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4 새음고등부 설교; 갈1:6-10; WHAT IS YOUR MB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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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조

1. 서론; MBTI로 보는 우리의 정체성

여러분의 MBTI는 무엇인가요?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누군가에 대해 알려고 하면 MBTI를 묻습니다. 심지어 대학 면접때나 또는 자소서에도 MBTI를 기입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입니다. 이처럼 MBTI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저도 교회에 처음왔을 때 제게 MBTI가 무엇인지 많이 물어봤습니다. 저는 ISTJㅇㄹㅇㄹ인데, 요즘 제 성향이 바뀐 건지 아니면 검사가 틀린건지 ISTJ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분명 MBTI 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상담가 분께 정식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요즘 저를 돌아보면, 그리고 과거 저를 돌아보면 저는 굉장히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 스스로의 성향은 달라지는 것같습니다. 내 성격, 내가 좋아하는 것, 등등 우리는 나 자신을 알고 싶어 합니다. 특히나 우리와 같은 청소년시절이 딱 그런 시기입니다. 대입을 앞에두고 막연하게 스스로를 찾고자 하죠. 그래서 많은 것들을 해봅니다.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요 그래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업들이 쉽지 않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고 확신을 갖게 됐다 할지라도 그게 오래가진 못합니다. 여러 상황들에 부딪히다보면 ‘내가 이걸 정말 좋아하는게 맞나?’, ‘나는 어떤 사람인걸까?’, ‘나는 누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좋아하는 걸 찾아서, 나 자신을 찾으러 떠납니다.이렇듯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2. 본론

1)갈라디아 교회의 문제; 다른 복음에 빠지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바울은 다른 복음에 빠진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다른 복음은 없다고 외칩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빠졌던 다른 복음은 예수님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게 아니라 율법을 지키는 행동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 사도이 전한 복음과는 달랐던 것이죠. 바울이 기록한 편지의 대부분은 서두 부분에 수신자들에게 인사말을 적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를고백하는 단락이 나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기존에 써왔던 방식을 깨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다른 복음은 없다며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이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며, 빨리 그들을 구해내고자 했던 바울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요.

2)다른 복음에 빠지는 위험성..정체성의 혼란(갈1:7)

다른 복음에 빠지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 퍼졌던 다른 복음, 다른 말로는 거짓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게 왜 정체성을 흔드는 일이냐?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는데 불충분하다, 우리는 충분히 괜찮고, 충분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정도 노력하면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보다는 ‘괜찮은 나 자신’, ‘쓸만한 나 자신’ ‘나’라는 존재가 드러납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나’ 자신만 남게 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7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의 지식을 흔들어서 우리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이지요.
Galatians 1:7 NKRV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떠나자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른 복음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참된 복음을 저버렸던 것처럼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참된 복음을 늘 듣지 않는다면 복음을 떠날 수 밖에 없고 정체성이 흔들리게 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겨납니다. 본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은 우리 시대 식으로 생각해본다면, 나 스스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의 소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마인드’,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려있어’, ‘넌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그런 이 시대의 가르침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계속해서 듣지 않고 말씀을 보고 읽지 않고 다른 복음을, 세상의 얘기들을 듣는다면 우리는 말씀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사도 바울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갈라디아 교인들도 그랬는데 하물며 이천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강조했던 것처럼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3) 참된 복음은 하나님을 알려준다

(1)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알려주셔야 알 수 있다

말씀,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복음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분의 존재와 사역이라고 부르는데요,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지혜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알려주셔야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한하고 작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분을 알기위해서는 그분께서 알려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코끼리 장님 비유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우리 스스로 알려고 하는 것은 마치 장님들이 커다란 코끼리를 파악하기 위해서 코끼리를 각자의 위치에서 쓰다듬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님들은 자기가 만지고 있는 부위에 따라서 코끼리를 이해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풀거리는 귀를 만지면서 ‘아 코끼리는 천과 같구나’라고 이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주름지고 긴 코를 만지면서, ‘아 코끼리는 길다랗고 주름지게 생겼구나’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 코끼리의 굵은 다리를 만지면서 ‘와 코끼리는 통나무같이 생겼구나’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각자가 ‘자기 자신이 이해한 게 맞다’고 다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수준이 딱 이정도입니다.

(2) 하나님은 창조물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셨다(롬1:20)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에 당신의 존재, 능력을 심어두셔서 모든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고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Romans 1:20 NKRV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예) 그랜드 캐년, 우주의 질서

그랜드 캐니언을 보신 분이 계실 겁니다. 저도 직접은 못봤지만, 이 광활한 골짜가들을 보면 저절로 경외감이 들지요. 우주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주의 질서, 해와 달이 뜨고 짐,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질서있게 움직이는 그런 모습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누군가 정해두지 않았다면 그런 질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밀물 썰물과 공기중의 기체의 구성 일정하게 유지되는 비율 등 너무나도 놀라운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 수 없다(구원 역사를 알 수 없음).

하지만 이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도 하시고,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섭리’의 일도 하시지만 이 모든 일들을 하시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구원’을 위해서 입니다.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런 일들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지금까지 이 땅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이뉴는 바로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구속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또는 ‘구원 역사의 사역’라고 하지요.

예) 절을 통해서도, 무당을 통해서도 구원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만물을 열심히 들여다 본다고해서 알 수 없습니다. 아차산 뒤에 가면 절이 있던데 그곳에서 열심히 도를 닦는다고 해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합니다. 구원에 대해 알 수도 없고요.

