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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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1–5 NKRV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서론
인사 |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먼저 앞뒤좌우 서로에게 축복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려지고 마음에 새겨지고, 그 말씀 붙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층 더 예수님 닮는 은혜가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 기록배경: 메시지의 당위성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는 주후 60-62년경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 당한 때에 쓴 옥중서신서 중에 하나다. 주일 오전 담임목사님 설교에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우리가 현대에 알고 있는 일반 감옥과 달리 로마시민의 신분으로 가택연금당한 바울의 상황에 특이한 점은 옥중에도 여러 사람들과 수시로 접촉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감시하에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써보낸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만났던 골로새 사람 에바브라 라는 사람이 바울이 선포하던 하나님 나라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게 되면서, 그가 그의 고향에 돌아가 모이기 시작한 공동체였다. 바울이 직접 그 교회에 방문한 적은 없지만, 그 골로새 교회에 대해 많은 소식을 접하면서 지금 그들에게 이방 종교의 위협과 유혹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복음에 반응하여 얻게 된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지키며 바른 제자도를 가지고 온전히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골로새서를 작성하게 된다.
골로새 지역은 철학이 매우 발달했고 동시에 천사숭배사상이나 신비종교 같은 우상 숭배가 많았는데, 그런 것에 빠지지 않도록 강력한 권고의 말씀이 들어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실 골로새서뿐만 아니라 에배소서나 히브리서 같은 많은 서신서들에서도 나타난 주제들인데, 오늘 우리는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신자가 이런 세속적 가르침과 우상숭배에 관한 유혹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와 연합하여 살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핵심 메시지
#1 실현된 종말론:
골로새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이른바 실현된 종말론, 한번 따라해보십시다. 실현된 종말론. 어려운 말같은 별로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인데, 즉 종말에 가서야 가능한 복과 은혜를 이미 현재의 삶에서 누릴 수 있다. 이것을 골로새서는 강조한다.
우리가 부흥회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배우면서. 들었던 내용이다. 교수님을 통해 주신 메시지 중에 "하나님 나라를 지금 현재로 가지고 와야한다"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오늘 본문의 메시지가 그와 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실현된 종말론.
조금 더 자세하게 묘사해보면 하나님은 이미 인류를 구속하심. 이라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료했고,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즉각적으로 그 완료한 구속하심이 그들의 삶과 그들의 존재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강조점은 장차 일어날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이미 어둠의 권세로부터 구원을 받았고(1:13), 이미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으며(1:13)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2:12-3:1)
우리가 이미 이겼다고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다고 고백하곤 하는데 그런 고백이 바로 실현된 종말론으로부터 비롯된 개념이다.
정리하면 이 하나님의 공개적인 승리는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 개념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를 이루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주고, 그 확신으로 우리의 현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시 빨강)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미래의 먼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 우리의 삶속으로 가지고 와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지막의 때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하나님의 승리하심과 믿는 자들을 통치하신다)는 승리의 복음을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가지고 와야 그 사실을 굳게 붙잡아야 비로소 우리는 이 종말의 때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종말의 때를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통치하심, 즉 하나님 나라 복음이 우리에게 현재에서 실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쳐야한다.
하나님은 이미 승리하셨다. 우리도 주와 함께 승리한 백성이다. 승리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먼 미래 나중에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믿음으로 고백한 그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 복음이 우리에게 현재에서 실제가 되게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미 승리한 현재의 하나님 나라를 지금 이 땅에서 충만하게 누리고, 또 우리가 이 종말의 때를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까?
#영적성장의 과정이 필요하다.(같이 따라해봅시다.)
아까 서두에 골로새 지역의 특징 중 하나가 철학이 매우 발달한 지역이라고 했지요. 그런 수준과 견주어 뒤쳐지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한다는 것이 바울이 옥중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예화(영적 성장의 필요성)
에이 목사님 어느 정도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건 동의하지만, 높은 수준의 영적 성장을 이루어야한다는 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긴 좀 힘든 메시지가 아닐까요? 이것이 지적 수준도 사람마다 다 다르고, 사는 삶의 모습도 다다른데요.
예! 맞습니다. 어느 정도 일리있는 말이긴 한데요. 꼭 맞는 말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사람의 수준에 따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빚어가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는 자라기를 멈추지 않고, 정말 열심히 영적 성장의 길을 걸어가야하는 것이다. 때론 마라톤 주자가 달리다가 페이스를 조절하며 잠시 물 한 모금 마시는 것과 같은 때처럼 천천히 달려야할 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결단을 요구하시며, 삶의 큰 믿음의 발걸음을 요구하실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든 빠르게든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옥중서신서들에는 이와 동일한 메시지가 강력하게 선포된다.
