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신 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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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신 명기 11:1-17절까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어떻게 지키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며 지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우리가 억지로 지켜야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시키는 것 즐겁게 잘 합니다. 그러나 군대나 회사처럼 억지로 시키는 것은 대충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지키되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분들을 보면 참 말씀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제가 섬겼던 교회들에 비해서 성경 통독도 정말 많이 하시고요, 교회에 일찍 오시면 성경을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말씀을 열심을 열심히 읽는것 만큼 실천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쉽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먼저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 것, 애굽 군대를 홍해에 빠뜨려 멸하신 일, 또 모압 평지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인도하신 일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 일들은 어떤 일들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하신 일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하게 인도하셔서 이런 기적들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요, 기억해야 할 것이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이 하신 일 곧 땅이 입을 벌려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장막과 그들을 따르는 온 이스라엘의 한 가운데에서 모든 일을 삼키게 하신 것이라”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의 지도권에 반발하다가 땅이 그들을 삼켜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요, 하나님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다가 심판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을 도우신 는 일 뿐만 아니라 징계의 회초리를 든 것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때 도우시지만, 무조건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때로는 징계를 통해서 벌을 주시는 것을 알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돕기만 하는 분으로만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냥 하나님을 가나안에 있는 우상처럼 여기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가나안의 우상들은 백성들에게 좋은 것만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상들과는 달리,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면 징계하신다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상과 다른 분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10절과 11절에서 하나님은 가나안땅과 애굽땅의 차이를 이야기 합니다. 애굽은 어떤 땅입니까? 여러분 실제로 이집트에 가보시면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농사는 잘 됩니다. 왜냐하면 나일강 때문입니다. 이집트는 우기가 되면 하류 지방에서 내린 비로 인해 나일강이 범람하여 땅에 영향분을 풍부하게 만들고, 건기가 되면 나일강에서 물을 끌어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물을 끌어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수로를 만들어야 하고, 풍차같은 걸로 해서 물을 끌어와야해서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습니다. 즉 고생을 해야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은 어떻습니까? 그럴 필요 없는 땅이라는 것이지요. 다만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비를 내려주셔야 농사가 가능한 땅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거나 하늘을 닫으시면 흉작을 피할 수 없는 땅입니다. 한마디로 가나안 땅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물을 확보할 수 없고 비를 주시는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하는 천수답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이 잘 먹고 잘 살기 원한다면 하나님께 의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도 굶주리고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상관없이 잘 살면 그만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는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을 참 부러워 합니다. 그래서인지 매스컴이나 뉴스나 드라마나 영화는 부자의 생활을 조금씩 보여주며 보통 사람들이 그 삶을 동경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풍요로운 것이 무조건 복일까요? 성공하는 것이 무조건 복일까요? 오늘 본문은 아니라고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필요없을 정도로 풍요롭고 성공하는 것을 가리켜 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대신에 매순간 하나님을 바라봐야만 하는 긴장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경제적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10억이라는 돈이 있어야 노후가 편안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돈이 많으면 좋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리저리 부리는 것도 좋습니다. 명예를 가지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요,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진짜 문제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가난한 지언정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인생이 더 복되다는 것입니다.
과거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부자로 사는데 하나님을 모르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부자로 살고 부족함이 없으니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고, 그러다 보니 구원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멸망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걱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그 걱정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복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그 걱정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찾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하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그럴 걱정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할지라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서 더더를 외칩니다. 왜요? 더 많인 가지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줄어드니까요? 오늘날 우리의 몸을 바라보며 더더 건강하기를 외칩니다. 왜요? 건강하면 우리가 염려할 일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한테 기도하지 않아도, 매달리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태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은 너무 그런것들 바라지 말고, 오늘날 나의 경제적인 형편, 나의 처한 상황들, 나의 건강과 여러가지 문제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말고요,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을 더 바라보도록 하시기 위해, 내가 하나님께 더 매달리도록 하기 위해, 그래서 하나님 백성으로 숨쉬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속에서 왜 하나님은 나의 삶을 형통하게 해 주시지 않는거야?라는 불만이 사라지고요, 내가 하나님께 더 기도할 수 있음에, 내가 하나님께 더 매달릴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 염려없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복된 자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깨달아서,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더 매달리고 기도함으로 참된 복된 자리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