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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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우리에게 와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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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죠. 그런데 여기 딱 보니까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어부들이 그물을 씻는 다는 것은 오늘 하루동안 일한거에 비해서 수확이 없어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는거랑 같은거에요.
여러분 시험기간만 되면 괜히 방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거랑 같은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는 어부들한테 말하시는거에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말씀은 어부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비상식적인 말이죠 여기 있는 어부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곳 저곳에 그물을 내려보면서 이미 일할 만큼 했거든요 심지어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살아왔죠? 이 사람들은 어부고요 그럼 누가 더 전문성 있겠어요 평생 물고기만 잡으면서 살아왔던 사람이랑 나무만 만지면서 살았던 사람이랑요
그럼에도 이 어부들은 어????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합니다. 시몬이 이렇게 말해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이렇게 말하고 어부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서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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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그물을 찢어질정도로 물고기가 많이 잡힙니다. 상식적이지도 않았고요 경험적이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니까 어부들이 본적도 없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되는것도 상식적이지도 우리의 기준에 알맞지도 않은 일일 수 있어요. 인간은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죠. 예수님의 부활은 말도안되는 것 같고요 심지어 그 이유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그렇다고요? 이런 말도안되고 비 이성적인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세상 어디에도 우리 기독교의 이야기들을 긍정적으로 증명해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고 있는 걸까요?
첫번째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셔서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예수님을 찾아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직접 우리에게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체고 예수님을 바라볼때까지 신실함으로 기다려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ppt3
Revelation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께 자신을 찾으러 오라고 닥달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노력이나 여러분의 열심으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여러분의 옆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아들아 내딸아 문을 열어다오 내가 너와 같이 먹고 너는 나와 같이 먹자구나
예수님은 그저 여러분의 삶속에서 같이 계시고 싶어하십니다. 그저 여러분 옆에서 여러분 편으로 있고 싶어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여러분은 맞이하시기만 하면 되요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과의 동행을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예수님과의 동행을 받아들이시면 변화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우리의 기준이 이제 예수님의 기준으로 바뀌기 시작 합니다.
비합리성이 아니라 이제 예수님의 사랑이 기준이 되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예수님의 시선으로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건 행동이나 수행같은게 아니에요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단 한가지는 예수님이시고요 우리의 삶을 바꾸는 단 한가지 또한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으로 거듭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동행하시고 예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싸울때
우리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이 싸울때
그럼 우리의 이성이 우리의 기준이 예수님과 부디칠때 어떻게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그 두번째는
말씀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한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서 자신의 뜻이 아닌 예수님의 뜻을 통해서 그물을 던집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동행하게된 예수님의 백성들은요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할 수 있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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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기 자신의 기준이 조금씩 깍겨 나가는 삶으로 볼 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와 스스로의 기준을 통해서 삶을 살아갑니다.
이건 좋고 저건 나쁘고 선택을 하죠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길로 여러분을 인도하였나요? 그렇지 않죠 어떨때는 좋은 선택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거고 어떤때는 나쁜 선택을 해서 나쁜 결과를 얻었을 거에요
그런데 가끔은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나쁜 선택을 했다고 고민하는데 좋은 결과를 얻을때도 있지 않나요?
이렇게 인간의 선택과 기준은 불확실성속에서 방황합니다. 이런 불확신성은 우리를 점점더 알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요 힘을 가지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요 남보다 더 높은 자리 더 인정받는 자리를 가지고 싶게도 합니다.
그런데요 그래도 우리는 이 세상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마치 세상을 통제하고 통치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결코 이 세상을 통제하면서 살아갈 수 없죠
여러분 바벨탑 사건 아시지요? 그 사건은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때를 대비해서 안전장치로 만들어 낸겁니다. 바벨탑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더라도 흩어지지 않도록 높은 탑을 쌓아 만들기로 했어요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죠?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한 이 행동은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흩어지도록 만드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런것처럼 인간은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통해서 벽을 쌓고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합니다. 끊임없이 도전해요. 어떨때는 논리를 가지고 도전하고 과학을가지고 도전하고 도덕률과 철학을 가지고 도전합니다. 왜죠?
모두 죄때문에 그런겁니다. 인간의 창조는요 선악과를 먹기전 인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였던 인간은 자신의 가치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았고요 하나님이 정하신 그 일들에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존재였어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면 좋은거고요 하나님이 싫어하면 싫어하는 존재였습니다.
근데 뱀에 의해서 선악과를 먹고나서는 어떻게 되죠? 선과 악을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사람 스스로가 이제 이건 선 이건 악이라며 구분하기 시작해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명하죠?
내가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 이 마음이 인간의 악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간은 마치 하나님이 된것처럼 공명정대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걸 우리는 도덕적으로 가장 가치있는 것처럼 포장하죠. 하지만 선악과를 통해서 한사람 한사람 가치를 가지게 된 인간은 절대로 공명정대하게 세상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정의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말그대로 남이하면 불륜이지만 내가 하면 로멘스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에 꽉 들어차 있는 겁니다. 우리의 기준은 우리의 선과 악을 나누는 판단은 이제 여기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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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하나님의 다그치심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Genesis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이 여자를 나한테 주셔서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잘못 없어요.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저한테서 죄를 찾지 마세요. 변명합니다. 이 여자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여자가 저한테 이 열매를 먹으라고 했다니까요?
