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1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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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택된 자녀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시간을 주님께 내어놓고 예배의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 가운데 크신 은혜로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나눌 말씀은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계속 여러분들께 말씀드리지만, 신명기는 어떤 말씀이라고 했었죠? 하나님께서 거듭하여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었죠.
그래서 지난주까지 정탐꾼 사건, 십계명 이야기까지 이미 출애굽기나 민수기에서 경험했던 사건들을 다시금 바라보면서 주님의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일까요? 오늘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당부하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중에서도 출애굽 이세대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제 그 땅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모두 새로운 세대들이라는 거에요.
광야에서 태어났거나 출애굽 때 완전 어린아이였던 이들이 바로 그들 세대입니다. 그리고 또 그들을 이끌 리더 역시도 오래도록 이스라엘을 이끌 모세가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자신의 죄로 인해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그들에게는 여러가지 약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단 지도자의 역량도 물음표인 상황이었고, 백성들 역시도 이전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율법과 말씀들에 대해 무지해져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신명기 전체를 통해 율법 말씀을 전해주시고, 또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출애굽 다음세대들에게 당부의 이야기와 힘을 전해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가장 처음부터 어떤 내용들이 들어있죠?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이세대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겠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계속 함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어서 뭐라고 해요? 네가 가서 ‘차지할 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격할 땅, 차지할 수도 있는 땅이 아니라 아주 단호하게 차지하게 될 땅이라고 말하고 있는거에요. 다시 말하자면 뭐에요? 이미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죠. 왜냐?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더욱 놀라운 말씀이 전개됩니다. 뭐라고 하죠? 네 앞에서 여러 민족들을 쫓아내실 것인데, 그 민족들이 어떤 민족들이에요?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인데, 심지어 그들은 어떻다고 해요?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신다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사실 오늘 말씀은 가장 첫구절부터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 따져보자구요.
이스라엘 백성들. 어떤 상태죠? 4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방황하고 떠돌다가 가나안 앞에 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까지 오면서 그 과정을 다 이겨내고 견뎌왔던 오랜 백성들은 다 죽고, 이전 애굽의 일들을 다 모르는 젊은 이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기까지 멱살잡고 끌고왔던 리더인 모세 또한 없어요. 그러면 어떤 상황인거에요? 어떤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물음표로 가득찬 상황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이 목표하는 가나안 땅에 있는 족속들은 어떻나요? 일단 총 일곱개의 족속들이고, 그 족속들 하나하나가 다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는 많고 힘이 세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자구요. 이 전쟁의 승패 어디쪽으로 기울어있다고 예상할 수 있겠어요? 당연히 가나안이라고 생각하겠죠.
아마도 가나안에 발을 들여서 싸우기라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선전했다고 할 수 있겠죠.
이제 아시안컵이 곧 있게 되는데, 축구로 비유를 해보자면, 이런 거에요.
원래 좀 약체팀인데, 그 팀에서 오랫동안 주축을 맡았던 배테랑들이 은퇴를 한거에요.
게다가 베테랑들이 은퇴하면서 오랫동안 팀을 만들어온 감독도 함께 그만둔 상황인 것이죠. 이제 팀에는 루키들과 1~2년차 유망주들만이 남아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런 팀이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어요? 아니죠 보통 리빌딩을 한다고만 생각할거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신거에요? 너희가 앞으로 붙을 수많은 강팀들, 다 이기고 우승을 할거야! 라고 말씀을 하신다는거에요.
상식적으로는 절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어떨까요? 반드시 가능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아까 축구팀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게임처럼, 그 유망주 선수들 하나하나에 캐시 아이템으로 엄청난 버프가 일어나서 모든 강팀들을 무너뜨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죠.
이것은 성경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들이 올 한해 2024년을 살아갈텐데, 아마 여러분들도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을 수 있어요. 나는 아직 부족한데, 내 앞에 강한 일곱 족속들이 버티고 서있고, 나는 그들을 뚫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러분, 그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절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기 때문이죠. 뭐라고 하시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여러분들에게 그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지금까지 함께하셨고,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1년 가운데도 항상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단 이기는 건 기정사실인데, 이기고 나서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어떤 것을 당부하시나요? 2절 하반절부터 보시면,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뒤이어서 3절을 보면 뭐라고도 하시죠? 혼인도 하지 말고 딸을 주지도 말고 딸을 받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조금 멈칫하게 될 것 같아요. 왜 그렇죠?
