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0 viewsNotes
Transcript
요한복음
신년 말씀 기도회 1 2024.1.8 (월)
개론
요한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충만한 계획이 절정을 이룬다. 세 복음서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기록하고 있다. (초자연적 탄생 - 세례 받으심 – 변형 – 십자가 – 부활 – 승천)
공관복음은 그리스도를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요한복음은 그에 대한 해석을 기록하고 있다. 세 복음서가 예수님의 외부적인 것을 보여 준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내부적인 것을 보여 준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을 제시한다. 세 제자들이 우리 주님의 공적인 선포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요한은 주로 주님의 사적인 대화의 생각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자
사도 요한이 저자이다. 예수님은 세베대의 아들이었고 야곱의 형제였다(마 4:21). 주님께서는 이 두 사람에게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여 주셨다(막 3:17). 요한은 세 개의 서신서와 계시록 그리고 요한복음서를 썼다. 요한은 에베소서에서 사랑받는 목회자였으며 그후(기원후 95년)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밧모섬으로 귀양가게 되었고 거기서 계시록을 쓰게 되었다.
중심 메시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역시 이 모든 복음서를 망라하는 중요한 절은 요한복음 20:31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구조
서론(1:1-18)
공적 사역(1:19-12:50)
사적 사역(13-17장)
수난과 죽음(18-19장)
죽음을 이기심(20-21장) 참고) 책별성경연구 _ 앨런 스트링 펠로우
1일 _ 요한복음 1-4장 _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1. 1장 말씀이 육신이 되다. - 예수님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리와 함께 집을 짓기 위해 오신 하나님입니다.(1:1-51)
요한복음은 "태초에"(요한복음 1:1)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세기를 떠올리게 합니다(창세기 1:1).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이 매우 강력하고 구체적이어서 소리 그 이상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어둠 속에 빛을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친히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요 1:5).
우리는 하나님의 빛과 말씀이 나타나면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빛을 보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유대인이든 이방 사람이든 자기 스스로의 능력과 지혜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요1:1-5;1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한이라는 사람을 보내셔서 예수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는 사실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십니다. 요한은 겸손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요 1:20). 대신 그는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 "나는 광야에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외치는 자의 소리니라"(요 1:23)로 자신의 사역을 정의했습니다.
요한은 회개와 갱신의 표시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이 예언적 관습이 예수님이 가져올 더 큰 쇄신(그릇된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요 1:33). 요한의 세례는 내적 정화의 상징이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빛에 눈을 뜨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진정한 쇄신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마침내 예수님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합니다(요 1:29). 예수님이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우리 죄의 어둠을 걷어내고 생명의 빛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세상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했지만, 요한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보고 증언했습니다(요 1:34).
2. 2장 물이 포도주가 되다. - 예수님께서 자신의 물과 피로 백성을 정결케 함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1-2:25)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번째 기적을 행합니다. 요한은 이 기적을 예수님의 위대함과 영광을 가리키는 표적이라고 말합니다(요 2:11).
예수님은 마리아의 요청에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2:4)라며 거절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종들에게 유대인의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요 2:6-7). 그리고 그 물은 하객들의 잔에 부어지는 순간 혼인 잔치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주가 됩니다(요 2:10).
그리고 유대인의 명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은 성전에 가셨고, 동물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십니다(요 2:15). 그리고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있다고 호통하십니다(요 2:16). 이러한 성전 관습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는 성전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규정할 권위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표적으로 그 권위를 증명해 달라고 요구합니다(요 2:18).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대답하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표적(SIGN)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자체가 예수님이 가져올 기쁨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요 2:11). 예수님은 자신과 그의 백성 사이의 결혼식에 우리를 초대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결혼식에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가기 전에 항아리의 물을 가지고 묻은 먼지를 씻어내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아리의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은 오직 포도주와 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결한 포도주와 물은 예수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질 때 십자가에서 부어집니다(요한복음 19:34).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성전의 불결한 관행으로부터 성전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의 모든 죄를 정결케 하는 분이십니다. 포도주가 부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정결한 피는 우리의 결혼식 날 기쁨을 보장합니다.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가 그의 백성을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기 위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제물을 사고 파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장차 예수님의 몸으로 지어진 성전이 파괴되고 사흘 후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백성 사이의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3. 3장 다시 태어남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영적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며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3:2).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거듭나야만"(요 3:3)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깨닫지 못한 채 어리석은 말을 하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인간의 세계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태어나야 합니다. 이처럼 영적인 문제를 이해하려면 거듭나야 합니다(요 3:6). 볼 수 있는 새로운 눈,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귀,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구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항상 마음과 본성의 변화를 의미함을 정확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명기 30:6).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왜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3:12).
민수기에는 영적이지 않고 기적을 무시하는 이스라엘이 독사의 재앙으로 벌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민수기 21:6).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놓으면 누구든지 그것을 바라볼 때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민수기 21:8). 니고데모는 모든 인류의 혈관 속에 하나님을 부정하는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육체적 독으로부터 구원할 방법을 제시하셨던 것처럼, 구원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거듭나게 됨을 기대해야 했습니다(요 3:14-15).
하나님은 세상을 미워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십니다(요 3:16). 예수님은 니고데모처럼 불신앙 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 모두를 건져내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4. 4장 우물가의 여인 - 예수님은 신실한 유대인입니다. 죄인과 이방인을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께로 초청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마을 사람들에게 메시아에 대하여 전하고, 그들도 믿게 된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4장 1-41절). 두 번째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두번째 표적을 행하시기전 “지자는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십니다.(요4:44).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인, 왕의 신하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가버나움은 표적과 기사를 원하였습니다.(4:48)
특히 사마리아 인은 예수님의 첫 번째 선교사가 됩니다. 그녀의 마을 전체가 예수를 메시아로 믿게 된 것은 예수님의 기적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요 4:42). 고향(갈릴리 가버나움)에서보다 수님의 메시지는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죄인들과 강퍅한 사람들 모두가 죄에서 자유를 얻기를 원하십니다. 사마리아에서 환대를 받으며 사역하신 후, 예수님은 오해와 배척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곳으로 돌아가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거둬들이기 위해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셨던 것처럼, 예수님께 목이 마르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께서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요한복음 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