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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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편
시편 5편
지난주에 살핀 시편 4편은 저녁에 하는 기도인 반면에 시편 5편은 아침에 하는 기도입니다. 시편 5편은 4편과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들로 인해서 생긴 고난 가운데 도움을 구하는 노래입니다. 힘든 고난 속에서도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은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노래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였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절과 2절은 하나님을 통해 기도를 들어달라는 강력한 호소로 시작을 합니다. “귀를 기울이사” 라는 말은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됩니다. 자세히 세밀하게 그 말과 속뜻이 무엇인지까지 들으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는 간청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마음에 있는 기도의 제목을 살펴봐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심정”이라고 번역된 말은 “한탄”이라는 의미도 있고, “한숨”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들을 수 있는 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셔서 자신이 간신히 하고 있는 말, 또는 자신의 한탄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그 어려움을 헤아려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로 시편 5편은 시작합니다.
2절에서 우리 성경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 먼저 나오지만, 원문이나 영어성경은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가 먼저 나옵니다. 그러니까 귀를 기울이시고, 심정을 헤아려주시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시라는 간구가 앞에서 줄지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호소가 쌓이고 있는 것은 지금 기도하는 내용이 긴급하고 자신의 온 마음을 담아서 기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왕이자 하나님이시고, 최고의 재판관이심을 인정합니다. 이 시편이 다윗의 시라고 알려져 있는데, 다윗이 쓴 시라면, 한 나라의 왕인 다윗이 온 세상의 왕이신 하늘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왕이라는 호칭을 쓴 것은 참으로 적절한 호칭입니다. 참되신 왕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왕이시기 때문에 백성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지킬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왕은 백성의 소리와 간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왕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3절에서는 바로 그러한 확신이 더욱 더 확실히 표현됩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여기에서 아침에 소리를 들으신다는 표현으로 우리는 기도가 아침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라는 표현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아침에 하는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침묵하지 않고, 기도에 더욱 힘을 쏟는 것입니다.
3절에서 우리 성경에서는 “기도하고”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이 단어는 “정돈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이 단어는 제사를 드릴 때에 나무를 정돈해서 쌓는다고 할 때 사용되거나, 제물을 정돈하고, 진설병을 정돈한다고 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정돈한다는 의미를 살려서 “기도를 정돈한다”라고 생각을 한다면, 다윗은 아침이 되면 제사장이 제물을 정돈하는 것처럼, 자신의 기도를 정돈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제사장이 제물을 정돈하는 것처럼 다윗이 자신을 제물로 정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나, 아니면 실제로 제사를 위해서 나무를 준비하고, 제물을 준비해서 드리고,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해석이 문맥상 더 바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7절에서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라고 노래하는 것과 연관한다면, 성전에서 기도와 함께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절 마지막에 사용된 단어인 “바라리이다”라는 단어는 원래 의미는 “지켜보다”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파수꾼이 주변을 살피며 지켜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다윗은 자신이 기도한 것을 파수꾼처럼 밤이나 낮이나 기도의 응답이 있는지를 지켜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응답해오실지 모르기에 그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4절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신다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4절에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기뻐하시지 않는 신이십니다. 그래서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머문다는 말은 잠깐만 머문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악이 자신과 잠깐 동안만 머무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악은 하나님께 손님이 될 수 없습니다. 악은 하나님의 집에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5절에서는 악의 실체들을 언급합니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오만한 사람들은 자랑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위치에서 자신들을 높이는 사람들입니다.
예레미야 9장 23-24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자신의 자랑할 만한 것들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것들은 사실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됩니다. 자신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보다 용맹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아는 것을 자랑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깨달은 것을 자랑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그렇지만 오만한 사람들은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은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악을 행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행악자들이 주님 앞에 선다면 의로운 불이 나와서 그들을 모두 불태워 죽일 것입니다.
