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두고 따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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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 사람을 표현하는 몇가지 호칭이 있습니다. 성도, 신자, 제자 등이 있다. 성도는 예수님의 보혈로 거룩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결국 거룩한 신부로 완성되어 준비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 할 명칭은 “제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제자는 1차적으로 “배우는 사람” 선생님에게 배우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식으로 배운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막 학문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이걸 너무 “지적”으로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지금 배우고 있고, 계속 그분의 말씀과 삶을 보면서 따라가고 있는가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인지, 성도인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복음이 시작되고,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는 그 모습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르심의 자리
부르심의 자리
삶의 자리, 일상에서 부르심 받았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제자들의 부르심의 자리가. 회당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만남의 자리가 설교 듣는 자리, 기도의 자리가 되기도 하지만 삶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늘 생활하는 그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사실이 있습니다. 또 오늘 다 버려두고 떠났고, 또 부름 받은 사람이 사도들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선교사, 사역자의 길로만 나가는 것이 그렇다고 모두가 전업 사역자의 길로 부름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 : 더러는 100프로, 24시간 주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도 하시죠.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이전과는 기준이 달라야 한다. 중심이 바뀌어야 하고, 우리가 계속 살펴보는대로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일상을 사용하심
나의 일상을 사용하심
거룩함과 속된 것을 나누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아직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천국 백성이지만 우리는 아직 싸워야 할, 이겨내야 할 싸움이 있다.
제자들은 온전히 모든 24시간을 따라다니며 배우는 그 삶으로 부르셨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것 낙담과 결핍과 곤고함. 도리어 부족함을 사용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있음을 알고, 주님과 더불어 그것을 어떻게 이겨 나가야 하는지 배워 나가고 (복음으로 시작되었으니), 또 결국에는 그것을 전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가 늘 살아가는 시간과 장소가 구별이 되어야 한다. 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바로 앞에서 본 말씀.
부족함과 걱정거리와 기도제목을 주님이 사용하셔서 그 일을 이루신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것보다. 안될 꺼야 아마. 망할꺼야 아마. 이 믿음이 더 클 때가 많다.
나의 일상을 책임지심 - 주님
나의 일상을 책임지심 - 주님
복음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 우리의 걱정과 근심은 거국적인 것이기 보다는 일상에 관한 것이 훨씬 더 많다.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심을, 나의 신음 소리를 들어주신다는 복음을 믿을 때에 더 큰 역사가 시작된다.
주인: 나의 삶을 책임져 주님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사실 이 어부들이 만선의 기쁨을 누렸을 때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일이 꼬였을 때 주님을 만났다 (다른 복음서)
다음 주 정도에 배우겠지만,
장모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순종- 책임/사랑 배운 - 가르쳐주시고 사랑하는 관계
버릴 수 있는가
버릴 수 있는가
오늘 나오는 두 부르심에 관한 말씀.
압도적인 예수님을 만나야. 우리가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소망하고 기다려야 하며, 만나야 하고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분을 생생히 만나야 한다. 예수님께 압도되면 그 다음에 다른 것이 작아지고 제자의 삶을 시작된다.
우리가 메어있고,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따를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버리다”를 생각해 보자.
버리다 - 나의 것으로, 소유로 고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허락하다
옷을 벗다
용서하다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명령하신 동사가 이것인줄 알고 있는가? 분명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정도에 상관없이 우리는 다른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게 되었지만 계속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손 잡고 따르며 다른 길로 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며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일상을 살아가며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는 자꾸 딴 길로 새기가 쉽기에 계속 주님을 바라보고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내 계획과 생각 고집을 버리지 못함.
“버림” 필요하다.
압도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내 의지로 하기 어렵게 때문에 도와주심을 바래야 할 것이다.
이미 예수님을 만나 우리들은,
그의 앞에 움켜쥐고 있는 상한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
계속 부르시는 자리
계속 부르시는 자리
단 한 번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은 있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의 부르심을 계속 듣고 쫓아가야 하는 이들이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듯이, 우리가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그 순간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도, 아무개야! 지지! 이리로 와야지. 위험해.
물론 우리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내가 그 이야기를 듣는 데서 벗어나서 다른 이들을 인도할 수 있는데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시 손 내밀어 주시고 다시 걸어갈 수 있다.
내려놓고, 버려 두고 따라야 한다. 그 사실을 잊지 말자.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여도, 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바뀌고 복음을 믿는 자 답게 늘 교정하고 배워가며 부르심의 자리까지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기도제목
주님의 뜻을 알리소서
다른 주변의 사람들을 향한
또 이 나라를 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