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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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세상은 죄악의 문제를 진화의 중요한 측면으로 본다.
인간은 비참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자연 악_해일, 지진, 가뭄, 질병
사회 악_폭력, 강도, 테러, 기아
이런 악은 나무의 잎과 열매에 해당합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가?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처방을 하지 못합니다.
악의 근원인 죄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 하늘에서부터 잘못되었다.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영적인 존재입니다.
골로새서 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욥기 38:6–7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유다서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타락한 천사, 사탄이 무리를 이루어 쫓겨납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뱀을 이용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아담을 무너뜨리면 그의 권세를 빼앗고 온 우주의 주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대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피조물일 따름입니다.

본론

전적 타락

우리는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임을 배웠습니다.
특히 마음을 지켜야 함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정신(지성)과 의지와 감정이 있는 곳입니다.
마음은 정신(지성)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가 가장 헌신하여 사랑의 감정이 생깁니다.
사랑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 느낌과 행동을 나타냅니다.
마음이 가장 원하는 것을 정신(지성)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은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의지는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사랑의 순서가 그 사람을 만듭니다.
경계근무 실패,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살펴봅시다.
사탄이 뱀을 이용해 에덴 동산에 침투합니다.
창세기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남자를 돕는 배필, 여자를 먼저 공격합니다.
가장 신뢰하고 헌신하여 사랑해야 할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축소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시는 분으로 말합니다.
창세기 3:2–3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추가시키고 왜곡합니다.
사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창세기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정면 반박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죽는다고 했는데 결코 죽지 않는다고 거짓말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을 향한 정신(지성)의 신뢰 관계를 무너뜨릴 때 의지가 자신의 자유를 따라 자신을 위한 헌신으로 나타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예배자, 선지자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서의 지위를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었고 하나님의 오른팔 돕는 아내가 있었고 하나님과의 최고의 우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지위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의 자리를 탐함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합니다.
이 말은 죄가 전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고, 인간의 모든 영역(신체, 정신, 감정, 의지)이 부패했습니다.

죄의 등장(원죄)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단순히 과일 서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것이 최초의 죄, 원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자유의 한계를 정하셨지만 한계를 넘는 것, 곧 죄악을 인정하십니다.
이것 하면 안돼! 하지만 아이들이 알면서도 하는 이유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냥 내버려두면 될까요? 아이의 마음이 상처 받으니깐, 자존감에 문제가 생기니깐, 안될까요?
하나님께서 자유의 한계를 정하셨듯이 우리도 한계를 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만드신 분이 아닙니다. 죄악을 허용하신 분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유와 죄악과 사탄을 두려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힘으로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바닥이 드러나게 하십니다.
끝없이 자유를 누리는 죄악은 결국 자신을 파괴합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는 자라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자유롭게 자라난 암세포가 폭증하여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악은 가장 위세를 떨치다가 자신의 가장 무능력함을 드러내고 맙니다.
최초의 죄는 유전이 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전적 타락,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단절로 육체와 영혼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지금 사람의 육체가 죽고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에베소서 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적 무능(의지)

창세기 3:7–8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죄의 줄기
죄는 순식간에 자라는 줄기처럼 관계를 깨트립니다.
하나님과 자신과 다른 사람과 자연과 온 우주와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사람의 전적 타락으로 전적 무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였던 의지가 죄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의지는 죄에 붙들려 선을 행하고자 하나 죄를 향하여 기울어져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뢰하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지음 받았으나 죄로 말미암아 자신을 예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모든 선물들을 예배하는 자로 바뀝니다.
사람의 타락하여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면 의지가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으십니까?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원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 좋은 소식입니다. 이 소식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우리의 정신(이성)의 최고 기관인 양심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욕심의 훼방을 받아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도덕적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선을 악이라고 부르고 악을 선이라고 부릅니다.
영혼의 정욕, 더러운 기억이나 상상력들이 우리를 무질서하고 난폭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좋은 감정들은 두려운 마음에 숨기기 바쁩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무능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 자신만의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리기에 바쁩니다.
학력, 지위, 명예, 명품, 성공이라는 커다란 무화과 나뭇잎으로 철저히 가립니다.
무화과 나뭇잎은 강렬한 태양 빛에 곧 시들고 말라 바스라집니다.

악한 열매

어디에서 잘못되었습니까? 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배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삶에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그분의 권위에 반역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대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법을 자유롭게 어긴 죄는 우리를 전적으로 타락시켰습니다. 무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죄는 모든 관계를 파괴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에 다른 모든 관계들,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피조 세계와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그 결과로 영적, 정서적, 마음적, 의지적, 물질적인 모든 전인이 와해와 붕괴가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무너지니 다스림을 받아야 할 자연 또한 무너지고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가 죄가 다스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에서 사우론이 절대반지의 힘으로 온 세상을 지배했던 것과 같습니다.
죄는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무시무시한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속박입니다. 죄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지배자, 곧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들-가정, 건강, 돈, 성공, 명예, 안정, 정의, 성, 자녀-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바닷물을 먹는 것처럼 목마를 따름입니다.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위하여 살다가 그것에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야근하고, 위협을 느낄 때 불안해하고, 자신의 뜻이 방해 받을 때 분노하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 상실할 때 절망의 늪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가 돈을 예배하며 그것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면 아무리 가져도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몸이나 성적인 환상을 예배하며 그것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면 우리의 몸이 망가지거나 점점 늙어갈 때 수많은 죽음을 미리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권력을 예배하며 그것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면, 외로움과 약함을 느낌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더 많은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 잘하는 것을 예배하며 그것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는다면,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다가 자신이 바보같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가진 지식이 가짜라는 것을 들킬지 몰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은 고통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죄입니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는 우리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죄에 대한 책임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우리의 신분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정하신 벌, 책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여기서 사망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의학적 사망입니다.
흙으로부터 온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형상,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또 하나는 영혼과 육체가 다시 하나되는 부활 때에 영원한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날은 죄인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흙으로 돌아갔던 모든 육체가 영혼과 함께 다시 만나 부활합니다.
그러나 부활한 사람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14–15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결론

오늘은 나쁜 소식을 들려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함입니다.
완전한 복음은 원죄 내용이 있습니다.
창세기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것으로부터 구원을 위한 찾아오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은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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