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1 수요강론: 왕하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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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 오늘도 저희를 수요강론으로 부르셔서 말씀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살아가는 동안 주의 말씀을 듣고 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를 향한 그 하나님의 마음이 날카롭고 차가운 마음이 아니라 언제나 저희를 사랑하시고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을 향한 저희의 사랑도 날마다 커지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는 많이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기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서 날마다 말씀을 주셔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수요강론을 통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을 열왕기하 5:1-15 의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5:1–15 NKRV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수요강론에 오시면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앞으로 4주 동안 제가 지난 신대원에서 배웠던 것들을 오늘부터 다음 주에는 설교로, 나머지 2주는 강의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질문 한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만일 위급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예를 들면 집안에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왔다거나 병에 걸렸는데 고칠 방도를 찾지 못하다던가 말입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위기를 벗어나려고 할 겁니다.
또 만일 여러분 주위에 이런 위기를 맞은 사람이 있고 여러분이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방법은 자신의 자존심을 굽혀야 하는 방법이고, 그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그 방법을 쓰기 싫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줬는데도 자존심 때문에 하기 싫다는 모습을 보고 아마 “지금 자존심이 문제인가?”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나아만이 이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나병에 걸린 아람 장군 나아만에게 오늘 본문은 나병에서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는데도, 나아만은 푸대접을 받고 자기가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인 일하심으로 나아만을 구원하시는데요. 오늘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시는지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다스리던 때에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의 주요 국가인 아람은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였던 시기입니다. 열왕기상 20장 에서 이스라엘과 아람이 전쟁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주요 인물은 선지자 엘리사와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1절에서 먼저 나아만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고, 아람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존귀한 자라는 말은 원래 “얼굴을 올린다”입니다. 이것은 왕이 신하의 얼굴을 들어올린다는 뜻인데, 당시 신하는 왕 앞에 엎드려야 했기 때문에 왕이 신하의 얼굴을 들어올린다는 것은 왕이 신하를 존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나아만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뛰어난 재능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1절 중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아람에게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방국가의 승리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겁니다. 이 일을 주관하신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을 향한 다른 계획도 있으셨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나아만이 큰 용사이지만 동시에 나병환자였다고 소개합니다. 나아만이 가지고 있는 나병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주제가 됩니다.
당시에 나병환자는 신의 진노가 내려진 병이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아만은 아람에서 큰 용사이며 존귀한 자이면서 신의 진노를 받았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나아만은 얼른 이 병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람에서는 도무지 방법을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3절에서 나아만 집안을 수종들던 어린 여종이 나아만의 아내에게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분은 그 나병을 고칠 겁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독특한 것은 이 어린 여종은 2절을 보니까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입니다. 자신을 이방 나라로 끌고와서 종으로 삼은 집을 돕는 이 모습. 참으로 놀라운 장면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포로로 잡혀갔지만 이방 나라를 위해 일한 다니엘, 모르드개, 에스라, 느헤미야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들은 이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보내신 그곳에서 최선을 다했던 자들입니다. 아마 이 어린 여종도 자신이 부당하게 잡혀왔음에도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주인인 나아만을 돕습니다.
이 어린 여종의 말을 듣고 나아만은 사마리아에 가는 것을 허락받기 위해 아람 왕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 여종이 한 말을 그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라는 말로 축약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나아만에게 여종의 말을 전한 장면도 생략해버립니다. 아마 저자는 나아만의 현재 상황이 절박한 상황임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급박하게 전개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아람 왕은 허락하고 이스라엘 왕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합니다. 이스라엘에 갔을 때 이 사람은 왕이 보내는 사람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인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신의 내용이 담긴 6절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 그리고 옷 10벌을 챙기는데, 이것들은 나중에도 말하겠지만 엘리사에게 줄 선물들입니다. 이 당시에 옷은 굉장히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달란트, 금과 함께 옷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이 당시에 선지자에게 예물을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왕의 서신과 선물들을 챙기고 나아만은 사마리아로 떠납니다.
사마리아에 도착해서 나아만은 왕의 서신을 이스라엘 왕에게 건내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왕은 그 서신을 읽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아만의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왕은 적대관계인 아람 왕이 의도적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인 나병을 고치라고 하고, 그것도 군대장관을 보낸 것을 고치지 못하면 군사를 보내 공격하겠다는 어떤 정치적 술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신하들에게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아람 왕이 나에게 싸움을 벌일지 지켜보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 왕의 이런 반응.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한 말처럼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에게로 환자를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를 다르게 부를 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고치실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짜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죽음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은 정치적 술수가 있다는 의심만 할뿐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오히려 포로로 잡아온 여종의 말만 믿고 온 나아만과 그를 보낸 아람 왕보다도 더 못한 믿음을 보입니다.
그러자 이 이야기를 엘리사가 듣게 되고, 왕에게 “어찌하여 통탄해하십니까? 그를 저에게로 보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이스라엘에만 선지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참 선지자임을 알게 된다는 것, 즉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의도적으로 이것을 읽는 독자들에게 나아만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제 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아만은 9절에서 엘리사 집 문 앞에 서서 그를 맞고자 합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문을 열어 그를 반갑게 맞이하고 어떤 제의적인 방법을 통해 나병을 낫게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나을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10절을 보시면 엘리사는 자신이 직접 맞이하지 않고 사자를 보내 자신의 말을 대신 전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그리하면 너의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될 것이다.”
