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2 설교

28차 하임캠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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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니느웨인가요

여러분 오늘 28차 하임 캠프를 위해 이자리에 함께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2024년이 얼마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한달이 지나 2월을 맞이하게 되었죠? 참 시간이 빠른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늘고에서 설교하면서 올 한해를 시작하며 각자가 여러가지 계획들을 갖고 있을텐데, 모든 것보다도 가장 먼저 주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구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가장 좋은 기회가 바로 이 캠프의 시간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오늘부터 2박3일간 더욱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캠프의 자리로 나아갈텐데요, 캠프로 나아가기 앞서 가장 먼저 주님과 가까워지려면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겠죠?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가지고 캠프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자. 여러분, 이번 캠프 주제 말씀이 어떤 성경인지 아시나요? 바로 요나서입니다. 여러분들 요나서 한번씩은 다들 보셨죠? 분량도 4장으로 그렇게 길지 않아서 아마 다들 잘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들 보자마자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같은 경우는 참 요나가 나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지만, 인간적인 마음으로 거부하는 모습들이 어쩌면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아 주님 이것만은 안하면 안될까요?’라고 생각하는 모습들이 요나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들도 비슷하게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요.
바로 왜 요나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려 하였는가. 니느웨가 이방민족이니까,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어!! 우리만 구원받아야해! 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던 것일까요?
아마 말씀을 읽으면서도 우리가 요나의 불순종과 그 이후의 이야기에만 포커싱을 하였기 때문에, 어찌보면 그저 그 불순종이 요나의 이기심이나 변덕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요나가 그렇게 불순종을 하는 것의 배경에는 조금 더 심오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 요나서를 바라본다면 조금 더 요나의 마음과, 또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시는 말씀들이, 그것을 모를 때와는 사뭇 다르게도 느껴질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개회예배 말씀을 통해 우리가 본격적으로 요나서를 바라보기 전에, 그 배경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체 왜 요나는 니느웨를 가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요. 그리고 대체 왜 하나님은 니느웨로 요나를 보내시고자 했던 것일까요.
우리 함께 말씀을 보면서 그것에 대해 함께 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우리가 요나의 깊은 속 생각을 알기 전에, 먼저 요나가 그렇게 싫어했던 니느웨가 어떤 곳인지를 간단하게 알아보고 들어가볼게요.
일단 니느웨는 우리가 요나서에서 보았듯이, 하나의 성입니다. 즉 도시라는 것이죠. 그러면 어느 나라의 어떤 도시일까요. 바로 앗수르 제국의 수도가 이 니느웨였습니다.
그렇다면 니느웨를 수도로 하는 이 앗수르 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아마 여러분들이 고대의 역사를 공부하셨다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일텐데요, 바로 앗시리아 제국입니다.
보통 서양에서 고대 제국의 순서를 이야기할 때, 앗시리아, 바벨로니아, 헬레니즘 그리고 로마로 이어지는 순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고대 제국들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 앗시리아, 앗수르 제국이라는 거에요.
자 그렇다면 이 앗수르 제국이 요나랑 어떤 관련이 있었길래, 요나가 이 앗수르제국과 그 수도인 니느웨를 그렇게 싫어하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시간을 많이 앞질러 가서 이스라엘 분열왕국 시기까지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분열왕국 하면 어떤 나라가 있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있죠. 솔로몬 이후 나라가 죄악에 물들면서 북과 남으로 갈라졌고, 갈라진 이후에도 북과 남 왕국에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른 이들이 넘쳐났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 남유다의 경우에는 그래도 말씀을 따른 왕들이 간혹 있었지만, 북이스라엘의 경우에는 그러한 왕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북이스라엘은 매번 반란이 일어나 왕이 교체되고 하는 일들이 많았죠. 심지어는 5일동안만 왕을 하고 또다른 반란으로 목숨을 잃은 왕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죄도 많고 일도 많은 나라이다보니, 북이스라엘은 먼저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그 몰락을 이끈 사람이 바로 앗수르 제국의 살만에셀이라는 왕이었죠.
살만에셀 왕은 당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한 후 결국 그곳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데려가죠.
오늘 본문 앞부분인 7절부터 보시면, 열왕기하 성경의 기록자가 왜 북이스라엘이 이러한 멸망을 맞게 되었는지를 기록했는데요, 하나님에서 떠나 이방의 우상들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슬픔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앗수르 제국에서 또다른 사람들이 북이스라엘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된 것이죠.
왜 앗수르는 그러한 일을 했던 것일까요. 이것은 앗수르 제국의 정복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장 잘해야 할까요? 뭐 당연히 일단 전쟁을 잘해야겠죠. 강한 군대가 있어서 전쟁을 아주 잘 수행해야 다른 나라들을 점령할 수가 있겠죠.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바로 통치의 기술입니다. 제국은 필연적으로 여러 국가, 여러 민족들을 다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스림은 거의 대부분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무릎을 꿇린 타의에 의한 지배이죠.
그러다보니 제국의 입장에서는 점령국 민족들을 잘 달래고 다스려야할 필요성이 있었겠죠. 그렇지 않으면 바로 반란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여러 제국들은 점령지의 반란을 다스리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합니다. 바벨론 제국의 경우에는 엘리트들을 포로로 데려가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벨론 일류의 교육을 주게 했습니다. 그렇게 점령지의 엘리트들이 바벨론식 일류 교육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바벨론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되겠죠. 그렇게 되면 그들을 다시 그 점령지로 돌려보내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 지역들에서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어들겠죠.
