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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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하나님 사랑
십계명, 하나님 사랑
친구들, 다들 한주 잘 보냈나요? 이제 방학 잔류한지도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열심히 공부하고 있나요?
아마 생각한 만큼 잘 공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시간 학교에 있는 것만으로도 평소보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또 학교에 있으니까 뭘 할 수가 있죠? 이렇게 하임 예배를 참석을 할 수가 있죠.
사실 제가 듣기로 이번에 주말 잔류하는 친구들이 이전보다도 많이 줄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지난주에 학년모임이나 수요조모임 때 들어보니 주말에 나가고 하는 친구들 때문에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하고 한 친구들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아마 주말의 학교가 어찌보면 여러분들에게 너무 한산하고 공부하기도 쉽지 않은 시간일 수 있을텐데, 그럴 때일수록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도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귀한 시간 여러분들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또 남은 주일의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지난주부터 새롭게 신명기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은 저번주에 말씀드린 대로, 거듭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읽는 것이라고 했죠.
출애굽 이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서, 말씀을 잘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정탐꾼 사건을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그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고, 순종했던 다음세대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이번주에도 지난주와 같이 이미 한번 겪었던 이야기들을 모세가 다시금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십계명의 말씀이죠. 그 중에서도 1계명부터 4계명까지의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이 십계명의 말씀을 보면서, 모세가 이 말씀을 왜 백성들에게 전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또 어떤 은혜를 나눌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도록 할게요.
우리가 십계명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가장 먼저, 왜 모세가 십계명의 말씀을 다시 이야기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겠죠.
일단, 십계명이 언제 탄생한 것인지 여러분들은 알고 있나요? 출애굽기 이십장을 보면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적으신 십계명의 말씀 돌판을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십계명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여러 율법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으로서 백성들에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십계명을 받았을 시기가 언제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기 이전이란 말이에요.
그러다보니 지난주 말했던 것과 같이, 많은 시간이 흐르고, 십계명을 받았을 때에 함께했던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에요. 그 당시 어린아이였거나,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들이 대부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게 되죠.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도 처음에는 열심히 그 말씀을 따랐을 거에요. 심지어 말씀을 처음 받았을 때, 백성들이 뭘 하고 있었어요? 송아지 우상 숭배하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하시기도 하고 했었죠. 그런 큰 일이 있었다보니, 초기에는 말씀을 잘 따라서 살았을거에요.
그런데 그것도 오랜 세월이 지나 말씀을 직접 받지 못하고 부모들에게 건너서 들은 출애굽 이세대들은 십계명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점차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모세는 이들에게 이 십계명 말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모세의 의도가 바로 오늘 본문 1절부터 5절까지에 나타납니다.
모세가 뭐라고 해요? 1절에서부터 이스라엘아 규례와 법도를 배우고 지켜 행하라 라고 말하죠.
그리고 3절에서 뭐라고 쐐기를 박죠? 이 언약, 즉 십계명의 말씀이 조상들하고 하나님만이 맺은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 서있는 너희 이세대들과 세우신 것이다.
모세가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뭐겠어요? 율법의 말씀을 아버지들만의 것으로 치부하고 말았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겠죠. ‘내가 하고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들 세대에서 한 거니까 나랑은 상관없어’ 이런 식으로 인식했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다시금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가 그 당사자이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우리에게도 크게 해당되는 내용일지도 몰라요.
여러분들은 성경 말씀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게 되나요? 어쩌면, 우리 마음 한켠에, 이건 그때 당시의 이야기야! 라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그것이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무래도 기원전에 기록된 말씀이고, 그러다보니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있기도 하겠죠.
하지만 겉으로 표현된 내용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자리한 하나님의 말씀, 그 핵심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욥기 말씀 나누면서도 했던 내용인데, 하나님은 시간에 매인다고 했어요?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역시도 시간에 구속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서 모든 이들에게 그 말씀은 유효하게 작용한다는 거에요.
굳이 여러분들께 비유를 해서 설명을 하자면, 여러분 혹시 마블 애니메이션 중에 왓이프라는 애니메이션 아시나요? ‘이랬다면 어땠을까’ 라는 주제로 마블 세계관의 내용을 꼬아서 재밌게 만든 내용들인데, 거기서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 왓쳐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그 캐릭터가 이 작품의 핵심인데, ‘이랬다면 어땠을까’ 로 등장하는 내용들이 그 유명한 멀티버스로써 존재하고, 그것을 모두 바라보는 캐릭터가 바로 이 왓쳐입니다.
그 왓쳐는 모든 세계와 모든 시간을 앞서서 보기 때문에, 나레이션을 하면서도 이미 대부분의 내용들을 아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러니 그는 당시 모든 세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죠.
