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에서 일어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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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2 views변화산에서 일어난 3가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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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에서 일어난 일
샬롬! 오늘 수요예배에 나오신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앞뒤 좌우로 이렇게 인사 나눠 볼까요? ‘2024년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으로 응답하는 성도님들 삶에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가득하시길 축복 드립니다.
[말씀: 누가복음 9장 28-36]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 하시러 산에 올라 가사 29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 32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인사말-도입]
오늘 읽은 본문은 공관복음인 마태,마가,누가복음에 모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다니시고 성경 좀 읽어 보신 분들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변화산은 우리가 구분하여 부르는 명칭이고 성경 원문에는 ‘산’이라고 되어 있고 마태복음에만 ‘높은 산’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변화산이라는 지명도 없을 뿐더러 기록도 없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는 본문 주제에 대한 다른 분들의 설교를 검색 해봅니다. 제가 주해한 내용이 맞는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살펴보는데 오늘의 변화산 네러티브는 비교해 볼만 설교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들도 설교를 잘 안 하는 주제라는 것입니다.
본론 말씀에 들어 가기에 앞서 몇가지 사전 지식을 짚고 넘어 갔으면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소인 변화산이라는 곳이 성경 지리상 어디일까요? 많은 신약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정확한 곳은 알 수가 없다가 정답입니다.다만 정황상 두가지 주장이 있는데 먼저는 나사렛에서 동남쪽 10km 아래에 있는 갈릴리 호수 남쪽 ‘다볼산’이라고 하는 주장 입니다. 이 산은 800미터 높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주장은 가이샤라 빌립보 위쪽 갈릴리 호수에서 40km 떨어진 ‘헬몬산’이라고 보는 주장입니다. 현재는 이 주장이 더 많은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자료를 보고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왜 공관복음에 나타난 변화산 스토리가 쓰이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변화산에서 직접 경험한 세명의 제자 중 한 명인 요한이 쓴 복음서인데 말이죠!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차이점이 많이 있는데 특히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병고침 사역들이 빠져 있는 것이 많고, 공관복음에 없는 기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이 AD.90년경 제일 나중에 쓰여졌고 이전의 세 복음서를 저자가 이미 읽고 보완할 부분을 기록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요한은 복음서에 예수님의 신성과 십자가 수난을 중심으로 기록했기에 공관복음에 모두 언급된 신비로운 경험인 변화산 사건에 대하여 반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변화산 네러티브는 마태복음 17장, 마가복음 9장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행말씀이라 본론에 들어가면 서로 비교해 보겠지만 3개 복음서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본론]
변화산 스토리가 쓰여진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가이샤랴 빌립보로 갑자기 사역지를 이동하십니다. 마태, 마가복음 모두 지역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누가복음만 지역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유명한 고백이 나오지요! 세상사람들과, 너희는 나를 무엇이라고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로소이다’ 그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사람들에 말하지 말 것을 명하시고 자신이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제자들에게 드러내 놓고 가르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로 붙잡고 강력하게 그러지 마시라고 항의했다가 ‘사탄아! 물러가라고’ 혼찌검이 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고 혼란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다른 제자들의 고백이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스라엘의 나를 회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말씀을 받아들였을까요? 그후 성경은 정확한 기록으로 6일이 흐른 뒤에 오늘의 변화산 사건이 일어났다고 마태, 마가 복음에서 기록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8일후라고 기록합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 차이가 변화산에 가고 오는 날짜까지 누가가 기록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선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다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학자들은 변화산이 다볼산이 아니라 헬몬산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여기서 찾습니다. 빌립보에서 다볼산까지는 100km를 걸어야 하는데 5일동안 종일 걸어야 하는 강행군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의 영지로 사역지를 이동한 이유가 그동안의 공생애 3년 사역을 통해 예언된 언약의 성취를 다 이루시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예루살렘 행을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면,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충격적인 메시지를 생각하고 소화할 시간을 주시려고 했다면 변화산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하루 정도 거리인 헬몬산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사역은 갈리리 분봉왕 안디바 헤롯( 세례 요한을 죽인자)의 위험과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살해 위험 속에서 늘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중립지인 빌립의 영지는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클라이막스인 대속의 십자가 사건을 준비하기에 적절한 곳 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산 이야기의 앞에 진행된 빌립보 사역은 오늘 이야기와 매우 관계성이 높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안았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1주일이 지난 후에도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산에 기도하러 올라 가십니다. 본문 28”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사” 이 일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셨던 것과 오버랩 됩니다. 세명이 제자들이 졸고 있는 것도 신기하게 똑 같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성경은 왜 예수님이 세명의 제자를 선택해서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하셨는지 이유를 말해 주지 않을까요?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높여주고자 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기간동안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쫒아 내셨지만 그 사역들이 널리 알려 지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음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 더욱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보이신 후에 도마가 자리에 없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1주일 후에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고 믿으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요20:29 ‘너는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신비한 영적 체험을 경험하는 것으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 좋아하신 방법이 아니셨습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세명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선택한 것이 신비한 영적 체험을 통해 믿음을 더욱 강화 시키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세명이 12제자중에서 특별히 선택을 받은 이유가 있을까요? 성경은 이 또한 명확하게 알려 주시지는 않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관점은 예수님이 그냥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회 강단에서 간혹 잘못 가르치는 부분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베드로를 수제자로 요한과 야고보를 더 중요한 제자로 설명하며, 우리 신자들도 하나님 앞에 더욱 크게 쓰임 받기 위해서 열심을 다하자고 설교하시는 분을 봤었습니다. 완전 비 성경적이이고 주관적 성경해석 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베드로가 수제자라고 말하지 않고 요한과 야고보와 더불어 12제자중의 핵심 제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3명은 기이한 영적 체험인 변화산에 그리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동참 했는가요?, 성경적 대답은 모른다 입니다. 