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0 겨울 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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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25–37 (NKRV)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제사를 지내는 6가지 방법.
저는 제사장 하고 여러분들은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레위기 1:1–9 (NKRV)
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렇다면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2절이다.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소나 양이라고 하였으니 오늘의 제물은 소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가장 먼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축중에 제물 될 만한 것을 고르는 것이다.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흠 없는 것이다. 아무것이나 제물이 될 수 없다. 꼭!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제사의 첫번째 단계는 흠없는 재물을 골라 그 재물을 회막까지 데리고 오는 것이 첫번째 단계이다.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흠 없는 재물을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몇분이면 끝 날 것이다.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당시에는 탈 것이 없었기에 재물을 회막까지 끌고 와야 한다. 그렇다면 회막은 여러군데 였었나?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에 오직 단 한 곳! 예루살렘에 회막이 있었다. 흠 없는 상태로 회막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멀미, 귀밑에)
그러기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회막앞에서 재물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는 가축중에 고를 것을 말씀하신다. 다시말해 집에서 기른 가축을 재물삼아야 한다. 집에서 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안다. 일년 아니 몇달 아니 몇일만 같이 있어도 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애정으로 키운 그 가축을 재물로 삼아 회막으로 가지고 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여튼 재물을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안수” 이다. 4절에 보면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렇다면 안수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제사장인가? 아니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인가? 제사장이 안수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안수하는 것이다. 안수의 의미는 “전가” 이다. 안수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손을 대고 기대어 서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안수는 죄의 전가이다.
3번째는 무엇인가? 5절이다. 잡는다. 잡는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재물을 잡는것인가? 안수한 사람이 죽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안수하는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안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를 지내고자 하는 사람이 재물을 죽이는 것이다.
제사는 남자만 드리는가? 여자도 드리는가? 레위기 1:2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누구든지라고 한다. 그러니깐 여자도 제사를 드릴 수 있다. 단 죄와 관련된 제사는 여자도 제사드린다.
다시말해 죄와 관련된 제사는 그누구도 대신 지내 줄 수 없고 본인이 직접 드려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소 잡아 보았는가? 안수가 끝나면 제사장이 칼을 준다. 어떻게 죽일것인가? 동맥, 미간사이, 심장
동맥은 즉사 코스가 아니다.
당시 제사는 은혜롭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글로만 보니깐 거룩해보이고 은혜로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제사만큼이나 처참하고 끔찍한 것은 없다. 제물은 자기가 왜 죽어가는지 모른다. 제물이 죄를 지었는가? 그렇지 않다.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제물이 대신해서 죽는 것이다. 자신이 기르던 가축이 난도질 당해 죽는 것이다. 그 마음이 어떻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라면 본인이 직접해야 하는 것이다.
양을 잡는 것을 봤는데 양은 정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발버둥을 치거나 살려고 뭘 하지 않는다. 그냥 죽이는 사람을 보며 죽어간다.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여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죽이는 것이다.
그다음은 6절이다. 무엇을 하는가? 가죽을 벗긴다. 주어가 바뀌지 않았으니 누가 가죽을 벗기는 것인가? 제사지내는 사람이 직접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사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려 온 그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제사는 수동적이지 않다. 능동적이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온 사람이 다 하는 것이다. 혹시 동물의 가죽을 벗겨 본 사람이 있는가? 가죽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그 다음에는 각을 뜬다. 이것은 모든 마디를 분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목을 분리해야 한다. 목을 자르는것이 쉽겠는가? 절대 쉽지 않다. 과거 문헌헤 의하면 과거 망나니 도 사람의 목을 벨 때 단칼에 베지 못한다. 목을 베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3번에 걸쳐 내리쳐야 목이 잘린다. 그러니 우리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여튼 몸의 마디마디를 다 조각내어 번제단 위해 태우면 제사는 끝이난다. 이것이 제사이다.
흠없는 제물을 회막으로 가져와 안수하고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조각을 내고 불에 태우면 끝이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읽은 레위기 1:9에 이해 할 수 없는 단어가 있다. 함께 읽겠다.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이렇게 제물이 타는 냄새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제사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좋아하실까? 그런데 에스겔서에는 분명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 “나 여호와는 악인의 마땅한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 할 때 죽어 마땅한 그 사람이 죽는 것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면서 왜 아무런 죄가 없는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 죽는 것은 왜 이렇게 좋아하시는가?