그러니 이런 거에요. 물론 왓쳐와 하나님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것을 보고 안다는 점에서 보자면, 하나님 역시도 모든 시간에 알맞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성경 말씀 역시도 몇백년을 거스른 이야기지만, 당장의 우리에게도 매우 효과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경을 바라볼 때에도 ‘아 이때 그랬대’ 정도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늘 설교 서두에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말씀이 대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 말씀을 가지고서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를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약의 말씀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우리 하임 공동체와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의 말씀이 바로 이 성경이라는 것이죠.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약속의 내용을 한번 살펴봅시다.
1계명이 뭐죠? 그렇습니다. 7절에 나오는 대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이 바로 1계명입니다. 이 계명은 무슨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 하나님을 제외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죠.
언뜻 들으면 마치 다른 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요,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세상의 신은 오로지 하나님 뿐이시죠. 단지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만들어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신들, 그리스 신이나 북유럽 신들 이런 신들 생각이 나죠? 기본적으로는 이런 신들입니다. 당시로 따지면 바알과 아세라 이런 이방 신들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여러분 중에 이런 이방 신들 실제로 믿는 사람 본적 있나요? 그리스 신화 제우스 신 섬기고 이런 사람들은 잘 없죠.
물론 토속신앙 같이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무당들도 있구요, 서울에도 동묘 같은 곳에서 관우를 장군신으로 섬기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 그걸 진지하게 막 믿고 따르고 섬기고 이런 사람들은 잘 없습니다. 그러면 1계명 지키기는 참 쉽게 느껴지겠죠?
근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지금이 더 지키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시대로 적용했을 때, 1계명이 말하는 다른 신들은 정말 우리가 말하는 그 ‘신’뿐만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가 즐기는 문화나 물질들이 충분히 그러한 ‘다른 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을 보면 그러한 것들을 잘 제시하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들은 돈과 명예, 지식 이런 것들이 바로 다른 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크게, 더 자주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다른 신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경우에는 어쩌면, 공부와 입시가 그러한 신들이 될 수 있겠죠. 이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로서 살아가기로 작정했다면, 어떤 것에도 우리는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는 공부까지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방해한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간에 다른 것 하지 않고 이 자리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잘 하고 있는 거에요. 하지만 앞으로의 삶 가운데서도 정말 수없이 이런 유혹들이 오게 될 거에요.
당장 내 앞에 입시의 두려움, 시험의 두려움 때문에 신앙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들이 생기게 될 것이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어려운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을 만드려는 사단의 속삭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담대히 이겨내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듯, 하나님은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하세요. 어떤 두려움이 있더라도, 설사 그것이 입시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하시고,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길로 여러분들을 이끄실 거에요.
그러니 두려워말고, 하나님과 언제나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자 이어서 2계명을 보겠습니다. 2계명은 뭔가요?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선 1계명에서 이어지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할 지점은 여기서 말하는 우상이 다른 신을 형상화한 것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십계명 말씀을 처음 받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문제가 되었었다고 했죠? 사실 이 금송아지 우상 역시도 하나님을 형상화한 우상이었습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서 ‘이것이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이다’라고 했던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모세가 하나님 말씀 받으러 산에 올라가서 계속 내려오지를 않으니까 불안해져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었던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행동을 극히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상을 만들어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제한하고 잘못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피조물로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모든 것에 완전하고 온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에서 이러한 죄악을 범하는 순간이 발생하죠. 바로 중세시대입니다.
잠시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고대를 지배했던 로마제국, 그 중에서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그것을 기점으로 중세가 시작이 되죠.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게르만족입니다. 그런데 로마는 망해도 로마를 형성했던 문화나 제도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게르만족은 그것을 운영하는 방법을 잘 모를 수밖에 없죠.
그러니 누군가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나라를 함께 다스려야 하는데, 당시 그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로마 땅을 지배한 게르만족과 함께 나라를 운영해가면서, 자연스레 게르만족에게도 복음을 전파하게 된거에요.
그런데 문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하나님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중세시대에 넘쳐나는 성상과 성화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우상숭배였지만, 로마 교회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이유로 이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다라고 못박고 넘어가버렸고, 이것은 이후 종교개혁과 교회 분열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들에서는 이러한 성상을 만들지 않죠. 심지어 보수적인 교단이나 교회들에서는 십자가마저도 이런 우상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교회 중앙에 상징으로서 두는 것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자 그럼 당장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 바로 기독교 이미지들입니다.
여러분들 잠시 눈을 한번 감아볼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한번 상상해봅시다. 제가 단언컨대 여러분들이 상상한 예수님의 모습은 거의 모두 흡사할 겁니다.
