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 2:1-17 / 낭실과 제단사이에서 마음을 찢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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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들어가면서
지난주에 요엘서 1장을 살폈습니다.
요엘서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무후무한 일을 겪고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을 봅니다.
나이 많은 원로들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 농사짓는 사람들, 그 세대 모든 사람들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재앙을 경험
바로 메뚜기 떼의 습격
이 습격 앞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1.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반성적인 성찰을 해야 한다.
2. 반성적 성찰을 통해서 우리의 무너진 현실을 자각한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3. 회개 이후에는 기도의 간절함이 회복되어야 한다.
오늘은 2장을 살핍니다 2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바로 여호와의 날이라는 단어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과연 어떠하길래 요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히 그 날을 두려워하라고 할까요?
1. 여호와의 날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
1. 여호와의 날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
먼저 요엘서 2장 1절부터 3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묘사입니다.
요엘 2:1–3 (NKRV)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시온에서 나팔 소리를 붑니다. 아마도 이 소리는 성벽에서 감시할 수 있는 높은 탑을 의미하는 것 / 곧 경보 사이렌이 울리듯 나팔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이것은 기쁨의 나팔소리가 아닙니다.
거룩한 산 곧 예루살렘에서 울려퍼지는 경고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듣는 모두가 다 두려워 떱니다. 곧 이 날이 여호와의 날이고 곧 임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날에 대한 묘사 : 어둠고 컴컴한 날 / 짙은 구름이 덮인 날 / 새벽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다고 합니다.
곧 컴컴하고 어두운 날, 심판의 날로서 딱 맞는 이미지가 보여집니다.
거기다 이 심판의 날에 임할 불은 모든 것을 다태우고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첫째로 이 부분은 먼저 1장에 언급된 메뚜기 재앙을 새로 묘사한 것이거나 새로운 메뚜기 재앙에 대한 예언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앗수르나 바벨론과 같은 이방 군대(‘북쪽 군대’-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의 예언 속에서 발견되는사 14:31; 렘 6:1,22; 겔 26:7; 38:15)의 침입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대적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하늘 군대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난주에 요엘서 저작 시기를 말씀드릴때 이스라엘이 바벨론과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에 쓰였을 수도 있고,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 때 성전과 성막 완공 직후일 수도 있고 / 심지어 말라기 이후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중에 두 번째 해석이 맞는다면 요엘의 시대는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키기 전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느 해석이 맞든지 이 말씀은 메뚜기 떼로 묘사 혹은 비유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요엘 2:10 (NKRV)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이들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은 우주적인 현상까지 동반한다(10절). 그만큼 ‘여호와의 날’의 무서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
여기에 더 살펴보면 4절부터 9절은 이 막강한 세력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묘사합니다.
요엘 2:4–9 (NKRV)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 오르며 도둑 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이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여호와의 날의 심판의 도구, 이것이 메뚜기 떼이든, 강력한 이방민족이든
이들은 그 땡 당시 최고의 전투력과 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달리는 기병, 산꼭대기를 휘젓고 다닐만큼 튼튼한 병거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 - 큰 불이 일어 났을 때 산 전체를 다 태우는 광경을 생각해보라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해도 얼굴이 하예진다고 한다.
그들이 용맹하게 성을 정복하고, 성 안을 휘젓고 다니면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다.
일사분란하고 민첩하게 성을 점령하는데, 성벽은 물론 온 데를 뛰어다닙니다. 가히 전무후무 무서운 세력들입니다.
(브릿지) 여러분, 우리가 가끔 국가적인 재난이나, 참으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광경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볼 때, 그런 뉴스들을 들을 때, 우리는 그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날의 이 준엄한 심판을 시행하시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그 날은 돌이킬 수 없는 어둡고 캄캄한 날 절망스러운 날이 됩니다
(적용) 여러분, 우리도 바로 이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다, 크고 두려운 날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말씀합니다. 그날이 언제 입니까? 주님이 다시오시는 그 날입니다.
그날이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그 징조를 보게 될 것이라 예수님이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15–21 (NKRV)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 주님 다시 오시기 전에 일어날 징조를 말씀하셨는데, 그 심판의 날이 정말로 두려운 날임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는 다 도망하야 합니다. 피할 곳이 있을 곳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겨울을 나기도 힘든 날입니다.
이 날에서 대해서 21절에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여호와의 날이 임하기 전, 우리는 종말의 시기에 대한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23–24 (NKRV)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적용) 여러분, 이 요엘서의 경고의 말씀을 우리 삶에서 지켜낼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거짓된 가르침을 믿어서도 안되고, 거짓 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 곧 이단적인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이처럼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날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구원의 길에 설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들은 속히 돌이켜야 이 진노의 환난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집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일들을 볼 때마다, 주님 다시 오심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경각심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 진로의 환난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의 날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2. 여호와의 날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은?
