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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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편
시편 12편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광고는 대부분 사실보다 거짓을 좀 더 더해서 만들고, 정치인들은 표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아이들은 부모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부모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거짓말로 가득한 인간의 삶은 타락한 이후에 벗어날 수 없는 본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언약의 말씀이 있기에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서 정직한 입술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은 바로 그 거짓된 세상 속에 있는 진리의 말씀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편의 노래를 한 구절씩 살펴보면서 의미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편의 첫 시작은 “구원하다”는 단어로 시작을 합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여호와여 도우소서”라고 시작을 하지만, 원문은 “구원하다”라는 단어가 먼저 기록되어 있고, 그 단어를 한글성경에서는 “도우소서”로 번역을 했습니다. 시작하자마자, 구원해달라는 간구로 급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구원해달라는 간청으로 시작한 이유를 곧장 말하는데, 경건한 자가 끊어졌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경건한”으로 번역된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과 관련해서만 사용이 되었고, 이 단어는 “은혜, 인자, 사랑”으로 번역되는 헤세드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습니다. 특별히 “헤세드”는 언약적 사랑이나 충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개념과 연관하면, 다윗은 언약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충성하며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어서, “충실한” 자들이 없어진다고 말을 합니다. 충실한 자는 신실한 자를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과 그의 언약 앞에서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즉, 1절에서 다윗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신자들이 없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구원해달라고 간청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상황과 비슷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엘리야가 했던 표현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을 해서 승리한 후에, 이세벨과 아합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로뎀 나무 아래에서 자신이 죽기를 원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고, 다시 호렙산에 가서, 하나님께 말을 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선지자인 엘리야가 이렇게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 선지서에서도 이렇게 슬프고 절망스러운 상황들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러한 상황은 드물게 나타는 상황이 아니라, 신자들의 주변에서 쉽게 발견하고,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2절에서 “그들이”라고 시작을 하는데, 1절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자칫 경건한 자나 충실한 자가 2절의 “그들”이라고 읽기가 쉽습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한사람이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되어 버리는데, 원문을 직역하며 2절 앞부분을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이 그 이웃에게 거짓을 말한다.”
원문대로 이해를 하면, 1절과 대조되는 상황이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건한 자들은 사라지고 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웃들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헛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헛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고, 경건하고 진실한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다윗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을 한다고 말합니다.
아첨하는 입술은 자신을 잘 보이려고 다른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보통 아첨하는 입술은 듣기에 좋은 말을 하겠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합니다.
성경은 아첨하는 말에 대해서 여러 번의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잠언은 아첨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를 합니다. 잠언 26장 28절에서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킨다고 하였고, 28장 23절에서는 사람을 경책하는 자는 혀로 아첨하는 자보다 나중에 더욱 사랑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29장 5절에서는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아첨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악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두 마음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의 마음은 뜻과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통일을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두 개의 마음으로 말을 한다는 것은 감춘 것과 드러낸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위선자라고 부릅니다.
위선자의 특징은 거짓말과 속임수입니다. 위선자는 진실을 알고 있어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두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홉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고, 이는 언약을 범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즉, 1절에서는 언약 앞에서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고, 2절에서는 그 언약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3절의 내용을 노래합니다. 3절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지만, 의미상 간구가 됩니다. 즉,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찬양을 할 때 사용해야 할 혀를 가지고 아첨하는 말과 자랑하는 말을 하는데 사용합니다.