(3)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당신께서 하신 일(구원)을 알려주신다(요일1:1 생명의 말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유일한 수단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 말씀, 복음입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의 기록과 같이 이 말씀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게 합니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들려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4) 하나님을 알 때에 비로소 우리를 알 수 있다

-창조의 이유를 알 때 비로소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됨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왜 지으셨는지, 어떻게 지으셨는지 알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MBTI로도 과거 유행했던 혈핵형 검사로도 우리 스스로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참조) 칼빈의 말(1.1.2)

16세기 프랑스에 살았던 유명한 신학자인 존 칼빈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하셨어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고 하나님에 대한 직관적 지식을 얻음으로 낮아져서 자기 자신을 면밀히 바라보기 전에는 결코 자기 자신을 아는 순수한 지식에 이를 수 없다(1.1.2)”
하나님을 묵상하고 알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라고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메이드인 차이나가 아니라, 메이드인 헤븐, 메이드 바이 갓 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제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제일 잘 압니다. 우리가 피카소의 작품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피카소의 역대기를 열심히 읽고 하더라도, 피카소만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만큼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 없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우리에 대한 지식을 무엇보다 더 정확하게 순수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그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예) 꿈을 찾아 돌아다닌 추현규의 대학 10년

아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저는 대학교를 10년동안 다녔습니다. 11학번인데요,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친구들보다 제가 대학생활을 더 많이 한거죠. 그 동안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다녔습니다. ‘나는 뭘해야 하나, 뭐가 나한테 잘 맞을까, 뭘해야 재밋을까’를 늘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환경공학과에 진학했다가 자퇴하고 화학과에 진학했다가 휴학하고, 간호학과에 합격했다가 합격취소하고, 도시공학과로 과를 옮겼다가..대학교 수업도 전공수업은 안듣고, 철학, 사회학, 미술, 심리학, 언어학, 역사학, 등등 다른 전공과목이나 교양과목들을 찾아 다니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자율전공도 아닌데, 저 스스로 자율전공처럼 학교생활을 했죠. 그러나 그렇게 해도 저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그냥 다 좋아한다 였던 거 같아요. 지금도 이것들이 다 재밋고 좋거든요.
그러면서 대학 생활 중 제가 교회를 통해, 기독교 동아리를 통해 계속해서 배우고 들었던 것은 ‘뭘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였어요. 너무나 익숙해서 그냥 그래 맞아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지 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던 문제를 대학교 10년을 다니고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4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기억하게 되었어요. 아 그래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고 내가 무엇이 되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하신 것이지?! 고린도전서 10장 31절 말씀처럼 내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그것으로 기뻐하시는 거지?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 동산에 지으시고 그들에게 그 땅을 경작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구나?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의 뜻: 무엇을 할지가 아닌, 어떻게 살지

내가 뭘할까에 대한 질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며 그것에 대한 답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공과를 통해 배우게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달리 얘기하면 어떤 것이든 다 중요하며 다 괜찮습니다. 다 좋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매춘이나 도둑질, 사기를 직업으로 삼지 않는다면 말이죠.

3. 적용 및 결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잡자

1)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자

그래서 여러분에게 도전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인생에 대해 고민할 때 먼저 하나님을 알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알 때 우리 자신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알아가시고,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발견하시고,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귀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알고 믿게 된 후에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을 하면 됩니다.
저는 10년동안 어줍잖은 지식이지만,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고 공부하는 계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것들을 배우고 공부하며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만났습니다. 그 시간들이 참 재밋었습니다. 그 시간들 동안 주변으로부터 계속 신학에 대한 권유도 받았습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제게 소명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그분을 알고 사랑하게 될 때, 그 지식이 어느새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줄 것입니다.

2)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이 우리의 정체성

세상은 돈의 많고 적음이, 집 평수가, 차의 종류가, 직업이, 대학 간판이, 스스로를 정의해준다고 얘기합니다. 허나 그런 가치들로 여러분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겨우 이 땅의 가치 정도 밖에 안되는 그것을 여러분의 가치로 삼지 마십시오. 더 크고 놀라운 무한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치가 되며 여러분의 아이덴티티가 됩니다.

-방학을 더욱 성실히

방학이라 말씀과 더 멀어집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 학교 루틴에는 아침마다 좋든 싫든 말씀읽고 묵상합니다. 나눕니다. 그러나 방학되면 어떤가요? 그게 여러분의 자의로 했던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나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 기쁨이었다면 진심이었다면 방학이 되든 개학을 하든 개의치 않습니다.
1학년 친구들 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말씀을 읽고 듣자는 목표를 가지고 한해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학생들에게만 중요한 가치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 모두가 일평생 해나가야 할 과업입니다. 늘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갈라디아 교회처럼 참된 복음을, 참된 말씀을 잊어버릴 것입니다.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잊게 될 것이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다른 기준을 갖고 살아갈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주해서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한주한주 하루하루, 우리가 올 한해 교회의 표어처럼 말씀 안에 거주합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고등학교 생활 바쁩니다. 입시 준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바쁘고 정신없는 입시 생활에 치이다가 방향을 잃은 채로 살아가면, 어느새 뒤돌아 봤을 때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참된 복음 말씀을 떠날 때 처음에는 별 차이 없어보이는 길이 언젠가 돌아섰을 때 완전히달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치 1도 차이로 벌어진 두 직선을 길게 늘렸을 때 그 끝이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 안에 거주합시다. 참된 복음을 들읍시다. 참된 복음을 읽읍시다. 이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이 안에서 우리를 발견합시다.
여러분의 엠비티아이는 무엇인가요? IMFJ, ‘I’M FAMILY OF JESUS’, 예수님의 가족, 하나님의 자녀가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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