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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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시편 2편
우리는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과 악인에 대한 말씀을 살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시편 1편과 2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1편에서 복으로 시작해서 2편에서 복이 있다는 선언으로 끝을 냅니다. 1편에서는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라고 선언을 했고, 2편에서는 아들에게 대적하는 자는 길에서 망할 것이라는 선언을 합니다.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2편에서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이고, 1편에서 악인은 2편에서 여호와의 아들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연결이 됩니다. 결국 시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진리와 함께 악인은 망할 것이라는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2편을 살피면서 바로 이 점을 다시금 확인할 것입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들은 온 세상과 온 우주의 왕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치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통치를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로는 이 세상의 악함으로 믿는 신자들까지도 의심에 빠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약함 때문일 뿐이지, 주님의 통치는 확실하며, 하나님의 승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완성된 일입니다.
이 세상은 경건치 않은 자들이 권세를 쥐어잡고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시편 2편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노래합니다.
시편 2편은 구조가 간단합니다. 세절씩 묶어서 네 개의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1-3절은 하나님과 그분의 기름부음 받은 왕에게 대적하려는 민족들의 계획을 말합니다. 4-6절은 그들의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 나옵니다. 7-9절은 민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이 보좌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나옵니다. 10-12절은 대적하는 민족들에게 강력한 선언과 함께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 말씀은 1차적으로는 다윗왕가의 모든 왕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지만 결국에는 가장 위대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이 됩니다. 이러한 관계성을 잘 생각하면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각각의 연들을 따라서 말씀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절의 처음 시작은 놀라움을 담은 질문과 함께 시작을 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이방나라들과 민족들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일이고, 이들이 꾸미는 일은 그저 헛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분노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왕에게 향한 것이고, 이들이 꾸미는 일은 하나님과 그가 세우신 왕을 대항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한글성경에서는 1절 마지막에 “꾸미는가”라고 번역을 했는데, 이 단어가 1편에서 나오는 “묵상하는도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1편을 설교할 때, 묵상한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가 깊이 생각한다는 뜻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할 때는 묵상한다는 좋은 의미가 되지만, 악한 것을 깊이 생각할 때에는 간사한 생각이나, 거짓말 등의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이 단어만 가지고도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인가입니다. 주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묵상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악한 것을 깊이 생각하며 일을 꾸미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주님께서 간사한 우리들의 심령에 은혜를 베푸시어,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절에서는 1절에서 분노했던 대상이 누군지를 밝힙니다.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이방 나라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미워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데 그것이 3절에 설명됩니다.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지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2절의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입니다. 그런데 관원이라는 말이 높은 관직을 얻은 사람정도로 생각이 되는데, 원어적 의미는 통치자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표현들입니다. 세상의 왕들과 통치자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다스림도 거부합니다. 그래서 3절에서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는 말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지배받는 것을 속박으로 보았고,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대항하자는 의미인 것입니다.
1-3절의 일이 다윗 시대에도 있었지만,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있을 때부터,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직후와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권세자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기 바빴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전에는 원수처럼 지내던 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를 공모합니다. 또한 자신들을 침략해서 통치하고 있는 로마까지 끌어들여서 죽이기를 공모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자, 제자들을 잡아서 가두고, 채찍질하면서 결코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핍박을 합니다. 자신들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왕이시라는 사실을 결단코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 역사에서도 이러한 일들을 계속되어 왔습니다. 후에 초대교회사를 다룰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초대교회는 10가지의 대 박해를 겪었습니다. 이에 관련된 글들을 보면, 예수님을 왕으로 섬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러한 박해도 역시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박해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는 교회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반역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반역에 대해서 웃으십니다. 반역하려는 세상의 왕들과 하나님의 권세의 차이를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반역을 준비하는 자들이 있는 곳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반역자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권력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세상이라는 좁은 공간에 제한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앉아 계셔서 모든 세상을 제한없이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4절에서는 하나님을 ‘주’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절대주권자이시고, 나머지는 모두가 종일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웃으시고, 비웃으셨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반역자들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웃으시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분을 발하시고 진노하심으로 놀라게 하신다고 표현을 합니다. 원어를 직역하면 조금 표현이 다릅니다. “그때에 그가 그들을 향하여서 진노하심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가 분내심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대적자들에게 분노하시고, 진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결코 대적자들을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그들이 잠시 잠깐 이기고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분명히 불타오르는 듯한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시고, 대적자들을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대적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대적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왕을 세우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해도,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웁니다. 스펄전은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말 놀랍고 장엄한 선포가 아닌가! 대적하는 자들이 막고자 하는 바로 그 일을 하나님은 이미 행하신 것이다. 그들이 꾀하는 동안, 그분은 이미 이루셨다. 사람들의 뜻은 헛된 것으로 돌아가고,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스펄전의 이 설명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대적자들은 서로 모여서 힘을 합치고, 뜻을 모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다 이루시고, 대적자들의 뜻과 노력이 헛된 일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이기지 못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승리하시고,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하는 말에 주위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왕은 왕이 마음대로 하라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왕을 거룩한 산 시온이라는 장소를 지칭하시면서 그곳에 세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온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 구별된 특별한 산으로 설명됩니다. 즉, 시온에 왕을 세웠다는 것은 그 왕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잘 통치하는 것이 왕을 세운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잘 통치해야 하는데,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이고, 왕을 세운 목적입니다.