아니 분명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인데, 그 하나님께서 왜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고 하시냐는 거에요.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 같은 것들,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냐는 거죠.
그리고 분명히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웃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 뿐만 아니라 언약도 하지 말고, 결혼 관계도 맺지 말라고 하시기까지 하죠.
사실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결국 뭐에요? 아무런 관계도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좀 이상해요.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이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4절부터 보시죠.
4절은 뭐라고 하고 있죠?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해서 다른 신을 섬기게 한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멸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렇기 때문에 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모든 제단과 우상들을 찍고 불사르라고 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소 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방 민족들은 사람으로도 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죄악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시 가나안의 일곱족속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했고, 오히려 잘못된 우상들을 섬기며 살았죠.
대표적으로 바알과 아세라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 신들은 풍요와 다산의 신들이었고, 그들은 이 신들을 섬겨야지만 자신들에게 풍요와 다산의 복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살려주고,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우상숭배 사상이 흘러들어오게 되겠죠. 그리고 결국 말씀에 등장한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바로 사사기 성경을 보면 아주 잘 나타나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 리더 여호수아와 함께 말씀을 따라 일곱 족속들을 무찌르고 가나안을 정벌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모든 민족을 멸망시키지 않고 남겨두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방의 문화들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방 민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농사의 방법들을 배우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상숭배의 문화들이 그들에게 전파된 것이죠.
결국 사사기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을 섬겨 다른 이방 민족의 지배를 받는 벌을 받고, 다시 회개하여 풀려났다가 다시 죄를 짓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이방민족에 대해서 진멸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죠. 사람이 밉고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 가운데 깊이 자리잡은 죄악이라는 것을 깊이 미워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죄 앞에서는 아주 단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삶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험들이 있을거에요. 내가 행하는 것이 죄인지를 알면서도 상황 때문에, 문화라고 치부하며 허용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런 거에요. 술 마시면 안되는데, 선배들이 마시라고 하니까, 어른들이 마시라고 하니까, 어쩔수 없잖아? 라고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면서, 열어주는 것이죠.
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것도 될 수 있겠죠. 요새도 계속 논의가 되는 동성애 문제.
그들이 소수자로서 세상에서 안타깝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불쌍하다고 해서 동성애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열어주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죄라고 명하신 것들이 불편해지고, 결국 말씀에서 벗어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가게 되겠죠.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죄 그 자체입니다. 그 죄에 빠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물론 우리가 보았을 때에는 그들의 죄가 크게 보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죠. 우리 모두 죄인이고, 그들도 똑같이 죄인인거에요.
그러니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오로지 우리 앞에 존재하는 죄라는 것을 미워해야 한다는 것이죠. 죄 앞에 단호하게 행해야 하지, 허용하고 풀어주고 한다면, 그 죄라는 것은 무섭게 우리 속을 파고들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계속적으로 멀어지게 하고 말거에요.
근데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어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너무 피곤하다. 교회다니는 것 때문에 술도 못먹고, 남들 쉴때 교회가야 하고, 헌금도 내야하고 너무 불편한 것 아닌가.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바로 6절에 등장하는데요, 한번 읽어볼까요?
신명기 7:6 NKRV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라는거에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 우리가 한번 봅시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복도 받았지만, 많은 고난도 받게 됩니다.
당장 출애굽만 하더라도 어때요? 물론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지만, 밥을 굶고 그러지는 않았단 말이에요. 그냥 피라미드 짓고 하느라 몸이 힘들었을 뿐이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해서 애굽으로부터 나와서 어땠어요? 낮에 덥고 밤에 추운 광야 사막에서 40년을 방황하고 살아갔단 말이에요.
