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역시 하나님, 완전히 내 생각을 뒤집어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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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백성의 목적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목적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보통 언제 삶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었는가? 보통은 반전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아 이래서 주인공이 이런 행동을 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 연애 드라마나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장면에서 서로를 좋아해서 했던 행동을 나중에 사귀고 나서야 ‘그래서 너가 나한테 이런 행동을 했구나!’를 느낄 때 이러한 이유로 저렇게 행동을 했다는 것을 서로가 깨달을 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패널들이 환호하면서 기뻐하게 된다. 엊그제 은비쌤을 청년쌤들과 몰카를 하여서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정주쌤과 주은쌤이 다툼이 생기는 것을 보고 은비쌤은 왜 다들 이럴까 생각하셨지만, 결국 깜짝 파티를 위해 이러한 장난을 준비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구든지 몰랐던 사실을 깨달을 때, 희열감을 느끼고 행복하고 즐거워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진실게임, 비밀 이야기를 좋아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면 사도바울의 감탄사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울이 깨달은 하나님만 가지고 있는 세 가지를 찬송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첫 번째로 깊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찬양한다. 깊다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함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만드셨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자연 세계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도 창조하셨다. 정신 세계란 합리적 질서, 논리적 질서, 개념적 질서, 법적 질서, 심리적 질서, 영적 질서 모든 것이 포함된 세계이다. 과학은 우연으로 모든 것이 되었다고 설명하면 언어의 문법체계와 인간의 DNA구조, 숫자 자연수의 질서가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지식의 근원도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심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란 무엇인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누구든지 복을 주시는 분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말씀되고, 표현된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것은 곧 구약에서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구원 계획을 말씀하시고 약속하셨다. 예레미야 때 예언한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서 해방되었다가 ㄷ다시 페르시아의 속국이 되고, 로마 제국까지 이르러 나라가 사라져서 구원의 계획이 실패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해버린 역사에서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약속을 이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로 주신 것이다. 꽤 오래동안 2000년이 넘도록 긴 세월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반드시 뜻을 이루어가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개개인들을 구원으로 택하신 것으로 표현된 특별한 관계적인 앎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로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보통 판단이라는 단어는 보통 죄인인지 아닌지에 대한 법적인 결정들을 가리키지만, 하나님은 구원 역사로 이끌어나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결정을 나타낸다. 우리는 당연히 지옥에 가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하신대로, 주님의 뜻대로 살기보다는 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찬송가에서도 이렇게 고백한다. “주 못박힌 언덕 위에 생명의 문 열렸네, 깊고 넓은 은혜의 샘, 강과 같이 흐르고, 하나님의 자비하심 이 땅 위에 넘치네 평강의 왕 주님 예수 세상 죄 구속했네” 우리는 아무리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없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못박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살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피 흘리면서까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길들도 찾을 수 없음을 감탄하며 찬양한다. 이것은 곧 인간의 방법으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의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예비하시는가? 오직 하나님 의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이끌어가신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향한 계획과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끌어나가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일로 찬양하며 기뻐한다. 사도바울은 곧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감탄하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이다. 어떻게 구원 역사를 이끌어나가실지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 A.D 2세기 신학자 중 터툴리아누스라는 인물이 있다. 그 신학자의 고백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고백한다. 어떤 고등학교 2학년 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찾아와서 하나님이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자 이것을 들은 신학자가 이렇게 답했다. “너가 이해가 되는 하나님이면 내가 왜 믿어야 하냐?”
많은 세상의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서 A부터 Z까지 100%로 이해했기 때문에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가 다 알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들의 말을 신뢰하는 것이다. 박사라는 것은 어떤 한 분야에서만 전문가라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과학이 전부 다 이해가 되기 때문에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같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다. 영화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반전의 요소가 있어야 재밌다. 놀이기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릴이 나타날 때 재밌다. 나 또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가실지에 대해서 내 생각보다 크시고, 날 향한 계획들이 이해가 되지 않기에 앞으로의 가는 길이 설레고 기대가 된다.
욥이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는 하나님께서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높이 평가된다. 그때 성경에서 처음으로 사탄과 하나님과의 대화가 첫장에서 천상회의로 등장하게 된다. 사탄은 욥이 현재 재산이 많아서 그것들을 빼앗아도 과연 하나님을 경외할지 시험하자고 요청한다. 그러면 반드시 그가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하나님과 딜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고 모든 소유물을 사탄이 하고 싶은대로 다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렇게 욥은 자녀와 종들, 가축들 등 자녀와 재산을 잃게 되었다. 욥은 크게 슬퍼했으나 하나님을 원망은 커녕 오히려 경외했다. 또 다시 사탄이 하나님께 건강을 뺏어가면 반드시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건드리지 말고 다 해보라고 한다. 그렇게 건강도 잃어서 온 몸에 종기가 생기게 된다. 그러면서 욥의 아내가 뭘 그렇게까지 믿음을 지키냐 차라리 하나님을 욕해버리고 죽어버리라고 저주하며 욥에게서 떠난다.
그러나 하나님을 끝까지 원망하지 않았던 욥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너가 하나님께 크게 잘못해서 죄를 지었으니까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며 그를 위로랍시고 정죄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왜냐하면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인과응보라는 사상이 강했다. ‘죄를 지으면 너는 고난을 받게 된다.’라는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확신하면서 공감력이 완전히 하나도 없는 T의 위로를 해준 것이다. 욥은 고난의 시간을 버텨오면서 점점 하나님과 대면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욥에게 찾아오셨고, 그 하나님은 욥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꾸짖으셨다.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만드셨는지,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시는지, 날씨를 어떻게 주관하시는지, 동물들을 어떻게 다스리시고 먹이시며 돌보시는지, 사람들의 모든 세상 만사를 어떻게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지 욥에게 너가 모든 것을 다 아냐고 물으셨다.
욥의 고난은 그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다. 사탄이 하나님께 욥을 시험해보자고 제안하였을 때, 욥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였기에 그는 하나님의 자존심이었다. 욥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 친구들에게 변호하면서 고난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기에 주님이 잘못된 것처럼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욥을 꾸짖으신 것이다. 모든 이야기의 하나님의 결정적인 이야기는 하나님 자신만이 지혜롭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욥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깨닫고 곧바로 겸손하게 회개하는 태도로 반응한다. 우주와 자신의 뜻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게 된다. 욥은 비록 점점 하나님 앞에서 참을성 없이 되어가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욕하고 죽지 않았으며, 친구들의 잘못된 논리에 굴복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전보다 더욱 큰 재산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정으로 아무런 죄도 없으신 분이 인간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는 고난을 받으신 분이시며, 유일하게 하나도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주님은 죄 많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자진해서 스스로 고난을 받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도록 보내심으로써 죄 많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우리 또한 살아가면서 많은 숱한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전히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들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토록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오늘 설교제목은 ‘와 역시 하나님, 완전히 내 생각을 뒤집어 놓으셨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엄청나게 넓고 방대한 우주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작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위대하시고 엄청나신 하나님을 안다는 것 하나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바라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다. 수많은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갔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끝날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 66권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약속을 이루셨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나타나있다. 그것을 알고 성경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씀이 성취되어 앞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이전에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보다 더 큰 은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주님이 이해가 되지 않기에 주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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