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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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편
시편 3편
시편 3편은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피해서 도망칠 때 지은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배경에 대해서 먼저 살피고 본문의 내용을 살피겠습니다.
사무엘하 13장에 보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는데 그 이름이 다말이라고 기록합니다. 그 다말을 이복형제인 암논이 사랑했습니다. 암논은 간사한 친구의 꾀를 따라서 다말을 붙잡아 강제로 동침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암논은 사랑했던 다말에 대한 마음이 없어지고,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말을 내쫓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한 일들에 대해서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다 듣게 됩니다.
물론 다윗왕도 이러한 일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일에 대해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이 일을 마음에 품고 2년이란 시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결국 암논을 죽이게 됩니다. 이 사건이 있고난 후에 압살롬은 도망치게 되고, 다윗은 날마다 슬퍼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에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하고 다시 예루살렘에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압살롬은 성문에 서서 다윗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을 불러서 자신이 대신 재판관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윗에서 압살롬에게로 돌이키게 한 후에 반역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다윗은 도망을 치게 됩니다. 이 때 시므이라는 사람은 도망치는 다윗을 향해서 저주의 말을 하면서 돌을 던집니다. 온갖 모욕을 다 주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이 시편 3편의 배경이 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으로 인해서 자신의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위대한 왕에서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전에도 다윗은 자신의 왕이자 장인인 사울을 피해서 도망자로 살았던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다시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고난의 때가 찾아온 겁니다.
이제 시편 3편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살펴봅시다. 순서상 시편 3편은 시편 전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탄식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탄식하는 내용과 함께 구원의 확신에 가득찬 고백을 듣게 됩니다.
다윗은 탄식의 첫 시작을 “여호와여”라고 시작을 합니다. 위기의 한 가운데서 여호와께 의지하는 것이 탄식의 특징입니다. 곤경에 처할 때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른 다윗은 자신의 대적이 많이 늘어난 것을 보고 놀랐다는 표현을 합니다.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그리고 일어나서 자신을 차는 자가 많다고 또 말합니다. 여기에서 “많은”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자신의 대적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탄식의 절정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다윗의 대적들은 다윗의 믿음을 조롱하고 도전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를 말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선지자라도 된 것처럼 구원을 받을 소망이 다윗에게는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다윗은 자신의 믿음의 고백이 담긴 말을 합니다. 3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세 가지 표현을 사용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자신의 방패이시라고 다윗은 고백을 합니다. 실제로 자신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필요에 따라 적절한 사람들을 보내셔서 다윗을 도우셨고, 죽음의 위기에서 여러 차례 지켜주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이라고 다윗은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광스러운 분이라고 해석해도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영광을 언급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윗은 지금 왕궁에서 쫓겨났습니다. 모든 영광을 빼앗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을 때 주어진 것이고, 아직 하나님께서 그 영광을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그 영광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의 근원이시기에 하나님은 나의 영광이라고 외치는 것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영광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여전히 주어져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자신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신하들과 백성들에게도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낙담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낙담한 다윗의 머리를 드시며 다윗을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높이십니다. 배신을 당했을 때에는 낙담되고 두려웠지만,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자신이 다시금 왕의 자리를 회복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들도록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밤에 자신을 지키심으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절에서 “부르짖으니”와 “응답하시는도다”라는 번역은 과거형으로 번역을 해야 합니다. 즉,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셨다”입니다. 보통 시편은 고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4-5절은 믿음의 고백이나 표현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두려움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지혜를 얻기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가 깨었는데, 밤새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셨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6절에서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고 목소리를 높여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7절과 8절에서 다윗의 간구가 시작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께 일어나시라고 요구하는 것은 즉각적인 행동을 하시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대조로도 사용하고 있는데, 1절에서 대적들이 일어나 다윗을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대적들의 일어남에 대항해서 하나님께서 일어나 저들을 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구원하소서”라는 간구를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2절의 말씀과 대조를 이룹니다. 대적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마치 선지자처럼 외쳤지만,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확신하며 구원해주시기를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면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계속해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치시며”라는 말과 “꺾으셨나이다”라는 말은 과거형으로 쓰였습니다. 이런 표현을 확신의 완료라고 부르는데,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도 확신한 나머지 마치 그 일이 이미 일어난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고, 원수들을 치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일처럼 확신에 넘쳤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방패이시고 영광이시고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다윗과 살아 있는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확신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진짜로 하나님께서 원수의 뺨을 치거나 악인의 이를 꺾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원수들에게 뺨을 치고 이를 꺾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확신에 찬 간구를 말한 후에, 8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편은 탄식으로 시작하지만, 확신과 찬양으로 끝이 납니다. 원수들은 하나님 안에 다윗을 향한 구원이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요청한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합니다. 대적들은 조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말하며, 다윗의 믿음을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대적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확신을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노래를 마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3편 1-3절의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배신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다윗의 대적들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지 않으실 거라고 외쳤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39-44절, 마가복음 15장 29-32절에서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며 스스로 구원해보라고 조롱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도 장로들도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함께 욕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5-37절을 찾아서 함께 읽어봅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마치 다윗의 대적들이 다윗을 향해서 한 말처럼,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남은 구원했을지 몰라도 너를 위한 구원은 하나님께 없다는 외침입니다. 37절에서도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구원이 없다는 의미로 계속해서 조롱합니다. 그러나 그런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심하기보다는 누가복음 23장 46절의 말씀처럼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다윗이 대적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찬송한 것과 다름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확신을 잃지 않으셨고, 결국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옳으셨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속한 우리들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와 핍박과 조롱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윗이 보였고, 궁극적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처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종교적 만족이나,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 정도의 어떠한 행위가 아닌 진정으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영광이 되시며,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확신에 가득찬 표현과 찬양의 말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러하셨듯이, 예수님께도 방패가 되셨고, 영광이 되셨으며, 머리를 드시는 자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녀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방패가 되신다는 것이 어떠한 공격도 막아주시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멸시와 모욕을 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위해서 그러하셨고,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을 보호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멸시와 모욕을 당할 수 있으며,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방패이십니다. 여러분이 잠시 주저앉는 것을 허락하실지 모르지만, 궁극적인 회복과 승리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면, 우리는 이러한 영화로운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노래를 쉬지 않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그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하나님의 영이 다윗을 인도하셨고,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도 고난 중에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쉬지 맙시다. 함께 그렇게 노래합시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