굳이 답을 찾자면 하나님의 뜻입니다. 롬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호기심으로 더해 나아가면 위험합니다. 자칫 복음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자기공로와 조건 붙이기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입니다. 바울이 공언 했듯이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심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은혜의 진리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전적이고 주권적인 은혜인 십자가의 공로로만 하나님에게 나아갑니다. 거기에 우리의 공로나 노력이나 열심이나 그 어떤 것도 덧붙일 수가 없습니다. 단지,우리는 그 은혜를 알고 변화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님의 능력으로 열심을 내어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문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목사나 전도사나 말씀사역자로 부르심도 그들의 믿음이 남다르고 성경 지식이 많고 삶이 경건해서 하나님이 특별한 사랑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면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더 큰 죄인을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부르셔서 사용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역자가 스스로 자격이 있어서 혹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자신의 부르심을 자랑한다면 여러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은 목자가 아니라 양을 잡아 먹는 삯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으십니다. 모든 부르심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 가운데 있는 섭리입니다.
[결론]변화산에서는 일어난 일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옷에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놀랍게 용모가 변하셨습니다. 본문 29절에‘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님은 신인이십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여기서의 변화는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십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이 땅에 사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그 몸에 찬란한 신적 영광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이단은 언제나 이 두가지 중 한가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이단은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초기 사도들이 싸움은 이것에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의 복음서도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지 않는 영지주의와의 싸움속에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말씀의 성육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오늘날은 오히려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단과의 싸움입니다. 인간 예수를 부각하다가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 이라는 것을 고의적으로 망각하고 무시하는 이단이 문제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전과 다른 신적인 영광을 직접 보여주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인간적 모습속에 신적인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위대한 설교를 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려 내시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 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것을 보게 될 것 입니다. 힘없이 붙잡혀 고난 받는 초라한 모습, 죄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예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설교를 하지 않아도,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을 행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언제나 가지고 계시는 신적인 영광을 직접보여 주신 것입니다.
두번째는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대화를 나눕니다. 30-31절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 제자들이 제일 이해 못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능력이 많으시고 지혜가 출중하신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왕이 되어서 로마에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믿었는데 얼마 안 있다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혼란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이미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변자이고 엘리야는 예언의 대변자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언약의 채결을 중재하고,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는 시내산(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의 파기했음을 고발합니다. 참으로 두 사람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듯이 지금 변화산에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새로운 언약을 주시기 위하여 이제 십자가로 향해 가십니다.
세번째는 앞의 두가지로도 충분히 보여 주셨지만 하나님이 구름가운데 음성으로 나타나셔서 직접 말씀을 하십니다. 35절입니다.’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성부 하나님이 증언하십니다. 여러분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모든 언약의 성취임을 확증하십니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의 영원하신 신성과 율법과 선지서의 모든 말씀, 언약의 성취에 대한 두 증인, 모세와 엘리야로도 충분하지만 성부 하나님이 증언 하심은 완벽하고 완전한 확증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본 것을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금하셨습니다. 마17: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 부활 이후에 오늘의 일을 기억하고 회복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영적 체험한 한 세명의 제자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전해지고 기록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까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 너무도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이고, 모든 구약에서 제시한 언약의 성취였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새 언약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변화산과 같은 영적 체험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말씀을 통해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더 복된 일이라고 예수님이 선언 하셨습니다. 영적 체험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우리가 체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사도들의 체험을 기록해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하신 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전히 하나님 제게 무언가 보여 주세요? 그러면 제가 믿겠습니다. 그러시는 분이 계신가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펴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세가지 일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이해하고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천년 전에 성경에 반복적으로 예언 한대로 예수님은 정확하게 세상에 태어나셨고 정확한 삶을 사셨고 정확하게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바라보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마무리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줍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지도 않았습니다. 의심할 만큼 의심하고, 심지어 예수님이 그 길(십자가의 고난,죽음,부활 그리고 재림)을 가지 마시도록 가로막으려 했습니다. 믿을 수 없어서 나중에는 모두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롯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을 뿐 아니라 그것을 즐거워 하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성경의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모든 증거들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확인되고 확인되어 우리 손에 들려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 연약한 믿음에 머무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이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세가지 일을 믿으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굳게 믿고 나아갑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