앞에서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된 박해가 있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박해를 받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만을 예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지 말고, 다른 신들도 섬기고, 로마 황제도 섬기면 살려주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만 한다면, 죽을 이유도 없고, 박해를 안 받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신 분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해야 함을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렇게 이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으신 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속한 예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와 구원의 목적입니다.
이제 7절로 넘어가면서 말하는 존재가 바뀝니다. 2-3절에서는 세상의 왕들과 권세자들이 말을 했고, 4-6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7-9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왕이 그 말씀을 따라서 자신에 대한 말을 합니다.
7절에서는 유명한 구절인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왕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표현은 왕의 즉위를 아들을 낳는다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왕이 되면서 새롭게 태어났다는 말이 아니라, 왕위에 올랐다는 것을 낳았다는 표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7절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대한 표현을 같은 의미로 예수님께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 초반에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우편에 오르셨는지 말한 후에, 이 시편을 인용해서 말씀합니다. 즉,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는 말은 왕의 즉위식 때의 명령이라는 맥락을 가지고 예수님의 높아지심을 표현하는데 적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8절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은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구하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면 이방 나라를 주시고,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은 모든 이방 나라를 얻게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철장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인 장을 철로 만든 것입니다. 보통은 장은 나무로 만드는데, 철로 만든 장이니 그 지배가 얼마나 강한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질그릇같이 부순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왕의 즉위식에서 주변 나라의 이름을 쓴 질그릇을 부수는 행위에서 온 표현입니다. 상징적으로 이방 나라의 이름을 쓴 질그릇을 깨부수는 것으로, 그들을 정복하고 이길 것을 나타내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일을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은 이방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게 될 것이고, 모든 무릎이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 앞에 꿇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정확히 요한계시록 2장에서 예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에 나옵니다. 26-27절을 보면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이 받은 철장과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참된 신자들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다윗의 뒤를 이은 인간 왕은 그 맥이 끊어졌지만, 시편 2편에서 진실로 가르치고 있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나라들은 정복될 것이고, 예수님이 받으신 철장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되게 됩니다.
이제 10절에서 12절에 결론이 나옵니다. 군왕들의 반란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에 의해서 진압되고, 그 뜻이 꺾이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군왕들은 지혜를 얻고, 신중히 행동해야 합니다. 군왕들이 지혜를 얻어서 신중해 행동할 일은, 여호와가 세우신 왕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온 산에 왕을 세운 목적, 즉,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서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종종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참된 경외는 섬김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12절에서는 갑자기 아들에게 입맞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것은 곧 그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입맞춘다는 것은 충성을 의미합니다. 즉, 그 아들에게 충성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의미합니다. 그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는 것이 됩니다. 12절은 아들에게 입맞추라는 명령과 함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함께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시편 2편 전체의 결론을 말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편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항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왕을 반역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2편 마지막 말씀은 2편의 결론뿐만 아니라, 시편 전체와 성경 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시편 2편은 왕의 즉위식 때 낭송하기에 딱 적합한 시편입니다. 그러나 이 시편을 따라 부르면 즉위식에 올라야 할 왕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없어졌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은 왕들에게 불렸을 이 노래는 그들에게서 성취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왕 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편 2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봤던 초대교회 사람들에게 있어서 시편 2편의 말씀은 지극히 큰 하나님의 위로가 담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 나라들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적대심을 드러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신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신자들이 믿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시편 2편과 같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적대심과 공격은 언젠가 끝이 날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사단은 끝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했고, 하나님이 세우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지 못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계속해서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독교의 부패와 목사와 신자들의 범죄 소식을 계속해서 듣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패하고, 적대자들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확실하고, 변함이 없으며, 분명히 성취됩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또한 이 땅에 여전히 예수님께 입 맞추고, 하나님을 피난처와 반석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심각한 세상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에 심각한 방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이 세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통치가 단 한 순간도, 이 땅을 다스리지 못했던 때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권능 아래에 있는 일이고, 주님은 어떠한 방해와 대적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승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고,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대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피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말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어떠한 형편과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우리를 부르신 이유이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세우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의지하여, 그분 안에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온전한 순종,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여주심이 나옵니다. 빌립보서 2장 11절에서도 이렇게 경배함으로 끝을 냅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주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고 끝나신 분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셔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신 분이십니다. 이전에도 왕이셨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령님의 은혜로 복이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삼위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