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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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 8:11-20
제목: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8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 말씀에는 기르가스 족속이 빠져 있습니다. 신명기 7장 1절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 일곱 족속이 소유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므로 가나안 땅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가나안 7족속이 본래 가나안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겁입니다. 소유주가 자신의 뜻대로 땅의 소유권을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죠.
자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서 그 땅을 주시겠다는 뜻을 모세에게 알려 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름답고 광대한 땅으로 표현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먼저 가나안 땅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가나안 땅의 특징은 첫째로,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27절에서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온 사람들이 보고하기를,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른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가나안 땅은 물과 다양한 자원이 풍부한 땅이며 농업에도 적합한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자적으로 볼 때 젖과 꿀이 흐른다는 표현은 과장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젖과 꿀이 문자 그대로 넉넉하게 차고 넘쳐서 흘러내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점에서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이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과장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가나안 땅의 특징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시는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건축하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채우지 않은 아름다운 물건으로 가득한 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파지 않은 우물을 통해 물을 손쉽게 얻을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신이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소유하고 이를 통해 배불리 먹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 땅은 수고롭게 새로 개간할 필요가 없는, 이미 경작되어있는 땅입니다. 이를 종합해서 표현하자면, 이미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는, 몸만 들어가서 살면 되는 완벽한 안식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의 특징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선물과도 같은 땅이지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한 이후에도 가나안 땅의 본질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영지 또는 봉토인 셈입니다. 고대 근동의 조약 전통에서도 이와 유사한 인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속주가 반역하면, 종주는 속주에게 준 땅을 빼앗아서 다른 속주에게 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근본적인 소유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신의 봉토를 임의로 처분할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그 땅의 주인인 것처럼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본질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기업으로 땅을 받았어도 사실상 나그네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입니다. 우리말로 나그네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는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고, 머물 곳이 없는 나그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환수하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와 같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물을 언제든지 거둬가실 수 있으니 불안에 떨면서 살아가야 할까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맡겨주신 것을 거둬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땅, 거저 받은 땅,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게 된 땅인 가나안 땅을 소유하고 그 삶을 영위하는 데에는 필수적인 조건이 따릅니다. 가나안 땅이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만, 조건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행복한 인생을 계속해서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는데요.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아무런 공로 없이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서 누리게 된다는 전제입니다. 신명기 8장 12절과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12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13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가나안 땅 정복전쟁이 끝나고 땅을 분배 받으면 이런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집에서 거주하고, 자산이 풍족하며, 돈 걱정 하나 없이 평안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런 꿈같은 삶을 누리게 될 때, 마치 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대요가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유지하느냐, 유지하지 못하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신명기 8장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는 필수 조건은 단 한 가지입니다. 11절 모세가 선포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것, 그리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두 가지를 지켜야 하는 처럼 보입니다만,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 안에 포함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데, 그분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죠. 그러니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신명기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로 살아가는 것, 다시 말해 영적인 망각에 대해서 특별히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신명기 8장 14절 상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이어서 18절 상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19절 말씀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신명기 8장 11절, 14절, 18절, 19절에서 기억의 중요성과 잊어버리지 말라는 명령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하는 말씀입니다. 출애굽 2세대는 단 한번도 풍요를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였습니다. 태어난 곳이 광야였고, 배운 것이라곤 텐트 치고 움직이고, 텐트에서 먹고 자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 꿈이겠습니까?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따뜻한 집에서 걱정 없이 사는 것이 꿈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그런 풍요로운 삶이 기본적으로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밝힘과 동시에 그런 삶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출애굽 2세대 이스라엘 민족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출애굽 2세대는 풍요로운 삶을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는데 그런 삶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뭐 합니까? 그런 방법을 듣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노숙하는 사람에게 집 계약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본문의 상황은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누려보지도 못했는데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도대체 왜 이런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바로 우리의 관점과 성경의 관점의 차이가 나타납니다. 성경은 풍요로움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행복하게 살면 좋기야 하겠죠. 그런 행복한 삶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풍요로움 자체가 불러오는 영적인 위협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분명하지만, 그 좋은 땅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유혹이 공존하는 땅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누릴 풍요로움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 분리된 자기만족의 삶을 살도록 유혹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조금만 살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 하나님을 찾을 필요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풍성한 복이 하나님에 대한 패역함을 유발하는 큰 위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윌킨슨이라는 구약학자는 축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복은 때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민한 신뢰를 둔하게 만들고 우리를 무례하게 만든다.” 이 설명대로, 우리는 축복이 우리의 영적 민감성을 둔감하게 만들고, 하나님께 무례하게 굴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가나안 땅을 풍요로움으로 대체시켜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풍요로움, 먹고 살 만한 환경을 주신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만 합니다. 신명기 8장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열매로 맺어지기까지, 우리의 삶을 하루도 빠짐없이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풍요로움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며,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내 것이 아니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신 언약백성으로서의 순종과 책임을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그네이자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관리하며,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살아가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거저 주시고, 우리의 삶을 주님의 뜻 가운데 인도하시며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이며,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 나라의 언약 백성 다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단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요구할 것도 없고, 은혜로 주신 모든 것에 먼저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으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죄를 짓지 않기를 원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시며, 매일 매일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