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저주의 갈림길(심 11:18-32)

매일성경 새벽기도(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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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 명기 11:18-32절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8-20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나의 이 말을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을 너희의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여기에서 “너희의 손목에 맨다”라는 말은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을 의미하고요, “너희 미간에 붙인다”는 말씀을 이마에 붙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을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이렇게 말씀합니까? 우리가 말씀을 가르침을 받지 않아도 되는 때는 한 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신명기 말씀을 계속 살펴보면서요, 하나님은 왜 똑같은 말씀을 계속하실까? 어차피 그말이 그말 아니야?라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시면 비슷한 이야기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왜요? 반복해서 들어야지 그것이 우리 삶에 제대로 습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대로 행하고, 그 말씀을 기억하는 것을 매일 반복함을 통해서 말씀이 우리 삶에 체화되고, 이를 통해 우리가 말씀대로 살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지금 모세와 함께한 세대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또 이것은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되 기회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라는 의미입니다. 얼마전 우리 아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는 지금 주일날 하루만 잠깐 가서 예배를 드리지만, 엄마 아빠때는 정말 예배 많이 드렸다. 주일학교 새벽예배, 주일 오전, 오후, 수요 예배까지 드렸어~라고 하니 우리 요엘이가 매우 놀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배울 시간이 많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 시간이 너무나 줄어서요, 주일날 한 번 만나서 예배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웠는데요, 저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에 대한 교육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강조되는 것이 가정에서의 교육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단순히 교회에 나와서 가르치는 것으로 신앙의 교육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가정에서도 자녀에게 가르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에 자녀들이 교회에 나오는 비율을 보면 가정에서 말씀을 배운 가정의 아이들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큰나이가 들고 안들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될때에 우리의 믿음이 세대를 넘어서 계속 이어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으로 은혜 가운데 아름답게 세워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1절부터 25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한다면, 가나안의 모든 민족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며 그들이 밟는 영토를 차지할 수 있도록 모든 방해꾼을 물리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그들에게 주십니까? 오늘 본문 24절은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쪽으로는 시내산이 있는 시내 광야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레바논까지이고, 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강에서 지중해까지 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넓은 땅을 이스라엘은 시간이 한참 지난후인 솔로몬 시대에 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바라보면 마치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는 공로로 인해 복을 받을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잘하고, 내가 뛰어나고, 내가 말씀대로 행했기에 복을 받는 자고 되었다고 자만하도록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순종할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순종하는 것, 말씀에 충성하는 것은 그냥 당연한 일입니다. 뭐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당연한 것을 하는대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공로가 없고 당연히 해야할 바만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출세하기 위해서 잘 되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지 마십시오! 그냥 말씀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여기며 지키기에 최선을 다해보십시오! 그러면요, 우리에게 꼭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요? 당연한 일을 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그 당연한 것을 하면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기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내가 이렇게 했으니, 복 내려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연한 일을 했음에 만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로 흘러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들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거역하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것처럼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굶어죽고,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여러가지 고통을 겪을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그리심 산은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산이고, 에발산은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입니다. 그냥 봐도 그리심산에 좋아 보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하나님은 한 산에서는 축복을 한 산에서는 저주를 하는 행위를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의 기념물로 삼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거제도에도 이런 기념물이 있습니다. 옥포 앞바다를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생각합니다. 제가 월요일에 교역자 회 모임이 있어서 칠천도교회에 다녀왔는데, 거기 가니까 칠천량 해전 기념공원 표지판을 봤습니다. 거기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최대 패배를 우리가 떠올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그런 장소였습니다. 그들이 그리심산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실 축복을 기억하고, 에발산을 바라보며 그들은 하나님이 예고하신 저주를 기억했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만큼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 편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시내는 거의다 우기에만 흐르고 건기에는 말라 있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떻습니까? 우기에는 물이 풍부한 개울 옆에서 물을 얻고, 건기에는 시냇물 아래에 흐르는 지하수에서 물을 얻어 사시사철 푸르를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할때, 우리의 삶은 말씀으로 인해 형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매번 반복되는 말씀 같지만 하나님은 그 반복이라는 장치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행하도록 하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형통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침으로 믿음의 복을 대를 이어서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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