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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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이계돈 집사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오늘은 레위기 16장 속죄일에 관련된 본문을 가지고 함께 말씀 나누겠습니다. 속죄일은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 모든 백성들의 죄를 한번에 용서받는 날입니다. 오늘은 1절부터 10절 중 5절까지의 본문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본분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제사장은 자신의 직분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있다는 사실입니다.
1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10장에서 일어난 사건이죠?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성막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해서 그불이 그들을 불살라 죽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아론에게 상기시킨 뒤 그런 다음 속죄일에 아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셨는데요, 아론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지성소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들어간다면 자기의 두 아들처럼 죽음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드리고 숫양을 번제제물로 드린 뒤, 자신의 온 몸을 깨끗하고 씻고 거룩한 세마포 옷들을 입은 뒤에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가 들어가는 날은 하나님께서 들어오라고 명령하신 날입니다.
이로 보건대, 제사장은 자기의 직분이 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직분이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보존해주고 그의 거룩함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순종할 때에야 그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제사장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우리의 신앙의 연수나, 우리의 어떤 직분, 직책 등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보증해주는 것처럼, 거룩함을 보여주는 증표와 같이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나 교회에서 목사야, 강도사야, 나 교회 집사야 장로야, 또는 나 교회에서 어떤 역할 맡았어, 나 신앙생활 이렇게 오래 하고 있고, 우리 가문은 몇대째 신앙있는 가문이야’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자신의 믿음의 분량인 듯 자랑스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는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거룩함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그러한 직책들,직분, 섬김들은 너무나 귀한 것이고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때 그런 것들의 유무가 우리의 신앙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함이 우리 신앙을 증명해줍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말씀을 행하게 되면 거룩해지는 것인가? 행함이 믿음을 보장해주는 것인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생각으로서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진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그를 의롭다고 칭해주신 것처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거룩함,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제사장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있고, 이미 구원을 얻었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아론을 향해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신이 제사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자기 마음대로 나 하나님 여호와에게 나아올 수 없다. 오직 말씀에 순종할 때에야 비로소 내게 나아올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내가 그를 지킬 것이고, 그를 제사장으로 섬기게 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로보건대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말씀을 주시고 계신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은 어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함에 있다’라고 말입니다. 어떠한 자격이나 직책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거룩한 자녀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하나님을 말씀을 지키고 가르치는 제사장임을,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흩어져있는 이스라엘 열두지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말씀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것입니다. 몸은 그저 흙이요 사람의 사람됨을 보여주는 필수 요소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몸에 불어넣어주신 생령 곧 영혼입니다. 이 영혼이 없다면 당연히 그의 몸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의 행함이 바로 이 몸의 영혼과 같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결정짓는 요소가 바로 행함이다라고 말합니다.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 주님께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짓 선생들, 주여주여 하는 자들, 선지자 노릇을 하는 그런 직분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직책이 그들의 거룩함을 증명해주고, 그들의 믿음을 보장해주고, 그들의 신앙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열매가 그들의 믿음을, 그들의 거룩함을, 그들의 자녀됨을 보여줄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추현규 너는 과연 좋은 열매를 맺고 있니? 너는 믿음의 열매를 맺고 있니? 너는 내 자신이 사역자라는 이유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고 있진 않니? 나답과 아비후처럼 하나님께 매일 다른 불을 가져가고 있지 않니?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은 정결하지 않은 삶을 그분께 드리고 있지 않니?
그리고는 감히 좋은 열매를 맺고 있다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는 대답을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 두려워졌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저는 부족한 자입니다. 믿음없는 자입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저는 전혀 행함이 없이 그저 지금 나의 수준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제 직책이, 제 직분이 내 믿음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귀한 성도님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 말씀 앞에서 회개의 반응이 나오신 담변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감사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회개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뚱딴지 같은 말처럼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누구에게 회개를 하는 것이며, 누구에게로 회개, 즉 돌이키는 것인가요? 바로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로 회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나의 교만함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이게 놀라운 은혜이요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거룩하지 못해서 영 죽을 벌을 내리신다면,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곳곳을 통해 우리를 이미 거룩하고 의롭다고 칭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은혜, 의롭다는 선언, 그분의 번복하지 않으시는 약속을 믿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책망하실 지라도 아주 버리지 않으실 분이란 걸 믿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주 죽일 분이라면 우리는 그분께 돌이킬 수 있을까요? 아니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다시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 귀한 성도님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행함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자녀가 되었음을 우리의 행함으로 증명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받은 은혜가 내게 너무나 큼을 기억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그 은혜를 드러내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면 회개하는 우리가 됩시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회개합시다. 교만했던, 안일했던 우리의 믿음을 회개합시다. 회개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지었다고 가출해버린다면, 그것은 어리석을 행동입니다. 돌이킬 때 그분께서 우리를 책망하실 지언정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어루만지사 더 큰 사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사랑에 감격해서 그 기쁨을 행하지 않고는 못배기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며, 두가지 사실을 잊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길 원합니다.
첫번째로 우리의 거룩함과 의로움은,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 직분이나 직책, 자격과 같은 외적인 것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순종할 때 그것이 우리의 믿음으로 드러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기억하시며, 살아서 약동하는 믿음을 소유한 우리 모든 새음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맺고 있지 못했다면 어서 속히 하나님께 회개합시다. 그분께 겸손히 돌이킬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아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를 감싸 안으시고, 우리의 교만이 꺾인 자리에 사랑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회개의 은혜를 경험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함께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행함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의 직책이나, 직분에 만족하며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감사하고 기뻐하며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가 믿음을 따라 살아가지 못했음을 회개하며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시고 믿음대로 행할 수 있기를, 믿음의 삶아갈 담력을 주시길 기도합시다.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를 회복시킬 주님을 기대하며, 믿고 의지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그 밖에 우리 교회를 위해, 담임목사님의 가정을 비롯한 모든 교역자들을 위해, 새음교회의 직분자들을 위해, 모든 성도들을 위해,
나라와 온 열방을 위해, 또한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도록하겠습니다.
아버지 함께 외치며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