그런데다가 가나안 땅 준다고 해서 따라왔는데, 이미 거기에 사람이 있어요. 당장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니 도대체 우리한테 왜이러시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사실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보면 그렇게 반발했던 백성들도 엄청나게 많았죠.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거에요. 하나님 믿고 신앙을 가지면서 살면 뭔가 좋은 일들이 생겨야할 것 같은데, 오히려 삶에 제약도 많이 생기고, 시간도 뺐기고, 마음 속에 불편함만 가득하고.
내가 여깄는게 하나님이 택하신 거라면, 왜 나를 굳이 택하셨느냐는 거에요. 괜히 힘들게 살아가기만 하고. 그렇죠?
자 그럼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를 택하셨을까요?
바로 7절과 8절에 나옵니다. 우리 그 말씀들도 함께 읽어봅시다.
신명기 7:7–8 NKRV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그의 사랑이 있다라는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뭔가 잘하고 재능이 있고, 쓸만해서 택하신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민족 중 가장 작은 이들을 택하셨죠. 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장 우리의 모습을 봅시다. 물론 여러분들 각자의 삶에서 이룬 것들도 많고, 큰 꿈을 꾸고 있을거에요.
근데 당장 여러분들의 모습 어때요? 자랑할 만 한가요? 아마 그렇지는 못할거에요.
당장 저만해도 그래요. 제가 올해 나이가 31인데요, 제가 여러분 나이 때만 하더라도 이 나이가 되면 뭐가 많이 갖춰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대학 다니고 군대 갔다오고 막 하다보니까 어영부영 이 나이가 되었는데, 생각만큼 한게 없더라구요.
당장 세상 속에서 앞에 나가 자랑할 만한 것들이 없다는거에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 전하고 있는 것도 말이 안될수도 있어요.
근데 제가 어떻게 이걸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여러분들 앞에 세우셨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끄시니까.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어요. 그들의 모습 어땠어요? 아까 말한대로 유망주만 넘치는 축구팀에 불과하잖아요.
누가 나와서 나는 저 팀에 있으니 너무 자랑스러워 라고 말한다면, 누가 인정해주겠어요? 그냥 쟤는 그런가보다 라고 하겠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부족한 이들을 택하셔서 그의 크신 일을 이루십니다.
그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셔서 가나안 땅을 정벌하게 하시고, 크게 이룬 것 없는 저를 세우셔서 여러분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도 그 은헤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았을 때 스스로 세상 사람들에 비해 할 수 있는 것도 얼마 없는 것 같고, 가진 것도 없고 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들을 통해서 주님의 크신 일들을 이루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요? 우리를 뭐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단지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별볼것 없음에도 우리를 택하시고 그의 크신 능력으로 대단해보이는 세상을 이기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그 크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말씀 9절부터 11절을 읽어봅시다.
신명기 7:9–11 NKRV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뭘 하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어요.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것 중요하죠. 그런데 지키고 행하는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바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지켜 행하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말씀을 처음에 읽으면 어디에서 딱 집중을 하게 될까요? 아마 10절의 내용이 딱 들어올거에요.
왜? 말 안들으면 보응하시겠다고 하잖아요. 이거 뭐 까딱하다가는 죽을 것 같잖아요.
사실 그래서 구약시대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으로 말씀을 지키는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당장 욥기 말씀만 봐도 알 수가 있었죠.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를 압도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져야겠죠.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두려움에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말씀을 지키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바로 유대인들처럼 되는거에요.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분석하고 해체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거에요.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 중에 4계명 어떤 거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안식이라는 개념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죠. 대체 어디까지가 쉬고 어디까지가 일하는 것이냐.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삼습니다. 집에서 예배하러 가는 성전까지의 거리를 따져서, 그것보다 더 많이 이동하고 하면 그것은 일로 간주하는 것이죠.
이런 것처럼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걸고 말씀 하나하나마다 세세하게 규정을 세워서 그것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을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했죠.
하지만 신약시대에 등장하신 예수님은, 그 모든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뭐라고 말씀하셨죠? 외식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겉치레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왜 그럴까요? 그들은 말씀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한거잖아요.
