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5 새벽기도회: 창세기 4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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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46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인생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쎈 존재처럼 보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더 나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이와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저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험난한 이 세상 속에서 저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저희의 어떠함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저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새벽기도회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위로와 소망을 얻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7:1-10 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47:1–10 NKRV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덧 2024년 셋째주가 밝았습니다. 신년부터 우리교회에 큰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방편인 말씀과 기도를 의지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의 마무리 부분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가족들을 만나고 아버지 야곱을 애굽으로 데리고 온 상황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의 가족들이 고센 땅에서 살게 만들고, 야곱은 바로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시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요셉은 앞 본문인 46장 28-34절에서 바로 앞에 가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이날지 예견하고 미리 보여야 할 반응을 가족들에게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앞으로 감으로 오늘 본문이 시작됩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가서 자신의 형제들을 바로에게 보여줌으로 가족들이 도착했다는 것을 보고합니다. 그리고나서 요셉이 예측한대로 바로는 형제들에게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요셉이 준비시킨대로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요셉의 형제들은 자신들을 ‘종’이라고 말하면서 거대한 국가의 왕인 바로를 경외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은 선조부터 대대로 ‘목자’라는 것을 동시에 강조함으로 자신의 가족은 원래 살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져 애굽에 온 것은 그저 이주자로 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은 기근을 피해 잠시 머물기 위해 왔지, 애굽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며, 애굽의 백성이 되지도 않을 것임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애굽의 증심 도시에서 좀 떨어진 ‘고센 땅에’ 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애굽 사람들과 동떨어진 곳에 살기를 원하는 것이죠. 애굽은 농업을 주로하는 사람들이니 목축을 하는 야곱의 가족들은 바로도 마찬가지로 이해하고 요셉의 말처럼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애굽 사람들과 떨어져 살게 허락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에 바로는 긍정적인 대답을 하게 되고 고센 땅의 가장 좋은 곳에 정착하도록 허락합니다. 그리고 능력 있는 자로 하여금 바로의 가축들을 관리하는 일자리까지 제공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왕의 가축들을 관리함으로 법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야곱과 가족들은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을 찾으러 애굽에 왔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지 못하게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과 재회하게 되고 심지어 애굽에서 법적인 보호를 누리게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그저 바로의 호의, 그리고 바로가 베푸는 친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겠다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방 땅인 애굽에서도 신실하게 이행하고 계셨습니다.
바로는 거대한 나라인 이집트를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바로보다 더 크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바로가 요셉의 형제들에게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담겨있는 겁니다. 이를 더 잘 보여주는 모습이 무엇입니까? 바로 7-10절입니다.
7절에서 요셉은 아버지인 야곱을 바로에게로 데려옵니다. 그런데 참으로 독특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보통 같으면 왕인 바로가 야곱을 축복해야 하는데, 7절에서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축복하고 나서 바로가 야곱에게 “너의 나이가 얼마인고?”라고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야곱의 아들들은 바로 앞에서 자신들을 ‘종’이라고 표현했지만, 야곱은 ‘나’라고 표현합니다. 보통 가족의 대표가 바로 왕을 알현하는 것은 예의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신을 ‘나’라고 표현함으로써 바로와 자신이 왕과 신하의 관계가 아닌, 오히려 두 나라의 정상들이 서로 만나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를 축복한 겁니다. 보통 축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혹은 사제가 평민에게 복을 빌어주는 행위입니다. 더구나 바로는 당시 온 세계를 다스리던 가장 강력한 국가의 대왕입니다. 바로보다 더 높은 왕은 이 당시에 없었습니다. 또 바로는 이집트에서 최고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런 바로에 비하면 야곱은 그저 양식이 없어 양식을 구하러 온, 그것도 애굽인들이 가증하다고 여기는 목축업을 하는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자신은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바로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은 애굽의 어떤 신보다 훨씬 크신 분이심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야곱은 당당히 바로를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바로가 야곱의 이런 행위를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 이유도 그가 41장 39절에서 요셉을 통해 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은 지난 자신의 세월을 평가하는 야곱의 말에서도 드러납니다. 나이를 묻는 바로의 질문에 야곱은 자신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9절에서 대답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야곱이 겪은 지난 날들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실로 험악한 세월을 보낸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을 미워하는 형 에서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부모의 품을 떠나 멀리 이방 땅으로 가야 했고, 외삼촌인 라반에게 갔지만 거기서도 라반에게 노동 착취를 당하고 심지어 자신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지게 된 야곱을 미워하는 라반으로부터 위협을 받게 되었고, 라반에게서 떠나 다시 돌아가는 길에 형 에서를 만나게 될 때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었고, 자신의 딸인 디나가 세겜에서 강간 당하고, 사랑하던 아내가 죽고, 또 자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아들이 죽은 것으로 알고 엄청난 슬픔 속에 살아야 했고, 먹을 양식이 없어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러 갔을 때는 베냐민 마저도 잃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한 시간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야곱의 삶은 그야말로 험준한 산맥을 넘는 것과 같은 세월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자신 앞에 있는 애굽의 왕 바로는 어떻습니까? 최강대국의 왕이며 만인지상 무소불위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야곱과 바로의 삶은 정말 극과 극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조되는 모습과는 달리 야곱은 오히려 바로를 축복합니다. 그것도 10절에서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바로보다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을 바로와 너무나 대조적인 삶을 산 야곱을 통해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실현된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요셉을 통해 애굽이 기근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대에서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여전히 신실하게 지키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도 바로 앞에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초라해보이고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사람일지라도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는 통로로 쓰십니다.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 두 사람에서 시작했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200만명이라는 엄청난 민족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속에서는 너무나 작고 세상에 무슨 영향을 줄 수는 있겠냐는 생각이 들지라도 하나님은 야곱의 공동체를 통해 약속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 교회를 통해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바로와 같은 존재인 물질과 권력보다 더 큰 분이신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게 될 때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는 작고 초라해보일지라도 교회를 통해 복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바로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한 것처럼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자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거대해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함으로 영적인 당당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은 너무나 거대해보이고, 교회는 세상에 비해 너무나 초라해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세상에 복을 주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게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저희 삶의 각자의 자리에서 저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고, 자유롭게 기도하신 후에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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