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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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
시편 7편
시편 7편의 제목에는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베냐민사람 구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추측하기를 베냐민지파 출신의 왕인 사울이 다윗을 핍박할 때 사울에게 다윗을 모함했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구시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이 시편은 원수들로부터 구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재판관이 되셔서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해달라는 기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시에는 고난으로 시작해서 위로와 기쁨으로 마칩니다. 고난 중에도 의로우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와 찬송을 할 수 있었던 다윗의 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7편은 긴급한 호소와 함께 시작을 합니다. 다윗은 자신들의 원수들에게서 구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자신을 구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며, 만약에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으시면, 자신이 사자에게 찢기는 것처럼 원수들에게 죽게 될 것이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문자적으로는 “나의 영혼을 찢을까 하나이다”입니다. 여기에서 영혼은 목숨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원수들이 다윗의 영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그러한 고통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수준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다윗은 1절에서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피한다”는 표현은 시편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특히 여호와께 피한다는 의미는 보호와 안전을 위해서 여호와를 신뢰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윗은 단순히 피한다는 표현만을 사용하지 않고,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라고 말함으로써 지금 상황이 시급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원수들이 몰려올 때, 다른 곳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고 그 분께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은 가장 최고의 선택입니다. 이 부분을 예전 성경은 “나를 구원하여 건지소서”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원어에도 구원하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두 개가 사용됨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애타도록 기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애가 타도록 간청을 하고 있는 이유는 자신을 쫓는 모든 사람에게서 구원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사자 같이 찢고 뜯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보다 더 힘이 있고, 더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께 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죄악이 없다고 단언을 합니다. 3절에서 5절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은 자신이 자신의 손에 죄악이 없음을 열심히 변호합니다. 특별히 4절의 내용이 자신에게 씌여진 모함입니다. 다윗의 원수는 분명히 그가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다고 비방하고 있습니다. 화친한 자는 평화의 관계를 맺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계는 언약으로 맺어지는 것인데, 만약에 평화의 관계를 깨뜨리게 되면, 그 사람은 죽음으로 그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지금 다윗이 이러한 평화의 관계를 악으로 갚았다고 모함을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자신이 대적에게서 이유 없이 빼앗았다면이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죄가 있다면 5절에서처럼,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자신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은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은 적도 없고, 대적에게서 이유 없이 빼앗은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5절에서 자신이 만약에 죄를 지었다면 자신의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이 대적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생명이 없어지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내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자신의 생명 뿐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인 가치까지도 수치스럽게 해달라는 말을 합니다. 먼지는 무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수치스러운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면서 다윗은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6절부터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변호해 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오셔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구합니다. “나를 위하여 깨소서”라고 외치면서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시지 않으셨지만, 이제는 관심을 보여 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미 공의로 심판을 내리신 분이시니 이번에도 불의한 자들을 향해서 심판을 내리셔야 마땅하다고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7절에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라고 말합니다. 7절의 의미는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백성들이 증인이 되고, 참관인이 되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두르고 자신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판결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판결을 듣고, 다윗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듣게 되도록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계속해서 8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만민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니 자신의 의와 자신의 성실함을 따라서 자신을 심판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즉, 다윗 자신이 죄가 없고, 옳다는 것을 인정하실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자신이 원수들의 거짓말로 인해서 곤경에 처해 있지만, 자신이 의와 성실함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심판의 자리에서 선언해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악인의 악을 끓고 의인을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간구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살펴보시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니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때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악인들을 끊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악인들의 악을 끊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이러한 기도에서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짓는 악을 미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악인의 악을 끊게 되면, 그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고 돌아올 수 있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게 됩니다. 다윗은 대적들이 자신을 죽일 것처럼 모함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이 그 악을 멈추고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10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여기에서 자신의 방패가 하나님께 있다고 노래하고 있는데, 우리 성경처럼 읽을 수도 있고,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읽든지,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의인을 보호하시고 구해주시는 하나님이 의인의 방패가 되시는 것입니다.
