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1 청년교회
Notes
Transcript
마가복음 8:1–13 (NKRV)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오늘 본문은 7병2어라고 불리는 기적의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어느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 바로 5병2어의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 5병2어의 사건을 두번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다.
5병2어는 말 그대로 5개의 빵과 2마리의 물고기로 남자 장정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그리고 남은 음식이 12바구니나 되었다.
오늘 본문은 빵은 두 덩이가 더 있었고 사람은 천명이 적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음식은 5개가 적은 7 광주리였다.
그렇다면 6장에서는 바구니로 표현하고 8장에서는 광주리로 표현했는가? 그러면 먼저 바구니는 무엇이고 광주리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원어에도 두 단어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NASB 성경에서는 바구니를 basket (배스킷)이라고 해석하였고 광주리를 large basket 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래서 바구니보다 광주리가 더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단지 크기만을 구별하기 위해 다른 단어로 기록한게 아니라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기록한 것이다.
6장에서 바구니는 유대인들의 표현이고, 오늘 본문인 8장에서 광주리는 유대인의 표현이 아니다. 다시말해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6장에 예수님을 따라왔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고, 8장에 예수님을 따라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방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5병 2어의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오늘 본문 4절을 함께 읽겠다.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이들은 이미 비슷한 상황속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경험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단순히 제자들의 믿음이 부족함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아직까지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본문 4절의 제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이런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그 기적을 이방인들에게까지 하실리 없어” 라는 늬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선민사상으로 가득찬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5병2어와 7병2어의 결정적인 차이는 5병2어는 유대인들에게 행하신 기적이고, 7병2어는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기적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지금 어떤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는 것인가? 빵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필요하기에 그 빵을 예수님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신다는 것이다. 즉, 구원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허락하신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5병2어와 7병2어의 차이점이 하나 더 있는데 5병2어는 제자들이 모인 무리들의 배고품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을 찾아가 이야기를 하였고, 오늘 본문인 8장의 7병2어는 예수님이 먼저 무리의 배고품을 걱정하여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왜 그랬겠는가?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아 이래서 그랬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역시 유대인들의 모임이기에 유대인인 제자들이 더 신경을 썼고, 이방인의 모임이였기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 않았나? 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기적의 공통점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모인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6장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는 불쌍히 여겨 여러가지로 가르치셨고, 8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신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있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기에 말씀을 주시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먹을 식량이 필요하기에 먹을 식량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아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있어 가장 있어야 할 것,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리 같은 상황 같은 환경일지라도 남들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이런 상황에 저 사람은 이것을 받았으니, 나에게도 이것을 주시겠지? 아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응답하셨다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면 안된다. 주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음을 믿어야 한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정확히 아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을 끊임 없이 돌보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 할 때는 위로하신다. 하지만 우리에게 책망이 필요할 때는 책망을 주신다. 우리는 그 모든 주님의 이끄심을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안에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두가지 방법 이라는 제목으로 어린 여자아이가 야무지게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기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일테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입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이야기 하겠다. 정말 중요한 말이다.
두 이야기 모두에서 예수님은 단지 무리를 먹이시지만 않고, 제자들을 그 먹이는 일에 참여 시키신다는 점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울수록 긍휼히 여기고, 치유하고 먹이고, 하나님 나라 사역을 더 널리 전파하는 그분의 일에 동참하라고 그분이 우리를 부르실 가능성이 더 크다. 돈이나 명성을 얻으려고 마법을 부리는 고대 사회 마술사들과 달리, 예수님은 자신이 하는 일에 제자들도 참여시키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훈련된 리듬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받아먹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이 세상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삶이다.
물론 우리가 가진 자원은 턱없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 고민하셔야 할 문제다. 이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그 문제를 잘 해결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암시해 준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들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듣고 실천에 옮겨야 할 우리의 임무는, 빵과 물고기가 무리를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예수님께 드려 마음껏 사용하시게 하고, 우리는 놀라워하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그것을 나누어 줄 채비를 하는 것이다.
11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다. ‘시험’은 마가복음에서는 약점을 잡기 위한 것을 뜻한다. 그들은 예수님께 표증을 구했다. ‘표증’은 무언가를 확증하는 기적을 가리킨다. 선지자나 메시아에게는 예언의 성취, 초자연적 현상등의 표증이 있어야 했다. 따라서 표증을 구한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아가 아님을 확인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본인들이 원하는 특정 표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요구하는 표증을 행하지 못하면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들이 원한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증이었다. ‘하늘로부터’라는 표현은 천사들의 도움으로 이방 군대를 물리치는 기적을 가리킨다. 즉 ‘하늘로부터’ 온 도움은 흰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나 전쟁을 도와 승리로 이끈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이 요구한 하늘로부터 오는 표증은 천군 천사가 로마 군대를 물리치는 기적이었다. 이 요구는 유대인들이 군사적 메시아를 기재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군사적 승리를 통해 유대인들의 정치적 해방을 이루어야 한다고 기대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