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교 요11:17
Notes
Transcript
예수는 부활과 생명이시다.
예수는 부활과 생명이시다.
사도신경
-사도신경하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2. 찬송가
161장 할렐루야 우리 예수
3. 합심기도
월요일: 목사님과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목사님, 언제나 강건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명 온전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목사님의 가정에도 평안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쓰임받게 하옵소서.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화요일: 지역을 위해서
수요일: 직분자를 위해서 찬양팀, 수요기도회
목요일: 다음세대와 선교사님
- 호주 백준호 선교사님, 요르단 황선국 선교사님, 캄보디아 김수연 선교사님,
네팔 신기도 선교사님, 몽골 최용현 선교사님
금요일: 소그룹을 위해서
토요일: 주일을 위해서
4. 성경봉독
- 요한복음 11:17-2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5. 설교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나사로의 죽음이 확실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장례도 3일 장을 치르고 발인을 진행합니다. 화장을 하거나 땅에 묻습니다. 3일이 지나면 혹시나 하는 살아 날 것 같은 가능성도 사라집니다. 3일이 지나면 나사로가 혹시 잠깐 정신을 잃은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사라질 때입니다.
유대인들은 당시 문화에서 죽은 당일에 시체를 묻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집트는 시신을 방부처리 해서 보존하지만 팔레스틴 문화에서는 죽은 지 몇 시간 안에 장사지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은 기온이 높아서 부패 속도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금더 중요한 이유를 들자면요. 시체는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시체는 부정하기 때문에 그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빨리 처리하는 겁니다. 신명기 21:23 에 보면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땅 성지를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 때문에 부정한 시체를 오래 두지 않고 바로 무덤에 넣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31 에도 이렇게 나옵니다.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그 시체의 다리를 꺾어서 치워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이렇게 시체를 그냥 두는 것을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죽은 사람을 빨리 묻는 문화가 있습니다.
나사로도 숨을 거두자마자 시신을 씻기고 향유와 몰약 등을 바르고 세마포로 온 몸에 둘러 쌌을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장례 절차입니다. 동굴이나 바위를 파서 무덤을 만드는데요. 그 무덤의 입구는 돌로 막습니다. 나사로는 이 상태로 무덤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장례와 함께 애곡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보통 7일동안 갖습니다. 19절에 보니 많은 유대인이 위문하러 왔습니다. 나사로와 그 가족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좋은 일들을 많이 했었나 봅니다. 사람들에게 식사 대접도 하며 예수님을 많이 도왔기 때문에 나사로의 가족도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회적 관계와 꽤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오니까 예수님의 기적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는 가운데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을 듣고 마르다는 맞이하러 나갑니다. 역시 마르다는 손과 발이 빠릅니다. 행동파입니다.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지만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고 바로 뛰어나갑니다. 예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왜 이제 오셨냐며’ 따집니다. 예수께서 진작 오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거 아니냐며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도 지금은 슬프지만 마지막 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때 만나기를 소망한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마르다는 여전히 먼 훗날 우리가 죽으면 다시 부활해서 천국에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역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가족들임에 틀림 없습니다. 27절에 마르다의 고백은 당시에 누구도 하지 않던 고백입니다. 베드로의 고백과 같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지금 내 오라비는 죽었지만 예수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니 우리가 다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오실 때, 즉 심판의 날에 우리가 다 부활해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갈 때 다시 내 오라비를 만날 것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 고백을 하지만 마르다도 오라비가 지금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활이시고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 안에 생명으로 살아가시면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사는 것이고, 살아 있는 자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예수께서 내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그 삶은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예수의 생명으로 그 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삶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에서만, 먼 미래에 천국에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몸을 다시 살리신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처럼. 우리 삶에 모든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죽은 것이 있다면, 주님의 생명으로 운동력 있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면 다시 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살아나야 합니다. 기도가 살아있지 못하면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예수의 말씀이 새겨지고 움직이도록 살려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면 주의 일을 성실히 섬길 수 있도록 살려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부활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내 믿음이 죽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 없이 살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서 내 믿음을 살려내고, 신앙 생활을 살려내고, 내 삶이 살아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부활의 생명이 움터서 지금 살아가는 내 삶의 터전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고, 내 주변 사람들도 영원한 생명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안에 부활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도 그 생명으로 내 삶이 천국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7. 찬송가 149장
8. 오늘 말씀 가지고 주여 세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