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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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15-17
늘 한 해를 시작할 때마다 같은 바람이지만, 정말 우리 모두에게 예년과는 전혀 다른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성도님들의 가정과 일터에, 그리고 하늘 아래 아름다운 교회로서의 꿈을 품고 있는 우리 하름교회가 주님이 주신 은총으로 더 충만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 주 내내 기도하게 된 제목이 이러한 바람이 단순히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올해 우리의 삶 속에서 현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2024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심령 속에 두 개의 기둥을 먼저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구심점이라면 예루살렘성전 아닙니까? 이 성전은 3천 년 전, 솔로몬 왕에 의해 건축되었는데요.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목재로 당시에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했던 백향목을 사용했는데, 그 나무를 벌목하는 데만 무려 3만 명의 군인이 동원되었습니다. 재료를 확보하고 가다듬기 위한 채석공의 수는 8만 명이었고, 성전 건축 공사 현장에 투입된 인원은 7만 명이었습니다. 그 모든 인부를 통솔하는 감독관의 수만 해도 3,3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무려 18만 명이 장장 7년에 걸쳐 완공한 국력을 총동원한 국책사업이었던 셈입니다. 얼마나 장대한 공사였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대단한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성전 건축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인 것은, 자신이 건축한 그 거대한 성전 자체를 하나님과 동일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 예루살렘성전이 완공된 다음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8:13
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자, 이 내용만을 놓고 본다면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자신이 건축한 예루살렘성전 안에만 거하실 것으로 인식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의 기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열왕기상 8:27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솔로몬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감히 수용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건축한 성전 안에 갇혀 계실 분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그 거대한 성전을 온 국력을 다해 지어서 건축한 이유는, 성전이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백성들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늘 본문이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은 예루살렘성전 전면에 두 개의 황동으로 만든 기둥을 세웠습니다. (이미지) 각 기둥의 높이는 35규빗입니다. 약 15m 정도 되는 높이죠. 그리고 각 기둥 윗부분에는 5규빗 즉 2.3m의 기둥머리를 얹었습니다. 따라서 기둥 하나당 총 높이는 머리 부분을 합쳐 18m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기둥머리 부분은 사슬과 석류 조각으로 장식했는데요. 독특한 점은 이 두 기둥 모두 안쪽은 모두 비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2장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남유다를 멸망시킬 때 성전의 기물은 물론 이 두 기둥도 파괴해서 전리품으로 가져가 버립니다. 한 마디로 철거가 가능한 기둥이었던 셈이죠.
이 거대한 두 기둥을 여러분 머릿속으로 한 번 그려보십시오. 예루살렘성전이 동쪽을 바라보고 있거든요. 해가 떠오르면 눈부시게 빛날 그 거대한 황동 기둥이 빛을 반사하면서 얼마나 화려하고도 웅장해 보였겠습니까? 그런데 그 두 기둥의 진짜 중요성은 거대한 높이나 화려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장식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 두 기둥의 중요성은 기둥의 이름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합독
17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솔로몬은 두 기둥 가운데 오른쪽 기둥을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기둥은 ‘보아스’라고 불렀습니다. 먼저 이 ‘야긴’은 ‘그분이 세우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그분’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시죠. 그리고 ‘보아스’는 ‘그분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신앙의 고백을 갖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두 기둥은 속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현관 입구에 세워놓은 장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둥의 이름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야긴과 보아스는 건물을 지탱하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상징적인 기둥으로서 그 기둥을 볼 때마다 그 예루살렘성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한 인간의 인생도, 한 가정도, 한 교회도, 한 국가도 오직 하나님께서만 바로 세우실 수 있고, 하나님께만 그와 같은 능력이 있다는 고백 아닙니까? 이것은 성경의 핵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이유는, 뭐 그들이 위대하거나 강해서가 아닙니다. 신명기 7:7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뭐라고 하십니까? 그들이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처럼 보잘것없는 민족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가실 것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그와 같은 능력이 있음을 온 천하에 다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2024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창립 70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여러분들의 가정과 일터에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으로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소망하면서요. 우리가 솔로몬을 닮아야 할 점과 닮지 않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하는데요.