아마 많은 설교자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들어왔던 이야기일것인데, 영적 성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사실 다시 말할 것도 없다. 아이가 젖을 먹으며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 우리가 영적 성장을 멈춘다는 것은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육신은 어느 기점을 넘어서면 성장하기를 멈추고 점점 쇠락하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영적 성장은 그런 제약조건이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아니 영원토록 자라고 또 자라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는데, 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가 자라기를 멈춘다? 그래서 마치 육신의 쇠락 하는 것처럼 점점 힘을 잃고 생기를 잃어버리고, 날선 검과 같은 예리함과 분별력을 점차 잃어간다?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스스로 보기에 영적 성장을 멈추고 그렇게 쇠락의 길을 걷고있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형제들로 하여금 그런 질타를 받고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회개하며 돌이켜야한다. 지금 나는 악한 세력의 유혹에 혼란으로 죄와 결탁했던 그 때로 믿음이 없던 그때로 회기하려는 상태일지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다시 말해 은혜를 원수로 갚는 파렴치한 일이다.
우리 방어진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이런 영적 성장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날마다 자라기를 멈추지 않으며, 승리하신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 또 거듭난 주의 백성으로 영원토록 살아가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한다.
자 그렇다면 이제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데,
대지1 이런 영적 성장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다른 말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 복음이 우리 현재에서 실제가 되게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제일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1. 영적 성장은 하나님으로 부터온다.(2:19)
우리가 3장 말씀을 읽었는데 그 앞에장. 2:19절 하반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다.
19......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빨간 글씨로 표시했는데,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영적 성장은 내가 스스로 자라려고 자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랄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자랄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적 성장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 시작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면, 우리는 연약하여 교묘한 속임수에 곧바로 넘어져, 교만이라는 죄악 속에서 금욕주의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없는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하등 유익을 줄 수 없는 것으로 변질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슬로건을 가진 그리고 대의를 가진 일이라할 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은혜라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영적 성장의 방향을 살펴보지 못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아닌 형재의 생명을 해하거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깨뜨리어 도리어 하나님의 통치하심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온전한 영적 성장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어떻게해야하는가?
2.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붙어 있기만 하면 온전하게 성숙하게 될 수 있다.
몸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를 통해 영적 성장,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이런 성장을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부인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가 사심이다.
오늘 본문 말씀이다. 즉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여 하나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하심 아래 있는 신자라면, 반드시 도달해야하는, 아니 반드시 도달하게 되는 것이 바로 나는 죽고 주가 사는 삶의 모습이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며 땅의 것을 버리는 삶.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 곧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나님의 통치하심만을 따르는 그런 삶. 그런 삶이 우리에게 복된 삶, 현재의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실현되어진 삶의 모습이다.
그런 삶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맺어진 교회 공동체 속에서 예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서로의 모난 부분을 깎는 연단의 과정을 지나며 점점 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며 자리 잡아간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대지2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 우리의 죄인되었던 과거는 죽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와 같이 살아났으니. 하나님의 아들이요 상속자되신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나라 상속자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위엄을 갖추라.
오늘 날 우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앉은 하나님 나라 상속자들입니다.
골3:1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이 말씀은 부활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단 부활하려면 죽어야한다. 그래서 이 말씀은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다시 살리심을 입는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자리가 세례이다.
하지만 여러분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우리가 육신적으로 죽지는 않는다. 여전히 살아 있지만 세례는 우리의 예전의 삶이 죽었음을 선언하는 의식이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됨으로 예전의 신념들과 생활에 붙잡혀 살지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새로운 삶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새로운 삶으로 들어갔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믿었으면 지금 우리는 다시 살았다.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말씀이 그렇게 선포하고 있다. 과거형/완료형으로. 이미 우리가 하나님 나라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했다면 우리는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선포한다.
마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고 선포하면 이미 이루어진 확정적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나라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였다면 우리는 즉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죽고 다시 살아났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믿음은 우리에게 죽음을 확정하며, 부활을 언약한다. 이 사실은 누가 때려잡아도 변하지 않는 확정적 결말이다. 때문에 이미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무방한 것이다. 우리는 죄의 수렁에서 구조되었다. 할렐루야! 씨름은 계속 되지만 새 삶은 이미 시작되었다.
