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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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으면 믿으라, 믿었으며 바라라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 임기종(66)씨의 이야기를 우연히 티비에서 보았습니다.
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4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임기종씨는 16살부터 지게꾼의 삶을 시작하여 평생을 설악산의 지게꾼으로 살아왔습니다.
수입이 가장 많을 때가 약 100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이마저도 코로나로 설악산 내부의 휴게소가 사라지면서 일거리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아이들과 독거노인을 위해 선행을 베풀며 살았습니다.
복지시설 및 어려운 이웃에게 반찬과 쌀을 갖다 주면서
소외된 아이들과 어르신을 챙겼습니다.
지금껏 기부한 금액만1억 원에 달합니다.
임기종 님은 어려운 형편에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 기부 천사이자 설악산의 마지막 지게꾼입니다.
그의 아내는 지적 2급 장애자입니다.
남편이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자 아직 밥을 안 먹었다고 배고프다고 빨리 밥 달라고 어리광을 부립니다.
남편은 싫은 내색은커녕 당연한 듯이 밥상을 차려서 함께 밥을 먹습니다.
다음 날 어제 지게를 져서 번 돈으로 아내와 함께 장에 나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닭 강정을 사고 아내가 춥다고 아내가 좋아하는 빨강색 내복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옵니다.
어느 늦은 밤에 아내의 머리를 염색해 줍니다.
담당 피디가 어디 좋은 데 갈 데가 있냐고 묻자 두 달 만에 아들을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 아들은 나이가 40세이지만 엄마보다 더 심한 지적 장애자로 태어나서 말도 못하고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항상 옆에서 보살펴야 합니다.
아버지는 일을 해야만 하고 어머니를 자신을 돌보기에도 벅찹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보호 시설에서 지내게 한 것입니다.
그래도 두 달 만에 보는 아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어머니의 얼굴은 아들을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는 정말로 불행한 가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얼굴에도 그의 아내의 얼굴에서도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성공의 기준, 행복의 기준, 기쁨의 기준을 세속적인 잣대로만 삼아 평가하며 살던 제게 너무나 커다란 삶의 교훈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패러림픽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올림픽은 다들 아시겠지요?
패러림픽이란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하는 장애인 올림픽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애 정도에 따라 비슷한 선수들끼리 경기를 하게 하지요.
청각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따로 올림픽을 한다고 합니다.
하계 패러림픽 때에는 시각장애자들의 축구, 좌식 배구, 휠체어 농구, 휠체어 테니스 등 정말로 경기를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저절로 나오며 그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꼈습니다.
왼쪽 다리 하나만 정상이고 나머지 팔 다리는 없거나 기형인 덴마크 탁구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그냥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계 패러림픽에서 외발로 스키를 타고 앞의 가이드를 따라 가파른 경사를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시각 장애 선수, 좁은 썰매를 타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썰매를 지치는 아이스 하키 선수들을 보며 좀 더 열심히 살지 않는 제가 부끄러웠지요.
정말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대로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것,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마음대로 먹고 소화할 수 있는 것, 보고 듣고 말하는 것도 말이지요.
제 아내도 어릴 적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에 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되는 보조기를 평생 끼고 삽니다.
이제 아내는 어느덧 60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는데 다리가 얼마나 버겁고 무거울지 옆에서 보기 안쓰럽지요.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하여 파괴되고 분열된 인간과 세상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키시고 재통일시키시려는 계획을 세우셨고 성도들에게는 그 비밀을 알게 하셨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10절에서 분명히 확인하였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통일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경륜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을 택하시고 구속하시어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삼으신 것입니다.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재통일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 실행에 옮겨지는 증거가 저와 여러분들 안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성경 속의 작은 성경이라고 일컬어집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들이 이 에베소서를 묵상하시므로 진정한 복음의 진리를 흔들림 없이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길흉화복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일어나는 것임을 인정하고 믿고 따르기를 작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금 내게 주어지는 상황과 환경이 좋고 나쁨에 교만해지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대로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면 그보다 더한 그리스도인의 영광되고 복된 삶이 어디 있는지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자신을 말하며 자기의 혈통을 자랑하며 완고하고 편협한 유대의 민족주의자였던 바울이 로마서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도 자랑스럽게 밝히지요.
물론 바울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지극히 세상적인 삶을 살면서 쾌락적이고 퇴폐적인 것을 좇아 살던 제가 이렇듯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산다는 것이 이전에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터라 저에게는 이방의 사도라 자신을 칭하며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바울의 고백이 너무도 와 닿습니다.
정말로 예수쟁이를 극도로 싫어하며 조롱하였던 저였답니다.
믿어도 곱게 믿으라면 조소를 보내던 저였지요.
이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보면 부러운 시선을 가진 자로 변하였지요.
저의 대학 선배님 중에 캐나다 밴쿠버에 사시는 분이 있지요.
제가 2002년에 처음 예수 전도단의 제자훈련을 밴쿠버 인근 시골의 어느 한 도시에서 시작하였을 때 그 시골까지 과일과 과자를 사가지고 오셔서 격려해 주던 형이었습니다. 16년이 흐른 때에 다시 만났을 때에 제가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고 하니 마치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며 격려해 주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지요.