6절에서는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제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죄악을 언급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멸망당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리도록 만드는 사람입니다. 6절에서 “싫어하신다”는 몹시 싫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소름이 끼치도록 싫어한다고 말할 때 사용되는 이 단어가 사용됨으로 주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행악자들에 대해서 언급한 후에 오직 자신은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간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이 받아들여진 이유가 행악자들과는 달리 자신이 의로운 행동을 하고, 의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의 반응일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이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시편 5편 5절에서 살핀 것처럼 오만한 자들,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바리새인이 보통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능력만 알고, 자신이 행한 일만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렇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7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라고 말하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고, 내가 어떠한 사람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 같은 죄인에게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힘입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성소, 즉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의 능력이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순전히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역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7절에서 사용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언약의 일원이 된 사람들에 대해 갖는 신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께서는 자신의 언약의 백성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갈 수 있고,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의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의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는 간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에서의 의를 나타낼 수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 주의 길을 자신 앞에 곧게 해달라고 언급을 함으로 하나님의 의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길로 마치는 성도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길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돌보아주시는 안전한 길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 따라야 할 순수한 삶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이유는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입니다. 원수들 때문에 주의 의로 인도해주셔야 합니다. 원수들이 자신에 대해서 거짓으로 속이고, 피를 흘리도록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의 의로 인도해주셔야 하고, 주의 길을 곧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순수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이렇게 간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는 자신의 원수들의 성품을 네 가지로 언급합니다. 첫째로 그들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거짓말 하는 자들이기에 신실함이 없습니다. 그들의 입은 피 흘리는 입이기에 그들의 입을 믿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그들의 마음은 악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말하든지 그들이 무엇을 계획하든지 그 모든 것이 악합니다. 셋째로,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입니다. 여기에서 목구멍은 “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열린 무덤은 그들이 말하는 것의 결과가 죽음과 파괴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혀로 아첨합니다. 아첨한다는 단어는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해서 덮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추한 것을 감추기 위해서 덮는 것입니다. 거짓을 감추고 진실하다고 속이거나 악한 것을 감추고 의로운 것처럼 속이려는 모습을 말합니다.
다윗의 원수들이 이러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자신의 원수들을 처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9절의 말씀을 따라서 생각한다면 그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유가 10절 마지막에도 제시됩니다. 그들이 주를 배역했습니다. 배역하다는 말은 “반역하다, 반항하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했고, 하나님께 반항했기 때문에 그들은 정죄받아 마땅합니다.
다윗은 10절 이전에 자신의 원수들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들이 자신의 원수인 이유가 10절에 명확히 나옵니다. 그들이 주께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이 자신을 반역하고, 반항했기 때문에 정죄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정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풍성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신데, 좀 잘못을 했더라도 용서해주시면 안 되는 것이냐?”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하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원수는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원수를 용서할 권한이나, 하나님께 용서하라고 요청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릎을 꿇고 위대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반역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왔었고,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를 아버지로 여기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 우리는 정죄 받아 마땅하고, 심판을 받아서 죽어 마땅한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용납되어서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 때문입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다윗의 원수로 하나님을 반역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만들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기 꾀에 빠져서 죄를 더하며 살고, 그 많은 허물로 인해서 분명히 정죄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 중에는 우리처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따라서 용서와 구원을 받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처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바로 11절에서 이렇게 찬송합니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10절에서 악인들을 정죄하시기를 간구한 다윗은 이제는 악인들과는 달리 주께로 피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뻐한다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악인들은 오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피하지도 않을 것이고, 자신들의 힘과 지혜를 의지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들은 7절에서 “주의 풍성한 사랑”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알기에 그 언약 가운데 베푸시는 사랑을 의지하여 주께로 피하며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 계속해서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께서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라고 노래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보호해달라는 간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복 주시는 하나님께 자신들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의 가르침이 이러한 사실들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로 피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방패로 보호하시는 것처럼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고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에워싼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피면서 우리는 주님의 원수들로 인해서 우리가 신음하며 기도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주님의 원수들이였는데, 지금은 주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이유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모두가 오만한 자들이었고, 거짓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살았으며, 피 흘리며 속이는 일을 즐거워하던 사람들입니다. 설사 우리가 그러한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분명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오늘 4절의 말씀에서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악에 물들은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일입니까? 역겹고 냄새나고, 부정한 악을 행하는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주님이 하신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다윗보다도 더욱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왔다고 외치며 노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풍성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우리 중에 그 어느 누가 하나님께 예배하며 구원을 누리고 천국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겸손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까? 전혀 아닙니다. 우리들의 입은 신실하지도 않았고, 우리의 마음은 심히 악하였고, 우리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혀는 아첨의 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비록 이러한 존재들이었지만, 주의 풍성하신 사랑을 따라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의 삶과 십자가의 의를 가지셨고, 성령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은혜를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는 죄가 많은 사람들이어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지금은 주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주를 반역하는 자였지만 이제는 주의 백성으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피하여 구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은혜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또한 이 땅에서 우리 주님과 주님의 백성인 우리들을 핍박하는 원수들로 인해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들이 복락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원수들이 심판을 받을 때 우리는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원수들이 지금은 웃을지 모르지만, 최후의 날에는 슬피 울며 탄식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가 눈물을 흘릴지 모르지만, 최후의 날에는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은혜를 바라보면서 오늘의 어려움과 괴로운 날 가운데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그분께 기도하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에 그분께 하루의 삶을 도우시고 보호하실 것을 기도하며, 하루의 날 동안 방패로 보호하시듯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합시다.
우리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얻어, 주를 예배하는 영광을 얻었고, 은혜로 보호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니 매일의 삶에 주를 찬송할 이유를 기억하며 찬송을 쉬지 마십시오. 호흡이 있는 너희여 주를 찬송할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