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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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편
시편 4편
시편 4편은 시편 3편과 짝을 이루는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편 3편을 “아침의 시”라고 한다면, 4편은 “저녁의 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시편 3편에서는 다윗은 자신이 누워서 잤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4편에서는 자신이 평안하게 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3편은 아침에 일어나서 부르는 노래로 이해할 수 있고, 4편은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부르는 노래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원수들에 대한 권고를 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누리는 평강과 안전을 기쁘게 노려하면서 신뢰로 마칩니다. 1절에서부터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과거에 대하신 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확신을 표현하는 간략한 기도로 시작을 합니다. 하나님을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표현을 “나의 의로우신 하나님”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다윗에게 주어진 의를 더 강조한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의롭다고 인정해주시거나, 옹호해주시거나 의롭다고 입증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적들은 다윗을 불의하다고, 의롭지 못하고 틀렸다고 주장하지만, 다윗의 하나님은 그러한 적들을 반대하여 오히려 다윗이 의롭고, 옳다는 것을 선언해주십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을 부르면서 응답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자신이 곤란에 처했을 때, 너그럽게 하신 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면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기도의 응답을 주시기를 구합니다.
“곤란”이라는 말은 꽉 죄는 장소 혹은 묶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며 에워싸는 원수들에 대해 이러한 개념이 쓰입니다. 시편 3편에서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라는 말을 간단히 하면, “곤란”입니다. 이전에도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셨던 분이시기에 그것을 기억하고 다시금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해주시기를 구하고 난 후에, 대적들을 향해서 경고의 말을 외칩니다. 2절에서 “인생들아”라고 대적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라면서 대적들의 잘못된 행동들을 꾸짖습니다. 여기에서 “나의 영광”은 다윗의 왕으로서의 지위를 언급한 것입니다. 다윗이 가진 개인적인 영광이나 왕으로서의 지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욕되게 하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존엄함과 영광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반대한다면 결국은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이 됩니다. 지금 다윗의 의의 하나님을 힘입어서 자신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영광을 욕되게 하는 일로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2절에서 대적들에게 경고의 질문을 던졌는데, 다윗은 그것의 대한 대답을 직접 3절에 언급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3절 앞에 “그러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적들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고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지만 그러나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대적들이 알아야 한다고 답한 말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경건한 자란 말은 히브리어 헤세드와 관련된 단어로 문자적으로는 “사랑받는 자”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을 악인들에게 넘겨주지 않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다윗을 택하셔서 왕으로 삼으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다윗에 대한 사랑으로 그를 대적들에게 넘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하는 다윗은 오히려 그러한 확신 가운데 자신을 욕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대적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상황을 말한 후에 그들에게 회개와 믿음을 요구합니다. 다윗은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떨다”라는 말은 분노, 두려움, 불안 등의 강렬한 감정을 말하지만 본질적으로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떠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적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욕되게 하려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선을 베푸신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으로 떠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대적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분명히 알고 철저하게 떨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펄전은 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말씀을 뒤바꾸어 놓는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범죄하고도 떨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전혀 모른 체 죄에 죄를 더하면서도 두려움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죽음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다윗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말하다”라는 단어가 문자적으로는 “말하다”가 맞는데, 이 단어는 “깊이 생각하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대적들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며 잠잠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경고의 말을 듣는 것이 저주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경고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격분한다면 그러한 사람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경고를 합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어떠한 말의 실수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자신을 살필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윗은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갖고 자신을 깊이 살피면서 잠잠하게 된 사람이라면 이제는 의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의의 제사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결과입니다. 여호와를 신뢰한다면 즉,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졌다면, 그것의 증거는 참된 예배로 나타날 것입니다. “의의 제사”라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받으실 제사가 되리라는 의미입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라”고 강조하는 것은 다윗의 대적들이 제사를 드리고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의로운 제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제사의 대상이 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니거나, 또는 그들이 했던 제사의 의식 내면에는 의로운 행동이 없는 상태에서 드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대적들을 향해서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기를 멈추고, 올바른 마음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며 제사를 드리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라는 대적들이 조롱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대적들이 이런 말을 하기 때문에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라고 간구를 합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주의 얼굴을 들어”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서는 “주의 얼굴 빛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의 얼굴 빛”이란 구원을 위한 신적 은총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선을 보일 자가 누구냐고 묻지만, 주의 백성들은 그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주께서 구원의 은총을 내려주셔서 선을 보일 자를 묻는 자들에게 선을 보이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시기를 간구합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자신이 가진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은 대적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의도한 것이 대적들은 재물이 풍성하고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곡식과 새 포도주가 비교를 위해서 사용된 표현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추수할 때의 기쁨은 매우 큰 기쁨인데, 그러한 기쁨보다 하나님이 더 큰 기쁨을 주셨다고 고백하는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해를 하든, 중요한 것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기쁨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향해서 과거에도 여러 모양으로 돌보아 주셨고 현재에도 그가 처한 위기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거기에서부터 오는 기쁨은 다윗을 평안히 눕고 또 자게 할 것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노래하면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윗이 안전히 살게 될 수 있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은 이 괴로움이 넘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4편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평안과 안전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은 곤란한 일이 생길 때에, 대적들이 여러분의 숨통을 조여오고, 주위의 여러 문제들과 환경들이 여러분의 믿음을 공격할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편 4편은 그럴 때, 이전에도 우리를 구하셨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요청합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대적자들의 형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흥하고, 우리들은 마치 쇠하여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견딜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돌보시고, 참된 평안과 안전을 주신다는 확신이 성경에 기록되었고, 우리에게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원수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는 사실을 외치고 떨며 범죄하지 말고 잠자리에 누워서 자신의 마음을 향해서 깊이 생각하고 헛되고 거짓된 것을 말하지 말라고 권해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서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나 자신에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계속해서 말하라고 여러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범죄하지 말고, 매일의 잠자리에 들 때마다, 주의 엄위하심과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생각하고, 주의 의로우심과 우리의 불의함을 깊이 생각하게 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사실 하나님과 나 자신을 비교해서 생각을 한다면, 어느 누구나 절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과 나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면, 절망의 늪으로 빠지고 죄책으로 인해서 심히 괴롭게 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노래하는 것처럼,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하나님께 의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비록 우리의 모습은 한없이 부끄럽고 처량하며, 초라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우리를 주께서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시고 시행에 옮기셨습니다.
우리의 대적에게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에서도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적들은 우리의 믿음을 뒤흔들기 위해서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내면에서는 연약함과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실까?
어떠한 상황 속에서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고, 마음도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믿음의 약함으로 흔들릴 것이 아니라, 다윗의 노래를 기억하며, 우리도 이렇게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얼굴빛을 비추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구원의 빛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을 허락하셨습니다.
곧,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일들과 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은혜를 생각한다면, 세상의 그 어떠한 부와 명예를 얻는 기쁨과 비교한다고 해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과 바꿀 수 없는 기쁨으로 인해서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합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사랑하시며,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노래가 저와 여러분의 노래가 되어서 아침에 깰 때에도, 그리고 저녁에 잠들 때에도 주의 도우심과 구원하심을 노래하기를 부르는 우리가 되기를 간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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