자, 먼저 우리가 솔로몬에게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은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초대 왕은 사울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윗에게 왕위를 물려주시고, 이스라엘 왕국이 아예 다윗 왕국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울 왕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굳건하게 세울 수 있고 또 자신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인간이었던 데 반해, 베들레헴의 보잘것없는 양치기 출신이었던 다윗은 인간과 인간 세상을 바로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하나님께만 그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겸손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그런 다윗 왕의 아들 아닙니까? 그의 어머니는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과 불륜의 관계로 맺어진 밧세바였습니다. 한 마디로 불륜 남녀의 자식이었습니다. 심지어 다윗이 태어났을 때 그의 위로는 형이 아홉 명이나 있었기에 다윗은 평생 양을 치는 목동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의 자식들 또한 그런 운명이었을 것입니다. 서열상으로 보면 솔로몬은 도무지 왕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출생 배경을 가진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많은 형제들 중에 오직 솔로몬만이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왕으로 세움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과 이 세상을 바로 세우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그 능력이 있음을 솔로몬은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이 성전 앞에 두 개의 큰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 지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성전이야말로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한 집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 속에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각인시켜 주기 위한 그런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믿는 솔로몬 왕국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하고 번성한 것은 당연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잘 통치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겸손한 솔로몬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본질을 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구해야 할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대로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부와 명예와 권세도 함께 주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 이 솔로몬이 왕으로서 국정 수행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왕이 된 지 4년 만에 성전 건축을 시작해서 7년 만에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게다가 13년간 자신이 거할 왕궁을 또 짓게 되는데요. 이 기간에 솔로몬은 오로지 왕국만 지었던 게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게 될 각종 기구와 장식품을 또 만들게 됩니다. 솔로몬이 그 많은 성전 기구들 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성전 앞 현관에 설치한 두 개의 큰 놋으로 만든 야긴과 보아스 이 두 기둥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솔로몬이 이 두 놋 기둥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요.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희람이라는 사람을 레바논에서 스카우트해오기까지 합니다. 이 히람의 아버지는 레바논 출신의 놋을 다루는 기술자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히람은 레바논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놋을 다루는 기술을 전수받았고요. 또 유대인 어머니로부터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전수받았던 셈입니다.
여러분, 왜 솔로몬이 외국인 기술자까지 스카우트해오면서까지 이 두 개의 기둥을 세운 걸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시켜서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 스스로가 세운 기둥이었어요. 그는 이 두 개의 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인 다윗 왕이 큰 제국이었던 애굽을 능가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고 하나님의 도우심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크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두 기둥 사이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두 개의 기둥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두 기둥을 지나가야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있는 것이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세워질 수 있다는 이 신앙고백이 있어야만 성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하름교회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국 전쟁의 전란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기인 1954년 7월 18일에 정봉순 씨 가정에서 첫 가정예배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 10월 20일 조직교회로 발돋움하기 위해 장로 취임을 승인받게 되었고 1992년 12월에 교회가 신축되어 입당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 솔로몬이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교회 70년 역사 속에서 야긴과 보아스로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이 세우셨고 하나님께만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척박하기만 했던 하계동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위대하거나 강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약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만 능력이 있음을 우리 교회를 통해 이 하계동 땅에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세우시고 하나님만이 능력이십니다.’ 주일에 이 예배당을 들어오실 때 여러분들이 이 신앙고백을 가지고 나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예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린 후에 나가실 때도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의 두 기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의 두 기둥을 통과해야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일주일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올해는 표어 현수막 대신 교회 입구 앞에 진짜 기둥을 만들어 볼까? 정말 그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윤영진 집사님께 기둥 그림을 좀 그려달라고 부탁할려다가 그냥 넘어갔는데요.
여러분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현관문 앞에 보이지 않는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이 세워져야 합니다. 저희 아내는 아예 신년 말씀 카드를 현관에 붙여두었더라고요. 출입하면서 계속 보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이 출애굽 백성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내 배우자가 내 자녀들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솔로몬처럼 단 한 사람의 신앙고백. 야긴과 보아스를 늘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는 그 한 사람이 바로 그 가정에 있으면 됩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면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우리가 솔로몬에게 배우지 말아야 할 신앙은 불행하게도 그의 인생 최전성기에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가득 차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 나라가 온전히 세워질 수 있다는 신앙고백을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솔로몬의 이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가 왕으로서 힘들어서, 나라가 강대국들의 압제에 견디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평안할 때, 가장 나라가 부강했을 때, 먹고살 만할 때 하나님이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의 두 기둥을 무너뜨려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인간 왕으로서의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게 된 것이죠. 힘센 나라들과는 정략결혼을 통한 외교 정책을 펼치면서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그 외교 정책은 탁월한 비책 같지만, 나라가 외세로부터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이 아닌, 외교 정책으로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야긴과 보아스는 필요 없다는 것 아닙니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이방신을 허용해 주었던 것이죠.
여러분, 제가 솔로몬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요. 하나님을 떠난 지혜가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고요.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결과만 가지고 오게 되더라고요.