11절부터 16절까지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고 그분은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분노하시는 것은 악인들이 짓는 악으로 인함입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님의 순종하는 백성들이 악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십니다. 비록 당장 복수가 행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악을 모두 기억하고 갚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갚으실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직접 행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악인들을 향한 의인들의 복수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악인들에게 의로우신 심판을 행하실 날을 위해서 하시는 일들이 12절과 1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칼을 가신답니다. 스펄전은 이 구절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우리가 매일 행하는 악은 악의 숫돌을 돌리고, 하나님은 그 위에 칼을 갈고 계신다.” 숫돌을 돌리는 원동력이 악인들의 악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으로 돌아가는 숫돌에 칼을 날카롭게 갈고 계십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다고 하십니다. 이것도 모자라서 13절에서는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셨고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라고 언급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날카롭게 칼을 갈고 계시고, 그들이 멀리 도망친다면 단숨에 그들의 심장을 꿰뚫어버리도록 활을 당겨서 겨누고 계시고, 혹여 이것으로 악인들에게 쓰실 무기가 모자랄까봐 죽일 도구들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심판을 준비하고 있으시니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악인은 이 세상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14절에서 16절까지 악인들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묘사를 합니다.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악인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는 여인처럼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재앙을 잉태하였고, 거짓을 낳았습니다. 사탄이 거짓의 아버지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악인들이 거짓을 낳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거짓의 아비인 사탄에게 속하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악인들은 웅덩이를 파 만들었습니다. 의인들을 위한 함정을 준비했지만, 자신들이 만든 그 함정에 자신들이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들의 포악은 정수리에 내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한 단면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을 노래합니다. 오직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겠다는 맹세로 이 시편은 끝을 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그래서 악인들의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오늘도 악인들에게 칼을 갈고 계시고 죽일 무기들과 불화살로 여러분의 심장을 겨누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히 깨달으십시오. 불순종하는 악인에게 하늘의 해를 떨어뜨려 불바다를 만들고, 달을 산산조각 내서 악인의 머리를 찍어 누르게 만들고, 공중의 산소를 없애서 악인의 코가 죽게 만들고, 땅이 갈라져서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악인을 집어 삼킨다 해도 악인들은 그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악인의 자리에 머물지 말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자리로 나아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그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악이 끊어지도록 만들고, 여러분의 의가 되도록 하십시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들의 행실로만 심판을 받는다면, 우리 중에 그 누가 자신의 의와 자신의 성실함을 따라서 심판해달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손이 깨끗하다고 누가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 중에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는 그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쌍한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모든 의와 모든 성실함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온전히 가지셨고,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뜻에 모든 성실함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성실함은 죽기까지 계속되었고, 그러한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의로움과 성실함을 덧입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의와 성실함이 되신 예수님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고,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도록 하시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윗처럼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원수가 여러분을 물고 뜯고, 집어 삼키려고 한다면,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께 “나를 구원하여 건지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사탄과 악한 영들과 악인들이 여러분을 공격할 때, 그들에게 외칠 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나의 방패이시다.” 그러니 그 어떠한 존재도 우리를 상처 입힐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나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디론가 떠나시고 지금 나를 살펴보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공격하고 핍박하는 그 세상과 악인들을 향해서 칼을 갈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복수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보복하시는 것을 지켜보면 됩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7-21절을 함께 읽읍시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니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행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즉각적이시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우리의 복수를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당함을 입증해주시고, 만민들 앞에서 우리로 무죄하다는 것을 선언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서 악을 행하는 죄인에게 우리는 다윗이 기도했던 것처럼 그들의 악이 끊어지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들도 악의 길에서 떠나 예수 그리스도, 즉, 선한 길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성도가 세상에 살면서 모함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모함을 받는 일로 괴로워하기보다는 우리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의롭다 선언하시고, 훗날 심판의 자리에서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인됨을 다시금 선언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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