 우리라는 말입니다.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를 한 번 보십시오. 같이 읽어볼까요? “ 바른 신앙 바른 행동 교회 넘어 세상으로”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의 믿음이 교회당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교회의 문턱을 넘어 세상으로 뻗어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면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렙산에서 그 놀라운 경험에만 정주하려고 하지 말고, 세상으로 내려가서 그 복을 다른 주변에게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이스라엘을 통해서 주변 나라들이 복을 받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착각하는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렇게나 살다가 교회와서는 거룩하게 살면 된다는 착각입니다. 또는 교회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함을 경험하더라도 세상에 나가서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거룩함들을, 교회에서 듣는 복음들을 세상속으로 가져가기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렙산에만 머무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산에서 내려가 방향을 돌려 아모리 족속의 산지와 그 근방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네겝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명령합니까? 하나님 나라는 산 위에 고립된 나라로 머물지 않고, 우리가 내려가서 세상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확장해야 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우리는 교회를 넘어 세상으로 복음을 확장하며,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널리 편만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 이 사명을 수행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호렙산에 머물며 호렙산에 머무를때와 세상에 내려왔을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듣는 소리가 무엇입니까? 니나 내나 피장파장이다 아닙니까? 교회 다니면 뭐하노 나랑 하나도 차이가 없는데.. 라는 말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하다”라는 말이지요.
게다가 오늘날 시대는 복음에 대해서 호의적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삶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까? 우리 기독교가 세상에 대해 복음의 본질을 전하기 보다는 다른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는 우리 지세포제일교회 모든 성도가 내 자신이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대사로 임명된 자들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피곤하게 하고 우리는 세상을 잘못되게 하고, 우리는 세상을 안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이 땅에 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 땅에 복을 주러 온 복의 대사임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 어느 누가 복 주러 온 사람들 싫어하겠습니까? 누가 복주러 온 사람들 미워하겠습니까? 어떻게 이 일을 이룰 수 있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넘어서 세상 가운데에서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때, 사람들은 우리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로 부터 흘러가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내가 하나님 나라의 대사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우리 때문에 가정이 복을 받을 수 있고, 회사가 복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때문에 친구들이 복을 받고, 친지가 복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올 한해도 이런 믿음으로 살아서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9-18절에서 모세는 백성의 수가 많아지면서 자신에게 가중된 역할과 책임을 분담할 지도자들을 세우고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와 리더십을 그들과 나눕니다. 이렇게 세움을 받은 사람들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기초하여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사회에 공의를 세우는 일을 맡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혼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울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난다긴다한들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모세보다 뛰어난 지도자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런데요, 그 뛰어난 모세조차도 혼자 일을 감당 할 수 없어서 결국에 자신을 도울 사람들을 지도자로 삼아 자기의 일을 위임하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을 목사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기관에는 조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직을 통해서 좀더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되도록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하려고 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승진하고 성공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효율을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능력을 따지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누구나 함께 동참하여 일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세상의 조직은 일을 못하면 쫓아내고, 핀잔을 주고 낙오시키지만, 교회는 그런곳이 아니라 못하면 기다려주고, 힘들면 격려하고, 어느 하나라도 잘하면 그 달란트를 세워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유인물을 통해서 교회의 청지기들을 임명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들은 교회를 섬기는 일에 목사의 짐을 나눠진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섬기도록 권위와 지도력을 위임해 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에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 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좀 못해도 됩니다. 부족해도 됩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힘을 보태고 함께 하면 됩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분들의 섬김을 보면서 참 감사할때가 많습니다. 내년에도 때로는 부담스럽고 힘드시더라도 맡은바 일들을 잘 감당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직회의 부원으로 잘 섬겨 주시고, 주일학교 교사로서 우리 자라는 아이들을 잘 양육해 주시고, 찬양대원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일을 해 주셔서, 모두 함께 우리 지세포 제일교회를 아름다운 교회로 세워가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미 은퇴하신 분들도, 은퇴했다고 손 놓지 마시고, 지금처럼 우리 교회를 위해 헌신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기도의 자리에 힘써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무런 일도 부여받지 못한 성도들도 나는 교회의 일과는 별개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힘든 손길이 있으면 나서서 도울수 있는 마음으로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일이야 말로 함께 동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함께 동역하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위치에서 맡겨진일들에 최선을 다할때, 정말 바른 교회로 우리 교회가 세워져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제 바야흐로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순종해서 십일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사십년하고도 열달을 넘게 광야에서 방황하는 삶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시겠습니까 복음을 들고 교회를 넘어 세상속으로 들어가서 복이 되는 자가 되겠습니까? 세상사람들과 하나도 다를바 없는 삶을 살아서 복이 되는 일에 실패자가 되겠습니까? 교회의 사역에 열심히 동참하여 함께 아름답게 교회를 세워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열외로 모든 일에 빠져있겠습니까?
담임목사로서 여러분들에게 간청드립니다. 우리 2024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지판만 바라보고 신뢰와 순종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복음을 교회 안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자랑하고 우리 지세포 제일교회를 자랑하는 일들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모든 사역 가운데 함께 동참함으로 누구는 힘들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손길들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는 그런 지세포 제일교회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2024년에도 아름답게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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