재난의 현장에서 구조 받은 자들이 목숨은 건졌어도 새로운 삶을 살기는 여전히 힘든 것처럼 우리도 여전히 죄와 씨름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확보된 소망. 하나님나라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예수와 연합하였기 때문에 우리 또한 부활이라는 확보된 소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확정된 소망 때문에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던 아니 확정되어 파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죄의 종이었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특히 1절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안식을 취하시는 예수님을 선포하는데, 우리의 모든 죄는 반복되어 다시 용서받고, 또 다시 용서받아가 면서 간신히 간신히 구원의 길까지 도달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이미 우리의 죄에 대한 항소는 모두 말소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과 같이 우리도 주와 연합하여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될 것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한다. 하나님께 용납받으려고 계속 제사를 드리고 불안감속에 언제 버려질지 몰라 하며 늘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베푸시고 확정된 부활의 소망을 주신후에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늘의 상속자로서 마땅한 모습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아야하고, 위의 것에 마음을 두어야한다.
쉽게 말해 세속적인 일들과 세상의 것들, 당시 철학과 천사 숭배사상,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들, 영지주의, 금욕주의, 율법주의 등등. 그런 것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직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음을 하나님 앞에 지금 내가 서있음을 생각하며 오직 하늘의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 몰입하여 헌신적으로 위의 것을 뒤쫓으라 명령하신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현재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이땅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따라 현재의 하나님나라를 누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의 것에 초점을 맞추어 몰입하고, 그것만을 생각하며 하늘의 것을 애정을 가지고 늘 묵상할 때에, 십자가 복음과 부활의 약속이 감격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절절히 파고든다. 하나님의 헌신과 은혜를 생각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울컥 감당할 수 없는 감사로 차고 넘친다.
마치 재난 현장에서 구출된 사람이 그 재난의 현장에서 어떻게 벗어 날수있었는지, 담담히 그 일을 이야기하다 결정적인 구출의 순간을 이야기할 때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말을 잊기 힘든 것 같은 그런 감격이 / 지옥에서 구조되어 천국에서 살게 된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마음에 절절히 파고들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한다.
이러한 간절한 바람이 바울에게 가득했다. 그래서 골로새교인들에게 다시 말하기를
“이 사실을 명심하라.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너희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졌으니 그가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역설한다.
2
이렇게 이 세상의 고달픈 삶보다 더 멋찌고 위대한 천국의 삶을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이제 영적 성장의 과정의 첫 발을 내딛을 준비가 된다.
그 영적 성장의 시작과 과정, 또 도달해야 할 곳은 바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는 일이다. 5절 말씀에 보면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죄를 절제하고, 참고 이겨내고 이런 정도가 아니라. 죽이라! 강력하게 선포한다. 죄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하여 우리는 죄가 우리를 다루는 것과 똑같이 대해야하는 것이다. 악의 세력은 우리를 절대로 봐주는 일이 없다. 살살하거나 우리가 극복해내도록 어떤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단계를 거치며 점점 유혹이 심해지는 것같은 것은 그것이 우리를 미혹하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단칼에 인정사정없이 죽여야한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이 땅에서 승리자로 참된 안식과 평안속에서 현재의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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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적있나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서 모험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데, 3미터 되는 거리를 뛰어 건너려다가 실패하면서 좁은 협곡에 끼어 있던 바위를 건들게 되고, 그 바위와 함께 떨어지면서 350키로나 되는 바위와 협곡사이에 오른 손이 끼고 만다.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벗어 날 수 없었고, 6일이 지나도 구조받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문뜩 이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음을 깨닫는데 바로 바위에 끼어 이미 부패해버린 오른 손목을 잘라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탈출에 성공한다.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실제 사고의 주인공인 랠스톤이라는 사람은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손을 절단한 일은 내 생에 가장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바위틈새 무덤에서 엿새동안 죽어 있다가 비로소 생명을 되찾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이런 것처럼 죄를 대해야한다. 만약 나를 세속적인 것에 묶어 놓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가차없이 끊어낼정도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명을 끔찍이 사랑해야한다. 그런 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비록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지라도 비슷한 죄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도 끼칠수 없도록 해야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죽여야한다.
이것이 바울이 골로새교인들에게 그리고 성경이 오늘 날 우리에게 강력하게 선포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막는 것을 처단하라!!
물론 삶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나쁜 습관들과 행동 양식들, 그리고 죄들을 끊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사도 바울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단호하게 처단하고 끊어내라고 강력하게 선포한 것은 우리의 처절한 싸움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청교도 신학자인 존 오웬은 ‘내 안의 죄 죽이기’라는 유명한 책을 집필했는데 거기서 그는 성도들이 더 이상 죄의 유혹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질때는 보통 두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제 막 죄의 유혹에 무너져버린 순간과 삶의 큰 위기가 닥쳐왔을 때라 말한다.
