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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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부르심 그대로
고전 7:17-24
1. 서 론
미국 감리교 출신인 스탠리 존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1884년에 태어나 1972년까지 선교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평생 인도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그가 쓴 책 가운데 <디바인 예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69세 때 선교지에서 중풍에 걸려 본국으로 돌아와 쓴 책입니다. 디바인 예스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언제든지 “예”라고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 있으면서 간호사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아침에 나를 보러 올 때 ‘굿모닝’이라고 하지 말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해주겠어요? 그는 매일 ‘일어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어요. 간호사는 당황했지만 선교사의 부탁대로 매일 아침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외쳤습니다. 결국 그는 연로하여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의료진의 예측을 뒤엎고 5개월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건강하게 사역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2. 본 론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자신의 자리에 부르심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환경이 어떻든지 간에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일어나기를 선포했습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부르심과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앞과 뒤 문맥에서는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뤄지고 있습니다. 앞 문맥은 7장 1절-16절, 뒷 문맥은 7장 25절-40절입니다. 앞 뒤 문맥을 요약하자면, 바울은 각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로 독신 생활이나 결혼생활을 감당하라고 합니다.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로 어느 한 쪽이 도덕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둘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사용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두 내용의 핵심은 각자 그 상황에서 그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이 말씀에서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라고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바뀔 때도 물론 있습니다. 그것 또한 부르심의 일환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나 혹은 변화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합당할 수 있다고 바울이 말하는 겁니다.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행하라는 겁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거나, 포기해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각 사람’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사역으로, 때론 직업으로, 능력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제 18절에서부터 예시를 통해 이해를 더욱 돕고자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를 들어 말하기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할례 의식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관 관계를 맺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할례가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할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는 할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관습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할례와 관련된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하나님과 맺는 언약의 징표였지만, 헬라인들은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하는 표시로 할례를 비하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에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할례 표시를 제거하려는 수술을 하려고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19절에서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라는 말로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할례 표시를 제거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도 굳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 모습 그대로를 잘 간직하면 됐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외적인 변화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나의 내적인 변화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었죠. 바울은 이 모든 상황을 20절에서 이렇게 정리를 하며 말
합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 모두에겐 하나님의
부르심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지내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있다면 하나님을 위해 더 멋지고 근사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착각에 빠져서 엄청난 기회들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더라도 이제까지 해오던 그 일을 하라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외적인 놀라운 변화를 요구하시기보다, 그 자리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순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모든 직업은 그리스도인의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20절에서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라는 표현은 유지하라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원어로 보게되면 지내라라는 뜻이 ‘remain’입니다. 즉 그 자리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자리를 유지할 때 ‘부르심 그대로’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 자리를 사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아직도 콕콕 찌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내 상황으로 부르신 것이 맞을까? 부르셨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꼴이지? 좋은 상황과 환경으로 불러주셔야지 이 환경에서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일을 맡길 때 나름대로 준비물을 갖춰서 일을 시키는데, 하나님은 아무런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이 자리로 나를 왜 부르셨지에 대한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21절에서 이에 대하여 명확하게 답을 합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바울 당시에는 노예 제도가 로마 제국 전역으로 보편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 중 대다수가 주 안에서 부름 받았을 때 종의 신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비록 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무서운 죄의 속박과 굴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함을 얻은 주께 속한 자유자의 삶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종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환경과 삶은 비록 자신들을 속박하고 있다 한들,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은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백성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양자 삼아주시고, 칭의를 통해 의롭다 여겨주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 삽니다. 이 부르심은 연속적인 과정에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았을 때의 부르심과 내 삶의 자리에서의 부르심은 어디까지나 구원과정과 일맥상통하며 연속선 상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여기까지고 내 삶은 여기서부터라는 선을 그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면 우리의 삶의 자리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간 자리라면 그냥 박차고 이탈하면 되겠지만 하나님이 나를 꽂아둔 자리이니 함부로 나올 수 없스빈다. 그 자리를 사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값을 주고 나를 사셨습니다. 이제 나는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소유에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면 쓰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환경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이 값을 주고 나를 사셨으니 그 자리로 보내신다면 나는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좋은 환경이거나, 내가 준비되었을 때만 부름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아직 준비가 안돼서요 준비가 되면 할게요“ 죽을 때까지 준비 못하고 죽는게 우리입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내가 준비가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모두 준비시켜주시고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회복의 은혜> 저자이신 이재기 목사님의 글을 잠시 인용하고자 합니다.
『주님이 위임하신 사명에 헌신한다는 것은 또한 주님께서 부르시고 나를 인도하심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이건 유다건 사마리아건 땅 끝이건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면 나는 그 부르신 곳에 가야 하며 있어야 하며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처럼 제자들에게 적대적인 곳이든 유다처럼 황량한 곳이든 사마리아처럼 편견과 갈등이 있는 곳이든 땅 끝처럼 멀고 낯선 곳이든 주님이 부르신 곳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사람이 선교사라는 말은 옳습니다. 물론 안전 지역을 과감히 떠나 낯선 곳에 간 선교사들을 우리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이 자리에 머물라고 하시면 우리는 여기서 최선을 다해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로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스스로를 2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서건 증인이 되는데 헌신하지 못하면 그것이 2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2류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이유 불문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향하여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바울은 17절에서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20절에서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3절에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라는 세 가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애써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 스스로의 신앙의 발전을 하지 말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할례와 같은 다른 비본질적인 것에 몰두하지 말고 본질을 위하여 그 자리에서 힘쓰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본질 때문에 우리가 그 자리로 왜 부름받았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을 지키면서 그 자리의 부르심을 늘 기억하고, 잊지 않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며 자신의 신앙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젠 우리가 지금 잘못된 자리에 있다고 단정하거나 잘못된 사람에게 얽매여 있다고 속단하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르신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퍼즐조각과 같이 내가 꼭 맞는 자리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결 론
24년도를 지나면서 우리가 속한 자리에서 그대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기쁨이요, 내 신앙의 성숙이 이뤄지는 24년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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