환하게 웃어주던 그 형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지요.
그리고 지금도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인데 목회자라고 저에게 반 존대말을 하여 줍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속에 사도 바울이 거듭난 것처럼 보 잘 것 없는 저란 존재도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가 되어 이제는 살아갑니다.
우리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지요.
기독교를 떠나서는 어떤 연합도 조화도 일어날 소망이 없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오셔서 복음을 진리로 알게 하시고,복음을 믿게 하시고,감격하게 하시는 일을 하시지요.
만일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많은 비방을 받으면서도 얼마나 많은 전도자들이 전철 역사며,전철 안이며,길이며,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복음을 증거합니까?
그러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 복음이 진리임을 깨닫는지요?
결코 아니지요.
진리로 알고,깨닫고,믿는 사람보다는 조롱하고,비방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지요.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도 전 그 방법은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큽니다.
이것만 보아도 복음의 진리를 알고 깨닫고 믿는 것이 결코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된 사실이지요.
우리 역시 처음부터 복음을 듣자마자 믿었는지요? 어떻습니까?
정말 복음을 듣자마자 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인이고,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짐으로 감격스럽고 황홀하던가요?
아닙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고,복음의 진 수를 들어도 썩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출발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순간 복음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신이 얼마나 구제 불능의 인간인가 하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자신은 전혀 소망이 없는 존재이고,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게 느껴집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콧물을 쏟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사회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지은 어떤 죄인보다도 자신이 더 큰 죄인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짐으로써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이제는 오직 주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저 절로 결심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요, 소유자들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의 기업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또한 ‘구속’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구속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요? 단순히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성경에서 영광스런 부활체를 입는 것까지 말합니다 (롬8:23; 고전1:30).
즉 기업이란 바로 이러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를 가리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업을 약속의 성령께서 모든 백성이 인치심을 받고 그 기업마저 우리가 모두 구속함을 받을 때까지 보증하시어서 끝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신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진리의 말씀인지요?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그분이 나의 인생을 책임지신다는 것이 믿어지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전 늘 강조하지요.
우리가 가진 선입견 때문에 우리가 전적으로 성경에 몸과 마음을 복종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나도 모르게 개념화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어 오신 성육신을 거부하지요. 예수님의 대속을 이해할 수 없지요.
어떻게 대신 죄값을 치르겠냐고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는 이유가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서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철학적으로 따지고 들지요.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비웃지요.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삶의 관점이 나로부터 하나님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거져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는 받은 것 그 어떤 것도 자신의 공을 돌려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신에게 돌릴 영광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노아홍수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지요.
족장시대를 지나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절박한 상황도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가나안을 인도하십니다.
거기서 그들은 부단히 죄를 짓고 타락하고 방황합니다.
선지자를 보내 그들을 이끄시지만 결국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들이 되지요.
그러나 다시 남은 자들을 가나안을 다시 데려가시지요.
드디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하시고 그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려 오셨지요.
그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 죄를 위한 속죄가 이루어졌고 그는 부활하시어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이제 그 이후의 계획이 저와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세상 사람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삶을 영위하는 것은 우리 안에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을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하심의 열매입니다.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에 따른 하나님의 경륜의 열매입니다.
구약의 유대인들과 신약의 바리새인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며 살았지요.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하였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들의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살았습니다.
자신들의 소유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예배하였고 하나님을 위해 살았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굿 뉴스’, ‘가스펠’이란 좋은 소식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즐겁게 하라고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하여 듣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결과 그 효력을 발하는 구원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획을 추진해 나가시는 것임을 깨닫고 살아가는데 있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의 진리를 적용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제가 반복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구원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전해지고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을 제시되었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말하지요.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을 인치심을 받았노라.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기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의지를 억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를 설득하십니다.
진리가 아름답게 보이게 하십니다.
언젠가 제 아내가 출근하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참 이제는 내 다리가 너무 무겁지만 한편으론 이 다리가 나를 이렇게 지탱하여 주니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감사하며 오늘도 내가 살아간다고 말이지요.
전 옆에서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자신이 가진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중심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두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죄가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해결되었음을 믿기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소망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그의 중심을 세우시기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의 삶에도 다른 모든 세상사람들과 동일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전쟁도 전염병도 유혹과 죄도 도사리고 있지요.
그는 여전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자기와 함께 계시는 분이 결코 자기를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면 삽니다.
언젠가 육신의 삶이 다해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자기와 함께 하셨던 분께서 나의 죽음도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주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나오신 날을 기억합니다.
사랑으로서 죄악에 물든 우리를 구원하시려 오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큰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경배 드립니다.
이 시간 우리의 죄를 모두 주님 앞에 내려 놓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혼돈됨에 빠져 나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나의 잘못된 모습을 주님의 보혈로서 씻어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죄에 물든 우리를 정결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나라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기를 즐겨 하며
삶 속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사랑에서 끊을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속 사람이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중심이 그리스도 안에 언제나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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