탄탄대로를 걷고 있던 이스라엘 왕국을 마치 솔로몬 자신이 세운 것처럼 왕국의 번영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착각하는 교만에 빠져 버린 것 바로 그것이 솔로몬을 실패의 인생으로 끌어내린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솔로몬 왕국은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도전 때문에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그가 죽고 난 후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성경의 역사서는 일관되게 이 관점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 인간이 겸손하게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믿을 때 인간 세상에는 언제나 하나님에 의한 새 역사가 이루어졌지만, 그런 인간이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버리는 자기 교만에 빠지게 되었을 때 인간 세상은 언제나 분열과 대립, 어둠과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2024년 한 해를 시작하자마자 국제 정세와 환경 문제, 국내 상황들이 어떤가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가적인 난제를 안고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일본에서는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죠. 얼마 전에는 야당 대표가 피습되는 사건도 각자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서 얼마나 충격을 주었습니까? 이념 논쟁과 편 가르기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고요. 게다가 올해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는 해 아닙니까?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선심 공세와 상호 비방은 물론이고요. 사실 공약도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매번 선거 때마다 가증되는 여러 유언비어와 경제난 때문에 암울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어디를 둘러봐도 올해가 새해가 될 만한 조짐은 쉽게 보이지 않는 게 우리 현실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2024년이 분명 새해가 될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 속에서 2024년을 맞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과 가정, 우리의 일터와 이 나라를 바로 세우실 수 있는 야긴의 하나님이시며, 오직 하나님만 그 능력을 지니신 보아스의 하나님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를 ‘야긴과 보아스’로 정했습니다. 야긴과 보아스의 믿음 안에서만 올해가 진정으로 새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5천 년 역사 이래 가난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이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분의 능력의 손으로 이 민족을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요근래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문제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버리고, 그 모든 것이 마치 우리의 능력인 것처럼 착각하는 교만에 빠져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 야긴과 보아스를 통해 두 개의 영적 기둥을 간단하게 적용하면서 말씀을 정리하고자 하는데요. 첫 번째는 바로 예배라는 기둥입니다.
제가 비록 짧은 목회 경력이지만, 그 가운데서 깨닫는 게 뭐냐면 예배만큼 풍성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리가 없더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싶어 하지만, 예배는 그분의 임재를 강력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둥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올 한해 우리 성도님들의 예배가 정말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그런 실제적인 경험들이 이 예배당 안에서 막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하나의 기둥은 기도라는 기둥입니다. 그 옛날 솔로몬 성전에 들어가면 향단이 있고 분향단에서 향을 피워서 연기가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보면 기도가 올라간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올려드린다’라고 표현하잖아요?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올려 드리는 기둥입니다. 답답한 마음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고백하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삶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내려주시는 내림의 기둥이라면, 기도는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를 올려드리는 올림의 기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예배당 입구에는 야긴과 보아스가 없습니다. 그냥 성경에 나오는 심오한 의미가 있는 용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야긴과 보아스는 성전을 찾는 예배당을 찾는 모든 예배자들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기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 한해는 이 예배당을 찾을 때마다 예배와 기도의 두 기둥을 마음에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기둥이 견고히 세워져 있는 분들은요. 쉽게 쓰러지지를 않더라고요. 예배와 기도를 사랑하는 성도들치고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반대로 말을 하면 솔로몬처럼 아무리 지혜가 충만하고 실행력이 좋고 수완이 좋고 물질이 넘쳐도 신앙 경력이 많고 아무리 목사고 목사 할아버지라도 예배가 무너지고 기도가 무너지는 성도는 영적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진짜 지혜로운 성도는요. 예배를 더 풍성하게 드리기 위해 기도로 반드시 연결을 합니다. 이 말은 기도를 잘하는 성도는 반드시 예배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기도가 확증되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기둥은 높이가 다르면 지붕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예배도 중요하고 반응하는 기도도 중요합니다. 기도를 안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도만 하는 것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예배의 기둥에 잘 담기지 않으면 균형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예배와 기둥이라는 이 두 기둥을 같은 높이로 같은 힘으로 건강하게 잘 세움받아서 어떤 시련이 와도 넘어지지 않고 사탄의 시험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후 찬양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합심기도
이제 우리 함께 기도하는데요. 새해 초부터 문제에 부딪히셨나요? 우리 마음에 야긴과 보아스, 하나님만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능력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두 기둥을 세우길 원합니다. 예배와 기도가 회복되는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한 가지! 주님, 우리 하름교회 지난 70년의 역사 속에서 많은 은혜를 베푸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야긴과 보아스로 더욱 든든하게 세워져가는 교회가 되도록 올 한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의 심령과 교회를 위해 이 시간 오늘 주신 말씀의 은혜를 기억하시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한 개인의 인생도, 가정과 교회도 또 국가도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하나님께만 능력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름의 모든 성도들께서 솔로몬이 소유했던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갖길 원합니다. 주일에 교회는 물론이고 가정과 사업장, 일터에서도 삶의 자리에서 출입할 때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능력 주신다는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으로 올 한해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솔로몬이 인생의 최전성기 때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잃어버렸음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떠난 지혜로 살지 않도록 마음 깊은 곳에 믿음의 두 기둥을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기둥, 기도의 기둥이 세워지게 하시고 올 한해 어떤 시련과 사탄의 시험 앞에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견고한 복음의 능력으로 넉넉하게 한 해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2024년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만이 능력이시라는 야긴과 보아스로 한 해를 살아가길 다짐하는 사랑하는 교우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