잘 기억해야 한다. 제사의 6단계 중에 한단계가 빠지면 도살과 다를 것이 없다. 다시 말해 도살에서 이 한단계가 들어가면 제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 한단계가 제사를 제사로 만드는 것이다.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 한단계 이다. 무엇인가? 바로 안수 이다. 안수의 의미는 “전가” 이다.
그러기에 소를 끌고온 사람이 소에게 안수한 순간 그 사람의 죄가 누구에게 전가되는 것인가? 소이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안수한 이후부터 하나님의 눈에는 소가 죽는 것인가? 아니면 이 사람의 죄가 죽는 것인가? 죄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제사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이다. 소나 양이 죽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죄가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지 알겠는가?
우리는 정말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하면 죄 용서가 된다. 그래서 죄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죄는 이렇게 다루셔야 하나님의 분노가 사그러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사이다.
만약에 소가 없다면 이 모든 제사를 내가 감당해야 하는것이다. 내가 죄를 범했으면 내가 지은 죄 값을 누가 감당하는 것이 공의겠는가? 내가 죄를 범했으면 내가 죄 값을 감당하는 것이 공의다.
소가 없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나에게 임하는 것이다. 나의 심장을 쪼개고, 동맥을 찢으시고 가죽을 벗기고 조각을 내서 태워져야 그때서야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뭐하시는 것인가? 나 너에게 진노를 내리기 싫어!! 그러니깐 어서 제물 가져와라 그리고 그 소에게 너의 죄를 다 전가 시켜라. 그래서 내 진노가 그 소에게 다 쏟아지도록 해라. 라는 것이 제사이다.
그래서 사람이 제물에게 안수 할 때 나의 죄가 제물에 전가 된다. 그래서 나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가 제물에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수를 죄의 전가가 아닌 전가라고 말 했다. 무슨 말이냐 사람이 제물에 안수 할 때 사람의 죄가 제물에게 전가 된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또 전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 제물의 흠 없음이 사람에게 전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흠 없는 제물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누구 때문인가? 하나님 때문인가? 우리 때문인가? 우리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렇게 불평한다. “하나님 짜증나네… 아니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피곤하네.. 아니 조금 흠 있으면 어떤가?! 참…… 너무한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래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흠 있으면 안돼!! 다시 가! 다시 가!” 누구를 위해서 인가? 우리를 위해서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레위기에 의하면 화목제물로는 앞다리가 없는 것도 받으신다. 흠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앞다리가 상한 것도 받으신다. 하지만 죄와 관련된 제사에 대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자 이제부터 잘 들어야 한다. 우리가 죄를 범한다. 그러면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없다. 그누구도 감당 할 수 없다. 그 죄에 대한 심판 진노 앞에 누구도 서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나를 직접 심판하셔야 한다. 나의 목을 베고 심장을 찔러 죽이시고 나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불에 넣으면 그때서야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냐하면 우리대신 예수님을 제물로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난 너 못 죽인다, 그러니 니 죄 빨리 예수한테 전가 시켜라”
그러면 나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 될 때 나에게 임해야 할 마땅한 하나님의 진노도 예수님께 따라가는 것이다.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한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 값을 예수님이 대신 책임지시는 것이다.
질문을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내 죄를 예수님께 전가 시키신적이 있는가? 속으로 답해봐라 내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여러 직분을 가지고 있고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 내 죄를 전가 시킨 적이 없다면 마지막날 우리는 심판받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해결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전가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믿음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죄는 내가 지어놓고 자기가 할결 할 방법이 없어서 그 죄를 예수님한테 덮어 씌어 자기에게 임해야 할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께로 가게한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이 무슨 자랑이 있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무엇이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천하의 못된 사람이 우리인데…
내가 예수님께 나의 죄를 전가 시킬 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무엇이 우리에게 전가되는가? 바로 흠 없음이다.
그러니깐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흠 없음이 내게 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흠없음을 조금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의” 이다. 다시말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 전가 되고 예수님의 의가 나에게 전가 되어 의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있는 의는 내것인가? 예수님인가? 당연히 예수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그 의를 내것이라고 인정는주시는 것이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칭의 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하는것이다.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예수믿으면 복받는다. 예수 믿므면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구해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좋은 이웃이 되려고 애쓰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온전히 믿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강도만난자의 좋은 이웃이 되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강도만나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나의 신앙을 보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원래 그런존재였다. 우리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통해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이시간 기도하기 원하는데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기 원한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