우리의 기준이 생긴 인간은 이거밖에 안나옵니다. 제가 했어요! 내가 안했어요! 하나님이 했잖아요! 난 모르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마음에 같이 살아가는 백성들은요 말씀에 의지해서 살 수 있게 됩니다. 나의 마음 나의 죄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요 말씀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내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일을 이제 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에 의지하는 일은 세상이 보기에는 손가락질 받는 일일 수도 있어요 이치에 맞지 않고 세상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말씀에 의지해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생각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부어주십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십니다. 말씀에 힘이 있다는 것을요!
말씀이신 예수님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시고요 말씀이신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때 일하신걸 보면요 말씀으로 예수님의 권능을 보여주십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자를 살리시고,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모든 것들이 말씀이였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힘이 없을 수가 없죠, 이 세상 모든 것이 말씀으로 되어있으니까요
예수님과 동행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순종하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됩니다. 나의 마음이 아니라요 나의 기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쫓아가는 거에요.
이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길 뿐이에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게 해주시고요 순종할 수 밖에 없게 만드십니다.
여러분 말씀을 순종하는 길에 있으신가요? 아니면 순종하지 못하는 길에 있으신가요? 순종하지 못하고 계시다면 어서 빨리 순종의 길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나의 기준은 이제 벗어 던져야 합니다. 죄의 기준은 이제 벗어 던지고 생명의 길로 은혜의 길로 돌아오는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의 폭로와 회개
죄의 폭로와 회개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준과 우리의 가치관이 이제 모두 폭로가 되고 나서 예수님의 동행을 느끼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요 우리의 죄가 우리의 마음을 우리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어떻게 될까요? 저번주 설교를 잘 들으신 분들은 아실거 같은데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죄들이 폭로 됩니다. 우리의 죄들이 터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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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라 불린 시몬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Luke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예수님이 온전히 여러분 마음속에 거하시면 우리의 죄가요 온전히 고백됩니다. 그리고 부끄러워서 숨고싶어 집니다. 예수님의 온전하심이 선하심이 우리의 죄와 더욱더 비교가 되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족한 우리들을 보듬어 주십니다. 이런 죄인들을 이제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의 참소망이 되시고 우리의 참 기쁨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신의 죄가 계속해서 들어나는 삶입니다. 나의 부족한점이 나의 악함이 계속해서 들어나서 주님께 폭로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알게 되면 예수님이 정말로 소망으로 느껴집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인 불과 구름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순종또한 계속되었죠. 그럼에도 광야에서 홀로 신실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들의 삶도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에도 끊임없이 불만과 악이 튀어나옵니다. 불평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예수님도 우리들의 삶속에서 우리를 놓지않으십니다. 신실하심으로 우리들을 이끌어나가십니다.
여러분께 죄를 짓지 말자고 하는 말은 사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죄를 지을때가 있고요 잘못할때가 있습니다. 나도 하지 못하는걸 어떻게 여러분께 하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죄를 지었고 나의 죄가 폭로 되었다면 어서 빨리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죄가 폭로되었을때 나의 기준으로 숨기고 감싸는 것이 아니라요
예수님께 폭로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왕과 사울왕의 차이점은 여기서 나타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잘못하고 그 죄가 폭로되었을때 회개하고 통곡합니다. 사울왕은 자신의 죄가 폭로되었을때 자신의 체면만을 걱정합니다.
여러분 사울왕이 되지 마십시오 죄가 폭로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죄가 폭로되었을때 우리는 회개 해야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에게서 도망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부끄러움으로 죄를 숨기는 것은 도망칠 수 없는데도 도망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아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 속에 있는 죄를 끄집어 내셔서 분리하십니다. 우리는 그 죄를 폭로하고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가야 할줄을 믿습니다.
회개는 사죄가 아닙니다. 회개는 폭로와 돌아감입니다. 우리의 죄가 폭로되고 우리와 분리되었을때 예수님께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겁니다.
회개는 돌아감이기 때문에 회개를 할 시간을 점점 미루다보면 돌아가는 길이 오래걸리고 험난해 집니다. 그 죄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이 무뎌집니다. 그러니 여러분 죄가 폭로되었을때 회개를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보다도 여러분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숨길께 뭐가 있겠으며 부끄러운게 뭐가 있겠습니까? 무화과 나무 잎으로 여러분을 가리지 마시고 죄가 들어났을때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폭로하시는 여러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가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왜 믿는건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더이상 살 소망이 없던 우리 죄인들에게 예수님이 사랑으로 오셨다는걸 이야기 했고요, 하나님의 기준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됨을 이야기 했고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죄가 폭로 되었을때 어서 회개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어요. 저도 중학교 시절에는 잘 이해가 안됬거든요.
그런 여러분 곁에 예수님은 와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것이고요, 여러분을 변화시킬 겁니다.
우리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요.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그 권능으로 그 사랑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이름 그 하나만이 중요해 집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번 한주간 이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삶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지 못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믿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죄를 숨기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제 주님께 그 죄를 폭로하시고 회개하여 주님만 붙잡고 살아가는 삶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놓쳐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강한 팔로 붙잡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여러분의 한 주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이렇게 기도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며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2. 세상을 살아갈때에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3. 우리의 죄가 폭로될때 하나님으로 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