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받을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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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자신의 서신을 읽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 토랜스 선한목자교회는 사랑이 이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여러번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미워할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그렇게 해왔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밟고 무시해야 내가 높아지고 내가 이익을 누리는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그런 구별을 잘 합니다. 한국에서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일반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무시한다고 합니다. 같이 놀지도 않고, 무시하고 차별한다고 합니다. 놀이터도 못쓰게 하고, 심지어 어느 곳에서는 도로도 이용을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은 모두가 자기가 왕 혹은 신이 되고자 합니다. 니체가 말했듯 권력에의 의지가 세상을 다스리는 가치관입니다. 자기의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고픈 욕망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말을 더 잘 듣고, 나를 따라하고, 나를 칭송하고 나를 위하는 것을 최고의 성공으로 여기는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정말 어려운 일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 심지어 죄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죄를 사랑으로 품으라는 것은 죄를 없던 일로 무시하고 덮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권면하고 돕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가장 존경 받을만한 분 중에 한 분입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독립운동을 지지하면서 감옥에서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셨고, 해방된 후 감옥에서 나와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셨습니다. 1948년 여순반란 사건 때에 좌익들이 사람들을 잡아서 죽일 때에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이 그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합니다. 그 두 아들을 죽인 안재원을 구명운동으로 사형에서 건져내고 자신의 양자를 삼았습니다. 1950년에 공산군이 여수까지 내려왔을 때에 애향원에 있는 양떼들을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보여준 사랑, 그것이 오늘 베드로가 우리에게 말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분노와 원수까지도 품어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 대한 사랑으로서 권면합니다. 그들을 윽박지르거나 꼭 그렇게 해야만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는 것으로는 베드로가 성도들을 사랑하였기에 그들의 정말 옳은 길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로 당하는 일들을 고난당한다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행위들을 조금 더 확장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저는 단지 실제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죽게 만드는 그러한 행위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이 죽음과 같은 시간을 보내도록 만드는 모든 악행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왕따시키고 괴롭히고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있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가 하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 취급한다는 것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도둑질도 옛날에는 다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가는 것 혹은 빼앗는 것이라고 생가했다면, 오늘 날에는 다른 사람의 지적 재산을 빼앗는 것,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이 모두 도둑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것도 도둑질이고, 다른 사람의 임금을 착취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도 도둑질이고, 참 많은 것에서 우리는 도둑질을 할 수 있습니다.
악행이라고 말하는 것도 모두가 다른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 이 때에 간섭한다는 것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하게 돕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내 뜻에 맞게 맞출려고 하는 것이지요. 얼마전 새벽예배 때에 말씀드린대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의미로 간섭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인간이 할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않됩니다. 월권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쁜 의미의 간섭을 너무나 잘 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감나와라 배나와라 말합니다.
선을 행하면서도 스스로 자랑하지 말 것입니다. 선을 행하면서도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겉모습만 보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 자체를 보고 판단합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도 또 다시 미쁘신 창조주께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더욱 의지할 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해지며 더욱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고난의 길처럼 보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복된 길이요 즐겁고 기쁜 길이요 영광스러운 길이 됩니다.
<기도제목>
악을 버리고 선한게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삶에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옵시고,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토랜스 선한목자교회의 리더십을 위한 기도
토랜스 선한목자교회 성도 모두가 선을 행하며 소망 가운데 걸어가도록 기도
환우들을 위한 기도
주일에 있을 선교 찬양예배를 위한 기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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