다윗이 3절 말씀처럼 간구하는 이유가 4절에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혀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혀가 이긴다고 자랑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라는 말은 자신들이 입술에 대해서 권능을 가지고 있고, 입술이 자신의 것이기에 자신들을 주관할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입술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입술로 무엇을 말하든지 상관이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은 교만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거짓을 말하고, 아첨하고, 두 마음으로 말하며 자랑하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교만한 자들을 향해서 잠언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설명하면서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입술과 혀를 가지고 죄를 짓고 있기에 다윗은 그들의 혀를 끊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다윗은 악인들의 말과는 다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5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언급하는데, 악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폭력적인 말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씀은 경건한 자들에게 힘이 됩니다. 특히 하나님의 관심이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에게 있음이 5절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런데 5절 중간부터의 번역에 대해서 두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처럼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라고도 번역을 할 수 있는데, niv성경은 “나는 그들을 헐뜯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두 번역 모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는 번역이지만, 문맥상 “나는 그들을 헐뜯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것이다.”가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번역하고 읽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가련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시되, 특히 그들을 헐뜯는 사람들, 즉, 거짓을 말하며 아첨하고 두 마음으로 말하고, 자랑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보호하실 것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2-4절에 나오는 악인들의 말과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합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다윗은 흙도가니에서 은을 뽑아내는 모습을 사용합니다. 뜨거운 불로 달궈진 도가니에 은이 섞은 광석을 넣으면, 불순물이 제거되게 됩니다.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는데, 보통 3-4번의 과정이 필요한데, 성경은 일곱 번 단련한 은이라고 말함으로 완벽하게 불순물이 제거된 정말로 순수한 은에 빗대어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결함은 어떠한 거짓도 섞이지 않았고, 두 마음으로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악인의 말은 모든 찌꺼기가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는 아첨이나 헛됨이나 거짓의 찌꺼기가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약속은 확실하고 성도들에게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6절에서 흙도가니에서 일곱 번 단련한 은과 같은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언급한 것이 무엇을 가리키겠습니까? 그것은 5절에서 언급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즉, 가련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보살피어 안전한 곳에 두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비록 지금의 상황이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들이 없어지고 있으며, 악인들의 악한 말들은 가득 차 있다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러한 상황과 상관없이 신뢰할 수 있는 순결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이러한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다윗은 7절처럼 노래를 합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말씀을 직역하면, “여호와여 당신은 그들을 지켜주실 것입니다.”가 됩니다. 다윗은 변하지 않는 확신 속에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말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진실하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의지하여, 확신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어떠한 행위에 의지하여 자신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기 때문에 이미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신뢰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7절에서 끝마쳐도 될 것 같은데 8절의 노래를 더 합니다. “비열함이 인생 중에 높임을 받는 때에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뛰는도다” 다윗은 비열한 사람들이 높임을 받고, 주위에는 악인들이 많아져서 활동하게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순결하고 그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인들이 곳곳에서 날뛸 것이고, 악인들은 여전히 형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믿음없는 노래로 이 시편을 끝마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7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신자들의 상황이 바뀌거나, 처지와 형편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비록 전혀 바뀌지도 않았고, 오히려 더 나빠지기까지 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고 참되며 믿을만하다는 내면의 감동 때문입니다.
설교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시편 12편 1절에 기록된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는 상황은 선지자 엘리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선지자들이 공통되게 겪은 상황입니다.
호세아 4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에는 진실도 인애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비관적인 상황입니다.
미가서 7장 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여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이 말씀은 오늘 본문 1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정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 57장 1절과 59장 14절 비슷한 의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참된 신자들은 사라지고, 악인들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들만 남아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과 악함이 가득한 세상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온 힘을 기울이는 시대입니다. 나타난 현상만 가지고 본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일하게 참됩니다.
속임, 거짓 아첨, 사기, 위선적인 말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높은 자와 낮은 자, 남자와 여자, 성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정직하지 못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권력을 받은 자들도 정직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약한 자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과연 사람들은 누구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 가운데에서 찾지 마십시오. 오늘 시편 12편의 노래가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굳센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우리의 상황이 확 바뀌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노래하는 것처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신이 사는 세상은 비열한 사람이 높임을 받고, 악인들은 곳곳에서 날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처지와 상황과 환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과 처지가 있다 하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의 말씀은 순결하고, 아무런 찌꺼기가 없는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약속임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칫, 세상의 거짓에 속아서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의심하는 범죄를 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분에게 굳센 믿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신뢰할만 하다는 진리를 붙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에게 금강석과 같은 믿음이 있다고 해서, 삶이 바뀌거나 환경과 처지가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믿음 가운데 눈에 보이는 복을 받을 수도 있고, 뚜렷한 변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다른 사람에게는 넘치도록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과 벌어지는 현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사자굴과 불도가니에 던져지는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해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를 찬양하겠나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주를 찬양하고, 오직 주만을 신뢰하겠나이다.”라고 믿음의 노래를 부르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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