이 상황을 마주한 나아만은 화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나는 선지자가 직접 나에게 와서 그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제의적인 방법을 통해 나병을 고칠줄 알았더니. 이게 뭐냐! 아니, 아람에는 강이 없는 줄 아나? 심지어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보다 깨끗끗한데 거기서 몸을 씻으면 안 깨끗해지겠느냐!” 라고 말입니다.
바로 자신은 아람 왕에게 존귀를 받고 큰 용사이며 선지자를 위해 귀한 선물들도 챙겨왔는데도 선지자가 직접 나를 맞으러 오지도 않고, 제의적인 방법을 사용할줄 알았더니 그냥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 말만 합니다. 심지어 요단 강보다 더 깨끗한 강이 아람에도 있는데 말입니다. 실제로 요단 강은 탁류였고, 다메섹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발 강으로 추정되는 현재 시리아의 강은 헐몬산에서 눈이 녹아 내려오는 아주 깨끗한 강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나아만은 엘리사의 이런 행동을 아주 모욕적이라고 받아들이고 분노합니다. 그래서 아람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엘리사가 의도한 것은 나아만이 자신의 병이 낫게 되는 것은 엘리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고, 제의적 방법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낫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게 됩니다. 여기까지 본다면 이제 나아만은 계속 나병에 시달리면서 비참한 인생을 계속 살아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앞날은 여기서 끝인 걸까요?
하지만 반전이 일어납니다. 나아만과 함께 온 종들이 나아만을 돌아가려는 나아만에게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다면 행하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보다 쉬운 일인 강에서 몸을 씻어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라며 나아만을 만류합니다.
이 만류하는 종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말대로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씻으러 갑니다. 그렇게 요단강에 몸을 담고 한번, 두번 씻고 세 번, 네 번째 씻습니다. 그런데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차도가 보여야 희망을 품고 계속할텐데 차이가 없으니 의심이 될 겁니다. 그래도 믿고 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섯, 여섯, 일곱번째 씻었는데 놀랍게도 나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심지어 나병이 나은 정도가 나병이 생기기 전의 피부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보다 잘 살고 강성한 나라인 아람에서조차 나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성경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모든 제의적 방법을 동원해서 고치고자 했을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 나병이 나은 것을 보니 그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나아만은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아만은 이제 아람에서 믿던 림몬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 신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나아만이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오늘 본문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하나님께서 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절대 주권으로 아람에게 승리를 주시고, 그에게 나병을 허락하시고, 이스라엘 여종을 통해 엘리사로 인도하시고, 엘리사를 통해 말씀을 보내시고, 나아만의 종들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게 하심으로 나아만의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가치와 생각, 즉 아람에서 왕으로부터 존귀를 받고 큰 용사라 불리는 정체성과 자존심, 그리고 아람에서 흔히 행하던 제의적인 방법을 통한 치유가 하나님 앞에서 와장창 깨졌습니다. 나아만은 17절에서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종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엘리사를 통해 말씀으로 치유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 유일한 참 신이십니다. 현대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신을 믿고 있지 않거나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대와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다 신을 믿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현대에는 우상을 만들거나 어떤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어떤 형태나 알라와 림몬과 같은 특정한 이름을 가진 것만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고 믿은 이유는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라 여기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가 가장 중요했던 시기에는 농사가 잘 되게 해주는 신을 믿었습니다. 가나안의 신인 바알이 바로 풍요의 신이죠. 또한 사람들에게 빛을 제공하고 농경에도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태양에도 신을 만들어 이집트는 태양신 ‘라’를 믿었습니다. 이처럼 신을 믿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두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현대인들도 신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이지 많은 것들을 자신의 최고의 가치로 두며 신으로 믿고 살아갑니다. 그 신들의 이름은 돈, 사랑, 명예, 권력, 외모, 쾌락입니다. 요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골라보시기 바랍니다.
감옥에 1년 갔다오면 10억을 준다에 간다/안간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많은 이들이 ‘간다’를 선택합니다. 감옥에 간다는 것은 어떤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이고, 인생에 빨간줄이 그인다는 뜻인데도 많은 이들이 간다를 선택합니다. 심지어 “안 가는게 바보 아닌가”라고 말하거나 “연봉이 10억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이 선택을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숭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단순히 안 간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정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돈에 대한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깊게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세상의 참 신은 돈, 그리고 다른 어떤 것들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참 신이십니다. 세상은 돈이 다스리는 것 같고, 외모나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각광받을지는 몰라도 이 세상을 이끌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심지어 이스라엘과 적대 국가인 아람에게 승리를 주신 것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숭배하는 많은 것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상 숭배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시기 위해 우상을 숭배해서 받아야 할 모든 벌을 자신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는 다시 이 세상에서 신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는 영적 나병인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칼빈의 말처럼 우상을 끊임 없이 만들어내는 우상 공장인 인간의 마음을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성소로 바꾸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방 나라, 심지어 이스라엘과 적대 국가인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에게 있던 나병을 엘리사를 통해 말씀을 주심으로 치료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나아만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현대인들은 돈, 권력, 명예, 외모, 쾌락 등 많은 것들을 자신의 신으로 두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참 신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가 믿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십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이 세상의 진정한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을 믿고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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