흰옷을 입고 곱슬머리 멋드러진 장발에, 수염도 기르시고 아주 잘생긴 서양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거에요.
전형적인 예수님의 이미지가 그렇죠. 그런데 사실 정말로 예수님이 그렇게 잘생기셨을까요? 일단 우리가 상상하는 예수님 이미지와 같은 서양인의 모습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인이셨기 때문에, 보통 생각하는 아랍사람의 모습을 하셨을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예수님의 직업이 뭐였어요? 목수셨죠. 보통 목수는 나무를 베고 가공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몸 근육이 발달을 했을겁니다. 그럼 예수님의 몸도 꽤나 좋았을 가능성이 있죠.
어쩌면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소년의 배우같은 느낌은 아닐 수 있다는거에요. 실제로 영국의 연구팀이 당시 시대상과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예수님의 추정 몽타주를 만들었는데, 예수님보다는 베드로와 같은 이미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예수님의 이미지 역시도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당장 죄다!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한번쯤 돌아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오히려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죠.
자 그러면 다음으로 3계명을 봅시다. 3계명은 뭐죠? 11절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요 계명은 제가 이전 설교할 때 한번 언급했을텐데, 단순히 하나님을 욕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잘못된 일을 행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거짓을 말하거나 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금하셨다는 것이죠.
우리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다고 했었죠? 기억이 안나실 수 있겠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삶에 적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세상을 잘못 살아가고, 그것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잘못임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라면, 마땅히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말씀을 잘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 당장 학교생활할 때, 하임의 이름이 따라올 때가 있잖아요? 하임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말씀에 맞지 않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면, 하임 다니는 애들 다 왜저래 와 같은 말들이 들려오게 될 거에요.
물론 어떨 때에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더라도 그러한 때가 있을 수 있겠지만요, 그러한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최대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한 우리의 노력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자연스레 우리의 삶도 말씀과 더욱 가까워지는 삶의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4계명을 볼까요? 4계명은 뭐죠? 12절에 있죠. 바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4계명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안식일에 대해 어떤 것들을 알고 있으신가요?
안식일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시나요?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하시고 마지막 7일째 안식을 하시면서 처음 안식일이라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 말씀을 주셨을 때에도 안식일을 말씀하시면서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조금 다른 점이 나타납니다. 안식일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말을 하고 있죠?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여기서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하였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어디로 이어지느냐, 모든 이들, 심지어 종들까지도 안식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십계명을 이야기할 때, 두 가지 사랑을 이야기하죠.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그래서 1계명부터 4계명까지를 하나님 사랑에 대한 부분으로 잡고, 이어서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이웃 사랑에 대한 부분으로 잡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계명과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을 별개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이 4계명 안식일 관련한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 사랑에 대한 내용에서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넘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지만, 동시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유롭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웃들도 동일하게 안식을 누려야 한다고 말씀은 말하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이 4계명을 통해 우리가 적용해야 할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며 살아가는 것,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가고 함께 말씀을 듣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할 일들입니다. 물론 말씀에서 말하는 안식일과 주일이 다르긴 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하기로 하구요,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그 안식을 우리 뿐만이 아니라 이웃들도 함께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같이, 이웃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것이죠.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교회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어떤 얘기를 하셨냐면, 주일에 돈을 쓰면 안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왜냐하면 돈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값에 해당하는 노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제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너무 옛날 이야기 아니냐라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오늘의 본문을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성경적인 적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 율법 지키듯이 돈 무조건 쓰면 안돼! 이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그 정신만큼은 잊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런 것이죠. 주일은 우리만 누리고 우리끼리만 행복한 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도록, 되도록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던지, 어쩌면 이런 행동들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한다던지 하는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십계명이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지만, 이 사랑은 나누어져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자연스레 그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언급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삶은 우리 개인, 혹은 우리 공동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며 사랑을 베푸시지만, 그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을 이 세상 구석구석에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오늘 본문 이후로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는 다섯가지의 계명들을 뒤이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여러분 주변의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또 여러분들이 정말로 이웃을 사랑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마음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혹은 이웃을 향해서 진정한 사랑을 품고 나아간다면, 그 사랑은 분명 하나님과 이웃 모두를 향한 사랑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십계명 말씀, 그 중에서도 1계명부터 4계명을 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사랑이 결국 이웃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정말 여러번 들었던, 어떻게 보면 기독교인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말씀이 이 십계명 말씀이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돌판에 기록하신 유일하신 말씀이신 만큼, 우리가 잘 알아야 하고, 잘 기억하며 지켜야 하는 말씀이 또 이 십계명 말씀입니다.
우리 모든 친구들이 오늘 나눈 말씀들을 잘 기억하고, 정말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그래서 더 나아가 하나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친구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하나님의 그늘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