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존재가치가 가장 빛날때는 바로 이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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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존재가치가 가장 빛날때는 바로 이때입니다
[서론]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단지 우리가 예수님 믿어 천국간다는 말일까요?
저는 그것이 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때 만드신 그 인간의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원형이 무엇인지 말해주는게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볼 시편은 성도들이 성전에 들어가며 드리는 찬양입니다.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갈아가며 드리는 칸타타 형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예배 시작때 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1-3절 앞부분을 선포하면 여러분들이 3절 뒷부분으로 응답하시고, 제가 4절을 선포하면 여러분들이 5절로 응답하시면 됩니다.
이 시편을 보면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한 어떤 사람의 고백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시편의 배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상황이 있습니다.
시편이 총 5권으로 엮여있는데 그 중 4권이 90편부터 106편입니다.
4권의 주된 내용이 바로 포로로 끌려간후 그들이 부르는 찬양입니다.
시편 안에도 이런 큰 스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자신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 무너졌지만 과거에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며 찬양하던 모습을 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망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편을 볼때 주목해야할 단어들이 있습니다.
동사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시편에는 7개의 주된 동사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에 동그라미 치면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절입니다.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첫번째 주목할 동사는 ‘환호성을 올려라‘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찬송을 부를지어다’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1절을 히브리어 성경순서로 바꿔보면 이렇습니다.
‘찬양하라 여호와께, 온 땅이여’
뭔가 느낌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 시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첫번째 명령은 바로 찬양입니다.
온 땅에게 주님을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온 땅이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가리키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지, 믿는 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만 찬양할 의무가 있는게 아닙니다.
믿든 안 믿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의무가 있습니다.
장로교에서는 교리문답교재로 사용하는 소요리문답이라는게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우리 인간의 제일되는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찬양과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 위해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할때 사람으로서 가장 존재 가치가 빛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찬양 사역자들만 가장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또는 우리가 매순간마다 찬양만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찬양은 주일날 드리는 예배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될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는 소명에 맞춰 살아갈때 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 삶의 지휘자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갈때 우리 삶은 그 분에게 찬송이 됩니다.
음악가의 존재가치가 가장 빛날때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줄때입니다.
의사의 존재가치가 가장 빛날때는 사람을 잘 고쳐줄때입니다.
이처럼 우리 입술의 찬양이 우리의 삶으로 이어질때 우리의 존재가치가 가장 빛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오늘 시편은 우리에게 즐겁게 기뻐하며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합당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찬송을 부를때 마땅한 우리의 태도는 기쁨입니다.
기쁨이란 내 마음을 지배하는 강한 감정입니다.
또한 그것이 내 몸으로 표현될수 밖에 없는 감정입니다.
마음도 없이 단순히 입으로만 부르는 것을 찬송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떤지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2절입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올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거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두번째 동사는 ‘섬기라’입니다.
어떻게 섬기라는 것입니까?
기쁨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단어는 흔히 예배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영어로 worship service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서비스라는 단어와는 뉘앙스가 다릅니다.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를 살려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순종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내 왕이자 내 주인으로 삼아 그에게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그 분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섬길때 중요한 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사랑의 대상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왕되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강요로 하는 예배, 기쁨이 없는 찬송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이제 세번째 주목할 동사는 ‘나아가라’입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합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야 우리는 예배할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나아가라는 것입니까?
노래하면서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교제할수 있는 식사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자리는 정말 끔찍합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하늘 잔치에 초청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그 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를 왜 자신의 잔치에 초청하시는 것일까요?
3절입니다.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네번째 동사는 ‘알라’입니다.
‘알라’는 단어가 7개의 동사들중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만큼 7개 동사들의 핵심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알다’라는 동사는 부부 사이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한 침대에서 자는 부부처럼 매우 친밀한 경험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알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알기에 그 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 부르는 찬양은 공허한 메아리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분을 아는 자들이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셨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우리를 죄가운데서 구원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온 땅의 백성들이 이러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양이라고 부르십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처럼 친밀한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에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제가 1월에 시편 23편을 계속해서 예배시간에 선포했습니다.
올 한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시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고 돌보시는 선한 분이시라는 믿음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4절입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거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뜰 안으로 들어가 그 분을 찬양합니다.
여기서 다섯번째 동사가 등장합니다.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분의 임재가운데 성문으로 그 분의 뜰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분이 계시는 곳에서 그 분을 만나며 그 분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분의 임재를 경험할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임재가운데 육체의 치유를 경험하기도 하고, 상한 감정의 치유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깨닫지 못하던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사는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여섯번째 동사입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감사를 잊어버릴때가 많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면 불평과 불만 비판만 많아집니다.
그럴때 우리의 예배가 다시금 감사를 회복시켜 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에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입니까?
5절입니다.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그의 성실하심 대대에 미친다.
여기에 세가지 형용사가 등장합니다.
선하신, 인자하신, 성실하신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인자하신 분이라는 단어가 바로 히브리어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일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했을때 중재한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의 성품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그때 모세가 물고 늘어진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헤세드,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랑에는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그 분의 헤세드가 아니라면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고 용서받을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분은 언제나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 인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 분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분의 나라를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통로로 쓰임받는게 바로 교회입니다.
그 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질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임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