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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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 6:19-20
제목: 가장 큰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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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서론
죄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탐심, 우상숭배, 거짓말, 시기, 질투, 게으름 모두 죄입니다. 그런데 2주 동안 성교육을 들으면서 여러분 중에서는 이런 질문을 품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동성애만 죄야?”, “음란만 죄야?”, “왜 이렇게 성만 강조하지?”
실제로 기독교 내에서 이러한 성경적 성교육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런 비판이 많습니다. 죄에는 다른 종류가 많은데 왜 성에 관련된 죄, 또는 동성애만 강조하냐는 겁니다.
일단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죄 중에서 성에 관련된 죄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이 가장 심각하게 보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러한 성격을 잘 나타내는데요,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번에 살펴봤듯이 고린도교회는 굉장히 많은 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유희와 향락과 도덕적 타락이 난무했습니다. 특히 음란의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권면합니다. 19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몸이 뭐라고요? “성령의 전”입니다. 성령님의 집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음란의 죄가 이 “몸”에 직접적으로 범하는 죄라는 겁니다. 18절 읽어볼까요?
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언급한 죄들 중에서 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짓는 죄는 음란이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제가 질문을 하나 해볼게요. 음란만 자기 몸에 대하여 짓는 죄인가요? 그러면 거짓말은요? 식탐은요? 게으름은요? 술 취함은요? 이런 건 몸에 대하여 짓는 죄가 아닌가요? 그런데 바울은 희한하게 “음란”만 몸에 대하여 짓는 죄로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다른 죄들이 몸에 대하여 짓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성령님의 집이니까, 우리가 몸으로 짓는 죄는 모두 몸에 대하여 범하는 죄가 맞죠. 하지만 그 중에서 음란이 가장 심각한 죄라는 거예요. 강조의 표현입니다. 왜 바울은 음란을 “몸에 범하는 죄”로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음란만이 유일하게 타자를 소유하고자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음란만이 다른 사람, 다른 인격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죄이기 때문이에요. 음란만이 죄를 범할 때 다른 “인격”을 필요로 합니다.
잘 보세요, 물론 궁극적인 죄는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지만, 그저 일반적인 차원에서 봅시다. 거짓말하는 것? 안 하면 돼요. 그러면 문제가 얼추 해결돼요. 게으른 것? 부지런하면 돼요. 식탐하는 것? 절제하면 돼요. 술 취함? 술 끊으면 돼요. 이렇게 대부분의 죄들은 다른 인격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혼자서 해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음란은요? 성은요? 다른 인격이 무조건 필요합니다. 특히 성은 한 몸을 이루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성은 다른 사람의 몸만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죄도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이건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은 죄가 아니에요. 오직 성욕만이 타자를 소유하고 싶은 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 인격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오피스와이프라는 개념도 생기고, 결혼했는데 여자친구, 남자친구 따로 두는 문화도 발생하죠. 특히 서양인들이 그런 마인드가 강하죠. 그러나 절대 아닙니다. 성욕은 생물학적인 욕구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욕구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갖고자 하는 행위, 이것이 음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부부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존재에게도 소유될 수 없는 분이신데, 우리에게 소유되기로 작정하신 거예요.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음란의 죄는 이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인격을 집어넣는 거예요. 하나님 대신에 다른 존재와 교제하기로 하는 것이 음란입니다. 돈은 인격이 없어요. 식탐에도 인격이 없어요. 그러나 음란에만 인격이 필요합니다.
“그럼 음란물 시청하는 것도 그런가요?” 네, 당연합니다. 음란물 보는 것이 그 화면 안에 나와있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행위가 반복되면 정신이 피폐해져요. 음란물을 시청할 때만큼은 그 사람을 소유한 것 같았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그렇지 않으니까요. 다시 외로워집니다.
결론
요즘은 음란이 남자만 해당하는 문제가 더더욱 아닙니다. 최근에 넷플릭스의 29금, 39금 이런 드라마들이 청소년이 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1위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이유를 분석하는 기사들을 보면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성들도 절대 예외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 참된 성적인 질서를 회복하려면 하나님과의 부부관계가 먼저 실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소유해야, 예수님과 먼저 연합해야, 음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란을 통해 다른 사람을 소유하려고 한다면, 사람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불만족스러워지고, 그러면 더한 자극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음란의 죄가 가장 심각하다는 것을 꼭 명심하세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체해버리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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