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하나님을 앎으로 충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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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참으로 사랑이 많으신 삼위 하나님, 이 시간 연약한 저희들의 심령에 말씀으로 임재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말씀으로 보고 느끼며, 호흡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참되게 나아가는 자들 마다 먼저 자신들의 죄됨을 고백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려 용서하신 대속의 사역을 의지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오직 성령께서 우리 모든 지체들, 우리 공동체를 지켜주옵시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띠로 하나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일하심을 고대합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정결한 자로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에 감사하여 나아온 지체들 축복항 주시며, 그들의 필요들을 주님께서 채워주시며, 무엇보다도 삶의 치열한 현장 가운데서 주님을 향한 믿음의 시선을 잃지 않도록 견고히 붙잡아 주옵소서. 이제 말씀을 함께 듣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시며, 주의 음성을 우리 모두 듣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비전에 대한 이야기
최근에 여러분들에게 22년 송구영신 예배때 작성한 23년도 기도제목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다시 새삼 놀란 것은 우리 중 다수에게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겁니다.
때때로 여러분들을 바라볼 때, 아직은 자신에 대한 어려움들 걱정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당시의 기도제목을 예상하면서 공동체보다는 개인적인 기도제목이 많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회 내 부흥을 가장 많이 언급한 연령대는 청년부였습니다. 그 숫자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교회와 청년부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고 마음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 또한 부흥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언젠가는 부교역자가 아니라, 한 교회를 담당하는 목회자로 성장할텐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전히 경험하지 않고서는 교회를 자신감 있게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함께 사역하던 목사님께서도 반드시 부흥을 경험해야한다고 제게 들려주셨어요. 우리가 정의를 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양적인 부흥이 부흥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양적인 부흥은 재미와 즐거움의 요소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재원이 투입되고, 이런 부분에 우리가 집중해나가면 양적인 부흥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부흥은 무엇일까요?
한국에도 부흥을 경험했던 때가 있습니다. 1907년에 평양 대부흥입니다. 이미 100년도 더 넘은 시기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대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죄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서 정결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법으로, 또 제도를 통해서 사회가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특별한 역사로 말미암아 시작된 부흥입니다. 그렇기에 부흥은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되 우리가 컨트롤하고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겁니다.
Vision 2026, 충만(The Fullness), 양적목표 300명
Vision 비전은 우리가 어떻게 나아갈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가운데 옵니다. 단순히 우리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춰주시는 미래에 대한 전망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도 비전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기에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세웠습니다. 어느때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주 선명하고, 또 분명하게 나타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 가운데, 우리를 붙드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실 겁니다.
24년, 우리의 그릇을 준비하는 시기(상반기 60명, 하반기 80명)
25년, 우리의 이웃을 섬기는 시기
26년, 우리의 열방을 품는 시기
이 계획들이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소원함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 시대가 하나님을 잘 알기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가 믿는 복음과 말씀이 생명이 가득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참되게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하심, 곧 부흥을 결단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더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도록 하실 겁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생활을 하든지 믿음으로 한다는 것은 바로 이처럼 공급하시는
2. 왜 에베소서인가.
에베소서 4:13 (NKRV)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는 바울의 3차 선교지였습니다. 이곳에서 두란노 서원도 세워서 사람들을 2-3년간 집중적으로 양육했던 곳입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사역지였고, 그 이후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편지하는 것이 이 에베소서 입니다. 충분한 가르침을 주었던 곳인데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주는 가르침이 이 에베소서입니다. 그의 교회를 향한 마지막 편지이기에, 또한 공동체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한 편지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3년 동안 바라볼 말씀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 상태로보면 훨씬 기초적인 부분들부터 출발해야함이 옳다. 그러나 목표가 어디인지 살피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살피기 위함이다. 지금의 말씀이 우리에게 와닿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자라야할 말씀으로 비전을 비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우리가 자라가도록 이끄시는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것을 넘어서, 또 우리가 지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경험적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가되, 온전한 사람이 되어 주님을 닮아가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처럼 산다고? 하며 덜컥 겁을 내기도 할 겁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과 같은 충만함으로 살아간다는 거죠. 특히나 우리의 내면은 늘 유한하고 고갈되기 쉬운데, 새 힘을 내게 하시고,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것들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언행을 바꾸십니다. 우리의 삶의 습관을 바꾸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내면을 바꿔가십니다. 우리의 내면이 그리스도를 닮고, 또 그에 따라서 외면적인 사랑도 풍성하게 드러나는 겁니다.