12절부터 마지막 절은 이 크고 두려운 날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요엘 2:12–17 (NKRV)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첫째, 애통하는 마음, 통회자목하는 마음, 마음을 찢는 진실된 반응이 필요합니다.
12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요엘은 단순히 심판만 선포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요엘을 통해 금식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특히 금식은 적어도 구약 시대에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일년에 한 번 있는 대속죄일입니다.
레위기 16:29–31 (NKRV)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 공식적인 금식일 외에 나중에 유대인들은 정기적인 금식으로 자신들의 경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 사회의 신앙의 표준모델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설교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의 관습을 따르지 않으시고 비정기적인 금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금식을 행하라고 할 때는 철저히 회개해야 할 죄들이 있을 때 일반적으로 행해졌습니다.
특히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 재건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스가랴 7:1–7 (NKRV)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스가랴는 금식이 나를 위한 것인지 돌아보라고 합니다. 금식 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금식과 같은 제의적인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스가랴 선지자는 성문에서 정의를 행하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스가랴 7:9-10)
그래서 금식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해결책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금식하고 애통해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은 철저히 회개하라는 것, 진실되게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르 ㄹ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돌아 오면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시겠다는 겁니다.
(적용)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가감 없이 진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과 우리의 모든 생각과 모든 행실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 앞에 숨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너무도 감사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마음을 찢고 주님께 회개하며 나아가면 그 분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겁니다.
우리 개인의 죄가 있다면 철저히 드러내야 합니다 / 우리 공동체의 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야 합니다. 이 고통의 과정이 없이는 나 자신이 새로워질 수 없고, 공동체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고 진실되게 회개하며 진실되게 간구할 것을 말씀합니다.
둘째, 공동체 남녀노소가 통회자복하되, 철저하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1장의 결론이 철저한 통회자복이라 했었습니다. 요엘은 여기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요엘 2:15–17 (NKRV)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거니와 나이든 사람 심지어 신혼부부 신랑 신부 첫날 밤 보내고 있는 이들까지도 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일에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은 어떻게 회개합니까?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회개합니다. 회개하는 내용이 17절이지요?
요엘 2:17 (NKRV)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이들이 이렇게 처절하게 회개하는데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회개합니다.
낭실은 성전의 현관을 의미합니다 제단은 그 현관 앞에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제단이 있습니다. 이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제사장들이 제물을 잡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들이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회개하며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장에서 살폈듯이, 이 제단에서 드릴 수 있는 제물이 이제 없습니다. 메뚜기 떼가 모든 것을 갉아먹었기 때문에 제물로 드릴 짐승들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울며 회게하는 것입니다. 곧 사명을 다 할 수 없는 현실을 애석해 하는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삶의 현장이 상실될 때의 그 상실감을 아십니까? 얼마전에 충남의 어느 시장에서 큰 불이 났었습니다. 뉴스에도 났었지요.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그 분노와 통곡을 봅니다. 그 뿐입니까? 재난에 처하여 집을 잃고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을 우리는 압니다. 오랫동안 직장에서 일하고 퇴직할 때의 그 상실감도 큽니다. 제가 우리교회 오기 전에 직전 교회에서 사역을 마치고 한 4개월 쉬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 때 청빙준비를 했지요. 그 과정도 밟았구요.
그런데 그 4개월의 시간 중에 처음 몇주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때, 사실 기대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 허탈감과 상실감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생활하던 곳을 잃게 되면 그 상실감이 크다는 것을 그때 몸소 체험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처절하게 울고 회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 할 수 없으니 우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 제사장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사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십시요. 사명자에게 사명이 사라지면, 삶이 희미해집니다. 사명을 다하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도 희미해지고, 내 삶의 목적도 희미해집니다. 사명 없이 살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처럼 울고 불고 애통해하는 현실이 펼쳐질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나에게 사명이 주어져 있다면 감사하십시요. 그 사명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요. 하나님이 다시 사명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 삶이 희미해지고 오히려 더 침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울며 회개하는 순간이 생길지 모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제사장들이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회개하는 이유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울며 회개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현실에 대해 개탄해하며 회개합니다.
요엘 2:17 (NKRV)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성경전서 새번역 (2장)
주님의 소유인 이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통치를 받는 수모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세계 만민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조롱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때문에 개탄해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수모는 곧 하나님이 받으시는 수모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하나님이 조롱받으시는 것이기에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려는 현실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울부 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회개하며 나갈 때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현실에 대해 개탄해하고 분개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만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앞과 뒤가 같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한 것 처럼 보이나, 사회에서는 엉망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의 이율배반적인 모습때문에 저사람 하나님 믿는 사람 맞나? 저런 사람이 예수 믿으면 나는 예수 안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결 론
결 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되면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인데 이 땅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영적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또한 형식만 남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진실된 회개와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살도록 명령합니다.
이 교훈을 마음에 새겨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거룩한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