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막으리요 1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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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막으리요 1 본문: 사도행전 11:1-6 찬송: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본문은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 드렸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읽은 그대로 몇몇의 사람들이 베드로를 비난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복음을 최초로 전한 사람은 베드로가 아닌 빌립 집사였다. 그럼에도 빌립 집사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았고 베드로는 비난을 받았다. 그 이유는 빌립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유대 광야 길에서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 간다게를 만나 세례를 베풀었다. 빌립은 초대교회 성도들에 의해 세워진 집사였지만,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헬라 출신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일이었다. 이 일이 알려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도 걸렸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다. 초대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다. 욥바에 사는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을 찾았다. 비공식적인 방문이 아니라 공식적인 방문이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함께 따라온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까지 내렸다. 이방인들과 교제를 하는 것은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순종했다. 이방인을 만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는 일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의 명령을 따랐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땅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관습을 따랐고, 또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이 가지고 있는 참 뜻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다녀온 것을 가지고 그를 비난했던 것이다.
본문 1절을 보면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라고 말한다.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도와 형제들이 고넬료의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었다. 소문이 전해지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의 거리와 당시 교통수단의 형편을 생각해보면 베드로는 상당히 여러 날을 고넬료의 집에서 머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모든 사역을 마치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으로 복귀하여 그동안의 사역을 보고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베드로의 사역 보고를 냉랭한 마음으로 받아 들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유대인인 베드로가 이방인 그것도 로마 제국 백부장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한 일을 모든 사람이 비난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1절에서 베드로의 사역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사도들과 형제들”이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난한 사람은 2절을 보면 그들 가운데 있는 “할례자들”이었다. 누가는 당시 상황을 교회의 지도자들과 대부분의 성도들은 복음의 전파가 이방인들에게도 일어난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였지만, 아직 유대의 전통에서 벗어지나 못한 몇몇의 유대출신 성도들이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모두 정통 유대 출신이었다. 비록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지만, 유대의 전통을 지켜야 온전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나중에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에 퍼져서 교회가 화합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8 에서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말하며 예수를 믿어도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지만 구원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할례자들은 베드로를 행해 3절에서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서 먼저 “무할례자”는 이방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자신을이 할례를 받은 사람이란 우월감을 가지고 살았다. 사람의 몸에 행해진 할례가 택함받은 민족의 표식이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무할례자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택함받은 민족의 표식이 없는 부정한 자, 야만인과 같은 그런 존재로 생각되어졌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철저히 꺼렸다. 복음서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부정하다 생각되는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막 2:16; 눅 5:30; 15:1-2; 고전 5:11; 갈 2:12). 고대 근동지방의 음식 문화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상대와 정체성을 동일시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나 부정하다 생되는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이방인과 음식을 먹는 것을 그들과 영적인 교제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것을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했다. 다니엘이 바벨론 왕의 진미를 거부한 것(단 1:8-9)은 이와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일이다.
황원하, 사도행전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ed. 변종길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19), 263
이들이 베드로를 비난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비판을 들으셨을 때 유대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하셨다(막 7:1-23). 오늘 베드로를 비방한 이들이 바로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바새인과 서기관과 다를바 없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은 은혜로 인하여 우리에게 허락된 선물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2:8-9 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했다. 구원은 결코 행위가 우선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믿고 받아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로 하여금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천하 만민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을 받은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저 그들을 선택해 주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신명기 7:6–7 에서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전적인 결정이었다. 그들은 화련한 문화를 가진 자들도 아니었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도 아니었고, 넓은 영토를 차지한 제국을 이룬 민족도 아니었다. 그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고향을 떠난 작은 부족장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 그들은 작고 미비한 자들이었다. 그것이 하나님께 택함받은 이유가 되었다. 신명기 7:7 의 적다는 말은 “너무 적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얼마나 그들의 존재가 나약했는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가운데 택함받은 민족의 증표로 할례를 행하게 하신 것이다. 우월의 표식이 아닌 겸손과 순종의 표식이 할례이다. 하나님께 택함 받았으면 응당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할례의 증표가 있는 것으로만 만족했다. 그리고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월감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육체의 할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롬 2:29).
본문에서 베드로를 비난한 할례자들은 완전히 자아도취에 빠진 교만한 자들이었다. 자존감이 높은 것이 아니라 교만으로 그들의 마음이 충만했다. 그들은 자격이 있어서 유대인들 가운데 먼저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그 할례자들도 진정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날이 다르다. 어떤 분은 수십년 전에 만났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수년 내에 만났을 수도 있다. 먼저 만나고 믿게 된 것은 분명한 은혜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보다 늦은 사람 앞에서 우월한 것이 될 수는 없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 에서 포도원 품꾼 비유를 통해 먼저 온 자나 나중에 온 자다 다 동일하게 주인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고, 그리고 그것은 주인의 절대적인 권한이라고 했다.
구원의 자격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여서 함께 말씀을 듣고 나누며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선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 발걸음을 이끌고 나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허락 될 때만 가능한 일들이다. 만약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내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거나, 내세울 만한 자기 공로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본문 속의 어리석은 할례자와 같을 뿐이다.
하나님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그와 그의 가정이 구원을 받게 해주셨다. 우리의 공로가 어디에도 개입한 곳이 없음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하며 이 귀한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언제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드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기도 -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었고, 또 우리의 범죄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것인도 모르고 살았던 저희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을 통해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구원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은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같은 자들도 구속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해 주옵소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살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에 늘 감사와 찬송과 봉사로 화답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해주시고, 먼저 믿은 자로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주며 서로를 세워주고 섬기는 그런 공동체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구원의 감격이 넘치는 교회, 언제 복음을 전하는 교회, 모든 영혼이 쉼을 얻을 수 있는 복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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