그 이유는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행위 그자체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바로 9절에 답이 있잖아요. 하나님을 사랑하여서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복을 주신다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앞서 존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사랑해보셨나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되면, 어떻게 행동하나요?
그 대상을 위해 모든 것을 하려고 하겠죠. 그 대상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생각하는지까지 막 찾아가면서 그것을 해주려고 할거에요.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한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고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행한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랑의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의 준수는 그냥 이루어지는거에요.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걸 막 글자 따져가면서 지키려고 하고 있으니, 하나님 눈에는 절대로 좋게 보이지 않겠죠. 겉으로만 보이려고 하는거잖아요.
여자 친구들, 한번 생각해봅시다. 어느날 스벅에서 남자친구랑 있었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사람들도 너무 시끄럽지 않고, 오늘따라 커피도 맛있는거에요.
그래서 아 여기 스벅 너무 좋다 라고 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그 말을 듣고서 ‘아 내 여친은 스벅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맨날 만날때마다 스벅을 가는거에요.
그래서 막 여행지 갈때마다 스벅 어디있는지 다 파악해서 스벅을 꼭 중간에 들르고, 선물도 맨날 스벅 굿즈 주고, 스벅 카드주고 이런다고 생각해보자구요.
그게 정말 기쁘게 느껴질까요? 아니잖아요.
정말 사랑한다면, 그 말과 그런 겉에 있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그 마음을 집중할거에요. 만약 그렇게 스벅막 했다고 해도, 그 마음을 보고 있다라면 중간에 이게 아니구나 하고 알아채겠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말씀 그 자체를 따르려고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아무것도 없음에도 택하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될거에요.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23–25 NKRV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구약 시대 백성들은 그저 말씀을 따라야만 죽지 않는다는 생각 아래 열심히 말씀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들을 옭아매는 족쇄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원래 율법 말씀의 목적이 뭐라고 하는거에요?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하는 초등교사, 즉 하나님께로 낭가게 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했다는거에요.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 사랑을 이루시면서, 그 사랑을 진정으로 받고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된다고 하는 거에요? 이제는 길잡이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왜?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간다는거에요.
오늘 말씀을 정리해볼게요. 오늘 함께 신명기 칠장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택하셨다고요? 너무 능력이 출중하고 잘나서? 아닙니다. 그냥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랑으로 택하셔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함께 보았습니다.
여러분, 이제 새로운 2024년이 시작되었죠? 여러가지 계획들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을텐데,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올 한해를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시간, 28차 하임 캠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번 캠프 주제가 뭔지 아시나요? 하나님의 트리아제 입니다.
트리아제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시는 분들이 많을 거에요. 저도 그렇습니다.
이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냐면, 응급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안되겠지만, 갑자기 큰 재난으로 인해 여러 인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환자는 많지만, 의사는 적을 때, 어떻게 해야겠어요?
가장 위급한 사람에게 먼저 가야겠죠? 하지만 위급하지만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가능성이 없을 경우도 있겠죠.
그러면 굳이 막 시간 보내가면서 의료인력을 투입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라는거에요.
그래서 가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코드 블랙이라고 해서 안타깝지만 그대로 두고,
위급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이들부터 차례대로 치료가 들어가게 된다라는 거에요.
이것이 바로 트리아제 입니다. 불어로는 선별의 의미를 담고 있죠.
그런데, 우리의 주제는 그 앞에 뭐가 붙어있어요? ‘하나님의’ 트리아제라고 했죠.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가능성이 있는 사람부터 효율적으로 살리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그렇지가 않다라는 거에요.
오늘 말씀에서도 나왔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택하셨다고 했어요? 가능성이 있어서? 아닙니다.
오히려 가능성이 없었어요 우리는. 가장 작은 자이고 부족한 자들입니다.
세상적인 트리아제로 따지자면, 코드 블랙에 가까운 이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가장 먼저 택하시고 그의 뜻에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 캠프의 주제인 하나님의 트리아제라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번 캠프를 통해서 하나님의 그 놀랍고 크신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올 한해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깊이 담겨져 두렵고 걱정이 많은 한해가 아니라, 은혜롭고 즐거운 한 해가 여러분의 2024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하나님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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