그렇게 엘리트로 뽑혀간 자가 누구에요? 바로 다니엘이었죠.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의 신하로서 여러 왕들을 섬기기까지 합니다. 그 외에도 에스라, 느헤미야는 포로로 끌려갔다 귀환을 하여 이스라엘 땅에 성전과 성벽을 다시금 짓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앗수르는 어떻게 했을까요? 그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앗수르로 포로로 잡아갔다고 했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포로로 떠난 백성들이 있던 지역에 자신들의 민족들도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선택한 정책이 뭐였기 때문이겠어요? 민족 혼합정책입니다.
사실 반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들이 이 국가의 백성이 아니라는 자의식이 있어야 해요. 자신들은 빼앗긴 나라가 있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겠죠.
제국의 입장에서는 그 자의식을 흐릿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민족성을 옅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제국에서 민족들을 다 섞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자신들의 민족이 남지 않으니 뭐만 남겠어요? 앗수르 제국의 백성이라는 자의식만 남게 되겠죠.
그래서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지역에 자신들의 민족, 즉 이방민족들을 이주시켜 살게 한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살다보니 어떻게 됐겠어요? 점차 그곳의 이방민족들과 같이 살아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하겠죠. 결과적으로는 북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 그런데 북이스라엘 지역의 수도가 제가 아까 어디라고 했었죠? 사마리아라고 했습니다. 혹시 많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그렇죠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생각이 날겁니다.
그런데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하던 유대인들의 태도가 어땠나요? 그들을 천하게 여기고 그들을 싫어했었죠.
그렇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사마리아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였던거에요? 이방민족들과 결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어기고, 이방의 민족들과 피가 섞인 부정한 존재들과 같이 여겨졌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율법을 잘 따르고 지켜왔던 자신들과 저들은 다른 민족과 같이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포로 귀환 백성들의 성전 건축의 내용이 담긴 에스라 성경에도 이런 내용이 등장합니다. 4장에 그 내용이 있는데, 북이스라엘 지역에 사는 백성들이 에스라와 유대인들이 성전을 짓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니 같이 성전을 짓게 해달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뭐라고 하냐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딱잘라 보내버린 것이죠. 그러자 사마리아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합니다.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성전건축을 못하도록 한 것이죠.
결국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이러한 오랜 갈등의 씨앗이 어디로부터 시작된거에요? 앗수르 제국의 민족혼합 정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자. 그럼 이제 다시한번 요나에게로 돌아와봅시다. 요나 선지자는 언제 활동한 사람일까요? 학자들에 따르면 요나는 갈릴리 지역 사람으로서,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와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나서 이외에도 열왕기하에서도 등장을 하기도 하는데요,
열왕기하 14:25 NKRV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말씀에 등장한 것처럼 북이스라엘이 여로보암 2세 왕 때 국토를 회복할 것임을 예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뭐겠어요? 요나가 북이스라엘 백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신 거에요? 저기 니느웨 가서 거기가 멸망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하나님 말씀 전해서 회개하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거에요.
그런데 당시 북이스라엘의 상황에서 니느웨가 있는 앗수르 제국은 적국이거든요. 이후에 그 나라에게 멸망하기도 하구요.
북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뭐가 좋겠어요? 그 나라가 멸망하는게 좋겠죠. 안그래도 우리나라 괴롭히는 악한 나라인데, 잘됐다 그 나라 그냥 콱 망해버려라! 라는 마음이 생기겠죠.
요나도 동일한 마음이었던거에요. 그래서 자신이 회복의 말씀을 전했다가는 혹여나 정말 회개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회개하면 멸망하지를 않게 되니까 그러한 일말의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멀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던 것이죠.
바로 이것이 요나의 시작부터 등장하는 요나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던거에요? 요나와 달랐던 것이죠. 요나는 망하기를 원했다면,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요. 과연 우리라면 어땠을까.
자. 그것을 생각하기 위해 제가 한가지 역사적 사건을 여러분들께 던져볼게요. 바로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는 것인데요,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가 벌어집니다. 그로 인해서 신앙을 가진 많은 이들이 순교를 하니, 당시 신자였던 황사영이라는 사람이 중국으로 편지를 보내려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자신의 나라가 천주교를 박해하고 있는데, 청나라에서 힘을 써서 포교를 할 수 있도록 해주던지, 아니면 차라리 조선을 속국화해서 천주교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 아니면 다른 선교사들의 나라를 통해서 조선에 압박을 넣어 포교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가 도달 전에 발각이 되었고, 결국 황사영은 반란죄로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봤을때는 이분의 이 일이 어떻게 보이시나요?
물론 이분은 신앙을 위해 한다는 좋은 명분은 있었지만, 방법이 올바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선 왕실에 천주교는 이런 마음을 품은 좋지 않은 무리라는 인식이 생겨 더욱 박해가 가속화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가져야 하기에, 나라를 어떻게보면 팔아넘기는 일은 좋은 전도의 방법이 될 수 없겠죠.
다만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국가와 신앙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는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황사영의 경우에는 완전 신앙에 몰빵한 사람이었고, 요나의 경우에는 국가쪽으로 조금 넘어간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우리로 대입해봅시다. 여러분들이 일제시대에 산다고 생각해보자구요. 일제시대에 살다보니 아무래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겠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도쿄 가서 사람들 좀 구해라고 한다면, 어떤 마음이 생기겠어요?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네! 하고 갈 수 있을까요? 아마 쉽지는 않을거에요.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세상적인 생각과 마음의 결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있다면, 또한 그것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누군들 못 사랑하겠어요.
실제로 일제시대에 살았다고 할때, 일본 사람들이 원자폭탄을 맞고 많은 이들이 죽었을때, 아주 쌤통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찌보면 안타까운 죽음에도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제국이 행한 모든 죄악들은 벌을 받아야 하겠죠. 하지만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캠프를 통해서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한국인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를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이번 캠프동안 하나님이 택하시는 트리아제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나의 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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