1) 죄의 유혹에 무너져버린 순간에는 이미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죄책감에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며 싸우기를 멈춰버리고, 버림 받은 또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로 자기를 비하시키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때에 우리는 더욱 처절하게 싸움터로 나아가야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지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영단번에 해결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믿는 자들의 신원하심은 우리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지금 실패하여 세속적인 것에 다시 마음이 빼앗기도록 죄의 유혹에 넘어졌더라도 재빨리 일어서서 손을 털고 회개의 자리로 나와 그 나쁜 습관과 행동양식, 그리고 죄와 싸우기를 멈추지 말아야한다.
하나님은 이미 승리하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으며 하나님의 그 약속에 따라 상속자라는 지위를 주신 것에 대한 확신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된다.
2) 반대로 위기를 만났을 때에는 각성해서 죄를 단념할 의지가 충만해진다. 하지만 이것은 특수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잠깐동안 가능한 것이지 일상이 회복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때문에 오히려 위기를 만나 각성하여 죄를 단념할 의지가 충만해졌다면 더욱더 쳐서 복종하며 굳은 의지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죄의 발판이 되는 것들을 성령이 주시는 무기로 계속해서 싸워 나가며, 더욱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기를 멈추지 말고 오히려 더욱 힘을 내어 달려나아가야한다.
그 죄의 발판이 되는 것들에 대해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먼저 성적인 죄를 죽이라 한다. 음란, 음담패설이나 농담, 오락 같은 것들은 악의적인 것이 없다는 핑계로 허용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하여 철저히 싸워야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발판이 되어 정욕을 심고 그것이 실제적인 욕구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또한 사욕, 자기의 이익만을 채우려는 욕망은 탐심으로 이어지며, 그 탐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을 갖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우상숭배와 같다. 하나님보다 그 욕구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비록 하나님의 궁극적인 진노에서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은혜는 여전하시지만,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파괴하는 죄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항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은 버려야한다.
사실 죄가 우리에게 끼치는 나쁜 영향력보다,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3:12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 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며 머리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져야할 교회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서로 이용하려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긍휼과 자비로 섬기거나 복음을 증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안일한 마음으로 내버려둔 죄악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몸된 공동체로서 서로 함께 도와가며 용납하고 사랑을 더하며 함께 죄악으로부터 벗어나 함께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빚어져 가기를 힘써야하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우리가 죄와 싸워야한다면 어떤 무기로 싸워야하는 것인가?
우리의 진정한 힘은 우리가 싸워야한 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고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우리의 필요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요청하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에게는 죄와 싸워 이길 힘과 능력이 생긴다. 사탄은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어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고 좌절하기를 바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활 승리하신 그 자리로 부름받았고 우리의 승리를 확정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이미 승리한 사람들이며 주와 연합하여 부활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현재의 하나님 나라, 통치하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적 성장을 이루며 죄와 싸워 이길 능력을 소유한 것이다. 이 땅에서 현재의 하나님 나라 통치하심을 충만하게 누리며 살아갈 능력이 된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약 |‌영화 중 감동적인 어떤 전쟁 영웅이나 스포츠 영웅의 이야기들을 보면 적들에 의해 간신히 버티고 서있거나 자기 페이스를 잃고 핀치에 몰렸을 때, 주변 돕는 사람의 말한마디에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내고, 각성해 그 역경을 극복해낸다. 그런 순간 시청자들은 짜릿함을 느끼고 마음이 크게 고취되어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한낱 이야기에 불과한 것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고취되고 없던 의지도 불타오르는데, 오늘 우리에게 성경은 실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며 싸우라 명령하신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해서 세상을 통치하시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하나 된 사람이고, 그분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죽이는 싸움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날마다 죽는다. 이 싸움은 우리의 모든 힘과 믿음과 헌신을 다 바쳐야 하는 싸움이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확실히 기억해야만 싸움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야한다. 치열한 싸움이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그럴 힘을 주신다. 우리가 연약하고 죄에대하여 취약하다는 사실을 아심에도 우리에게 승리를 마음에 새겨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하여 싸움을 멈추지 않고, 그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경험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승리케 하심을 굳게 붙잡아 영적 전쟁에 늘 승리하며 끝까지 이 믿음의 여정을 완주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한다.
핀치에 몰리듯 우리네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수록 오늘 말씀은 우리를 더욱 영적 성장의 길로 이끌 것이다. 내안에 죄와 치열한 싸움이 격렬할수록 오늘 선포되는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우리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주의 나라가 임할 때 라는 찬양인데요.
하나님 나라 복음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가 승리자로 이땅 가운데서 살아갈 때에, 죄의 유혹에 무너지지 않고 굳센 믿음 가지고 끝까지 영적 전투에 임하도록 반드시 다시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동시에 이 땅에서 누릴 현재의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찬양하며 함께 마음을 모아 고백하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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