3. 무엇이 충만인가.
오늘 본문 말씀으로 넘어가봅시다. 먼저 무엇이 충만함이가. 우리가 이것부터 참되게 정의해야겠습니다. 충만이라는 것은 가득히 채운다는 의미입니다. 충만에는 결핍과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은 먼저 충만함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보기에는 결핍이 있어 보이고 부족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비슷한 시기에, 빌립보서에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어디에 있든지 충만함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충만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삶의 여건의 풍요로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어려운 상황들을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말합니다.
그러한 바울이 이제 자신이 경험한 충만함을 이제는 에베소 교회 또한 경험하기를 간구하는 기도가 오늘 본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충만함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서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우리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나타나는 것이 충만함입니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이 능력이 역사한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에서 살리시는 능력입니다. 또 살리신 다음 하나님의 우편 앉게 하신 능력입니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 내신 능력이 선명하고 분명하게 나타나는 바입니다. 사실 에베소서 앞 부분을 살펴보면,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셨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의 충만함이 바로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부터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교회 또한 충만함입니다. 교회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에 충만함이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생명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도 모두 그리스도로부터 나타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힘써 붙잡아야하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의지하는 가운데 모든 능력이 위로부터 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만드시고, 만물을 채우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들을 보아야합니다.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러한 만물의 충만함은 너비와 길이의 횡적인 것과 높이와 깊이의 수직적인 것을 포괄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갈등이 있기 쉽상이고, 서운함이 생기기 일수입니다. 저 또한 오늘만 해도 이러한 일이 있었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결핍을 느끼는 부분에 있어서 늘 교정되고, 고침이 필요합니다. 이웃 사랑으로 가득히 나타나야합니다. 상하관계 속에서, 친구 관계 속에서, 부부의 관계 속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속에서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를 계속해서 다뤄갑니다. 동시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충만함과 또 동시에 우리 내면에 구멍 난 깊은 수렁과 같은 모든 것들을 채우는 겁니다. 여러분들 안에서 그 무엇을 둘러보아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 없는 것이 충만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샘물은 늘 끊이지 않고 샘솟습니다. 우리의 충만 또한 이와 같습니다. 충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고갈되지 않고, 부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채워지는 겁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의 과부를 만난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그 여인에게는 딱 자신과 자녀가 먹고 죽을 만큼의 떡 한조각, 즉 곡식 가루와 기름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종하여서 엘리야에게 그것을 먼저 건냈더니, 이후에 기름과 곡식 가루가 계속해서 끊임없이 공급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기적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충만하게 하시는 충만함입니다. 늘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그 분을 통해서 공급함이 있는 것, 이것이 충만합니다. 그렇기에 충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4. 무엇이 하나님을 아는 것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이 정말 구체적으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 분 안에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 분을 알고, 그분과 연결된 삶에 충만함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18 (NKRV)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에베소서 1:19 (NKRV)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구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에베소서와 요한복음은 세세히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유사성이 있습니다. 만유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하나님이 나타나며, 또한 성령에 대한 부분도 유사한 관점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은 다름 아닌, 성령님이십니다. 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내밀하게 역사하셔야만 우리는 영적인 눈의 떠집니다.
여러분들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리 스트로벨의 경우 트리뷴 지의 기자로서 철저하게 신앙을 배척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계속해서 기도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에스겔 36:26 (NKRV)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바로 이러한 기도를 계속해서 드렸던 겁니다. 이 기도 또한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의 마음을 바꿔주시기를 간구한 겁니다. 여러분 기도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오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같은 분은 아닙니다. 아니 하물려 알라딘의 요술램프도 사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도구적이고, 물리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참으로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원하시고, 우리에게 자신을 많이, 너무나도 많이 알려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알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충만하게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결단찬양-기도제목1-기도제목2-축도-송영
기도제목:
우리의 결핍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충만하게 하심을 간구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모든 삶의 면면히 돌아보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충만하심 안에서 힘과 능력과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