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9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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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14–28 (NKRV)
14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15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16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17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18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19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1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22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23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24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25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26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심리학에서 “확증편향”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에 합당하다고 생각이 되면 그 정보를 사실로 가정하여 받아들이게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외부의 정보를 일부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무시하거나 필터링을 거쳐 해석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사람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눈 앞에서 벌어진 사건을 ‘실제’라고 믿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상황을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상황,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았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들면, 길거리에서 거지가 구걸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저 거지는 얼마나 노력도 안 했으면 저렇게 사나”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어떤 사람은 “사회적 시스템이 저런 사람을 만들어 냈다며 안타깝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것을 보지만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쓰러져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쓰러졌던 사람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조사를 하는데 멀리서 지나가면서 이 광경을 지켜본 두 사람의 증언을 듣기로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저 사람이 쓰러진 사람을 목 조르고 가슴을 내리치면서 죽였어요” 라고 증언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 처럼 보였어요. 정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살리려 열심을 다했는데 너무나 안타까워요” 라고 증언을 한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내 생각이 옳은 것 같고, 내 방식이 옳은 것같아 내 주장만을 내세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나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래서 말을 못하던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놀랍게 여겼다의 원어의 뜻은 친창하다, 친송하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말 못하는 사람을 치료한 이적을 본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의 행위에 대해 신기하게 여기며 대단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비판하였습니다.
그래서 메시지 성경에서는 오늘 본문 15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더러는 빈정대며 말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까지 말하였습니다. 바알세불은 악한 영들의 두목이라는 표현으로 사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행 한것이 아니라, 귀신의 왕인 사탄의 도움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라는 표현은 과거 엘리야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에서 기적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기적을 요구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들이 구하는 하늘에서 오는 기적이란 로마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현재 이스라엘의 상황으로 보면 하늘에서 천군 천사가 내려와 로마 군대를 물리쳐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이 자유를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로부터 해방 시켜 주지 않는 이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만 전하셨어도 되었습니다. 말씀만 전하셨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병자들을 고치신 것일까?
그 이유는 먼저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에 예수님이 병든사람을 고치실 때 종종 나오는 표현은 “불쌍히 여겨 입니다.”
Matthew 14:14 NKRV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Matthew 20:34 NKRV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Mark 1:41 NKRV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예수님은 육체의 고통으로 이해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불쌍하기 때문에만 고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과거 선지자들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예언 하였습니다.
이사야 35:5–6 (NKRV)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마을을 돌아다니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만 하시지 않고 병든자들을 고쳐 주신 이유는 과거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병든자들을 고치시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러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되심을 행위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사장을 비롯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기적을 기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들입니다. 그리고 이번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내내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며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바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 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성경의 지식이 모자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만큼 성경에 대해 아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들보다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바램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메시야는 강한 힘으로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야 했습니다. 그정도가 되어야 메시야로 인정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메시야이신 예수님은 그들의 바램에 충족되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절대 예수님은 메시야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보고 들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만 들었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들만 믿었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 예수님이 계심에도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으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여인이 큰 목소리로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처럼 위대하고 현명하신 분을 낳으신 어머니, 곧 마리아는 참으로 복된 여인이라고 하면서 부러움을 표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조금 의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8절 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복은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믿음, 그래서 그 말씀에 순종할수 있는 그 마음이 진짜 복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래서 그 말씀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겨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 삶이 바로 구원을 얻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복 받은 것이 아니라, 복 받았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복받은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루의 시작을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기 위해 이 새벽에 이곳에 모인 우리가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복받은 사람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하루 복받은 사람답게 구원을 얻은 사람답게 기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복을 그 구원을 온전히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주님을 바라봄으로 매순간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혹여나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놓여질지라도 이미 모든 것을 승리하신 그 주님과 동행하며 기쁨을 빼앗기지 않고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오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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