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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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일단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날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가 알 수 없으니, 또한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천년이 하나님께는 하루 같다고 하셨으므로, 우리들에게 종말은 천년 뒤에 올 것같이 여겨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는 것과는 아무런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종말을 개인적인 종말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칸트로부터 시작된 주관주의의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오감이 있을 때에만, 외부의 세계의 존재는 의미를 갖습니다. 눈감고 귀막고 깜깜한 방에 있다면 외부와 나는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끝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한다면, 세상은 나에대해서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종말은 언제나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권면, 바울의 권면, 예수님의 권면이 이 모든 성경은 사실상 영원토록 현재적입니다. 과거의 한 사건이라거나 미래의 어떤 사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과거와 미래가 오늘 우리의 현실과 현재를 변화시키고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물의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으니,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첫 번째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진리를 분별하고, 스스로 삼가(절제)하고,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진리는 어떻게 분별합니까? 바로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오픈 시크릿 등 현대 교회들의 선교적 교회를 각성하도록 도운 분이지요. 제 은사 강영안 교수님이 한 컨퍼런스에서 그 분을 만났다고 합니다. 강연안 교수님이 그 분께 당신은 복음주의자입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분의 답이 나는 복음주의자가 아닙니다. 강연안 교수님은 당신은 전하는 내용들이 복음주의자 같은데, 왜 스스로는 복음주의자가 아니라고 하십니까?
그 분의 대답은 요즘의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주의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권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복음주의자들 자기들의 주장을 성경보다 위에 두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들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오직 복음만을 외치고 있는 것은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들은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됩니다. 이것은 겸손하게 성경을 읽을 때입니다. 내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성경을 읽으면, 내 의도대로 성경이 읽어집니다.
그렇게 성경을 읽으면, 모든 것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하니, 옳은 일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됩니다. 근신한다는 것은 바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도하게 됩니다. 내가 죄 가운데 머무르지 않고 거룩한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서 말씀에 합당하게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어느 정도까지 사랑하라구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을 때까지 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께로만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어,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그 예수님이 나의 죄를 덮어주셨고 용서해주셨어. 이것이 복음이지. 거기까지만 적용하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고 결국 예수님이 하신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9절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는 것은 서로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하라는 것은 Hospitality이고,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것이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원망이 없이 하라는 것은 불평하지 말고 하라는 것입니다.
10절은 교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달란트르 가지고 어떤 사람은 기도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식당 봉사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찬양대와 찬양팀으로 섬기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일로 섬기는 것입니다. 함께 힘을 합할 때에는 함께 하고, 각자가 자기가 맡은 일들을 겸손하게 수종들라는 것입니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 하나님처럼 권위가 있게 말하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듯 하라는 의미입니다.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 하나님이 힘을 주시기 때문에 억지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섬김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특히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권면을 다른 말로 하면 교훈들입니다. 복음과 오늘의 교훈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 제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전혀 복음과 상관이 없는 설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4장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이것은 그분의 육체의 고난, 즉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복음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다시 권면하기를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그리스도의 본, 발자취를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이번 주일에 제가 다시 설교할 것입니다만,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것이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내 마음대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제 죄의 종이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너희 안에 역사하여 모든 짐을 가볍게 해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만을 붙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복음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지를 알려준 것이며, 또한 그렇게 살아가도록 힘과 능력까지도 더해주시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센터처치에서 그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오해한다구요. 복음을 말하면 된다. 아닙니다. 복음은 삶에서 보여져야 합니다. 적용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복음이 예배와 모든 사역에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복음을 체화시키며 세상에 복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영리 책자 손에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내 삶에 적용될 때, 그런 훈련들과 교회 생활이 될 때에 복음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통해 세상에 선포되어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
오늘 초대교회에서 주신 성도의 권면 중에 내가 순종하고 따라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혹시 회개해야할 것이 있든지 아니면 더 성장해야할 부분이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주시고 순종하고 성장하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교회의 리더십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담임목사인 이승혁 목사가 복음과 말씀을 담대하고 정확하고 바르게 선포하게 하옵소서.
토랜스 선한목자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서로 종이 되어서 섬기고 불평없이 서로 대접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환우들과 어려움을 당하는 지체들을 위한 기도
고난 당하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우크라이나-러시아, 홈리스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