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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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삼상22:1-2)
과거 코로나를 지나면서 참 의미있게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가 이진희 목사님이 쓴 책 가운데, 광야를 읽다라는 책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 책이 참 많이 힘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대목을 읽어보겟습니다. 성공학이나 처세술, 자개개발에 관한 책들은 한결같이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한다. 그러나 성경은 정상에 자리에 오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떻게 광야 길을 무사히 걸어갈 수 있는 지,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지를 이야기한다. 인생이 산을 오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별로 이룬 것이 없는 우리는 실패자이다. 그러나 광야를 무사히 지나는 것이 성공이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참 의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군가 다윗이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는다라면 다윗은 바로 광야를 알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다윗을 생각하면 왕을 생각하고, 골리앗을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다윗은 더 많은 세월을 광야에서, 학자들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짧게는 10,13년의 광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광야를 만나면 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광야를 만나서 인생이 새롭게 된 사람도 있지만, 광야를 만나서 완전히 인생이 끝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키일까요? 저는 새해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사람들은, 물질, 사업, 건강의 광야가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광야를 잘 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 광야를 통해서 여러분이 더욱 새롭게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광야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새롭게 알아야 할까요? 아니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고 있는 다윗을 왜 택하여 쓰셨을까요? 1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는 광야를 만났던 사람들이 다 위대한 사람들이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광야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쓰임받는 위대한 종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요. 다윗에게는 광야가 있었습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13년 동안의 광야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광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아둘람굴입니다. 삼상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자 먼저,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여기서 그곳은, 지난 시간 보았던 골리앗의 고향 가드라는 곳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미친체하며 수염에 침을 흘렸던, 수치의 현장입니다. 이런 그가 아둘람굴로 갔습니다. 아둘람굴이 다윗의 피난처가 된 것입니다. 실제 아둘람의 뜻(피난처, 은신처)라는 뜻이 있습니다. 저는 2004년에 이 아들룸 굴을 가보았습니다. 다윗의 아둘람굴이 어떤 굴이었을까? 자료화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큰 언덕에 같더니, 갑자기 굴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이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동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니, 정말 절대 암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뭘 말해줄까요? 사람이 보통 망하면 혼자 망합니다. 그래서 그 소식도 잘 알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짜 쫄딱 망하면, 모든 가족이 함께 내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당대 최고의 선지자였던 사무엘에게 기름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을 받으며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이랬던 다윗이, 당시 광야중의 광야였던 아둘람굴로 내려왔습니다. 자기만 온 게 아니라 부모님 현제 다 내려왔습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니 그런데 다윗은 이 시간을 통해 누구를 만났을까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실제 그랬을까요? 실제 그렀습니다. 시63편은 표제어가 이렇습니다.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시63:1-2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자 말씀에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O God, you are my God,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이와같이 성소에서, 여러분 지금 다윗은 광야, 아둘람굴에 있는데 이 곳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이와같이 성소에서, 여러분, 맞습니다. 비록 광야이고, 망해서 간 곳이지만,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임재를 만나면 거기가 바로 여호와의 성소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새해 여러분의 인생의 광야, 그게 무엇이든, 그곳을 통해 나의 하나님, 진짜 내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앞서 언급한 이진희 목사님의 책(광야를 읽다)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광야는 파종할 곳이 없다. 씨를 뿌릴 수 없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다. 모든 것이 없는 것 투성이다. 우리는 광야같은 인생 길에서 생각한다. 왜 이렇게 나한테는 없는 것뿐인가? 저축한 돈도 없고, 은퇴연금도 없고, 보험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고 끔찍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정말적인 광야에 딱 하나 잇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이다. 여러분 맞습니다. 인생의 광야는 파종할 곳도 없고 씨뿌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이런 광야에 딱 하나 있는 것이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이 광야에 계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새해 여러분의 인생의 광야가 있다면, 그게 사업이든, 직장, 물질/건강이든, 그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고백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고 있는 다윗을 왜 택하여 쓰셨을까요? 1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2 광야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공식)을 배웠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요.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한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여든 사람들이 참 좀 이상합니다. 삼상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자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한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그가 아둘람 굴로 숨어 들었는데, 모여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환난 당한 모든 자, 빚진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자, 이런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모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고, 이제 왕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왕은 고사하고 광야의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런 그에게 모여든 사람들은 다 환란 당한자, 빚진자, 원통한 자가 모였습니다. 이 말을 쉽게 풀이하면 다윗의 인생에 하나 도움이 안되는 인생들만 모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이 한 주간 많이 묵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세상적으로 형편없이 보이고 부족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말도 안되는 답답한 인생들을 통해서도 능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이번주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첨부터 알았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윗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내게 무슨 쓸모가 있겠나, 짐만되는 게 아닌가? 근데 여러분, 인생은 모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대부분 일등 공신이 어디서 나오는가하면, 바로 이 다윗의 아둘람굴 출신들입니다. 다윗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자가 바로 여기 아둘람에서 나옵니다.
실제 그럴까요? 한 예로 삼하23에 보면, 다윗이 어느날 부하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블레셋 땅에 있는 베들레헴에 있는 물이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다윗의 부하 세명이 거기 가서 물을 떠옵니다.그런데 다윗의 그 물을 먹지 못합니다. 삼하 23:13,15-16)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목숨걸고 물떠오니까, 차마 다윗이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께 붙습니다. 새해, 만남의 축복, 동역자의 축복, 사랑하는 여러분, 새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만남의 축복이 아닐까요? 새로운 일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함께할 수 있는 동역자, 정말 나와 같이 마음을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동역자, 이런 동역자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새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나라/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이 아닐까요? 세상나라는 똑똑한 사람, 학벌,빽,능력좋은 사람이 쓰임받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렇게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이런 자들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 만나게 하셔서, 세상에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그런 모습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제가 개척하면서 가졌던 꿈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똑똑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들이 쓰임받고 인정받지만, 우리가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좀 부족해도, 연약해도 쓰임받을 수 있는 교회,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족해 보이고, 좀 답답해보이고 한심해 보여도, 이런 사람들이 여기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받는 공동체, 저는 우리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목사님 제가 그런 사람(인생) 되길 원합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비전/꿈이 되길 축복합니다.(옆, 부족해도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을 왜 택하여 쓰셨을까요? 1 광야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이기 때문. 2 광야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원리)을 배웠기 때문. 3 광야를 통해 진정한 도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십시요. 다윗이 지금의 아둘람굴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윗이 궁지에 몰리자, 유대 땅을 떠나 이방의 땅, 모압으로 나아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통해 이방의 땅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의 땅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삼상22:4-5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자 여기서, 다윗이 간 곳이 어디입니까? 헤렛 수풀입니다. 요단 바로 동편입니다. 여기가 어딘가 사실 이렇게 말해도 여러분이 전혀 잘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한국 지도로 생각하면, 포항의 호미곳, 여러분 무슨 이야기일까요? 다윗이 주님이 말씀하셨지만, 순종해서 같지만, 다윗이 내륙 깊숙이까지 가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하고, 그리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주, 이런 다윗에게 또 한 번의 도전이 있습니다.
특히 이런 다윗이 삼상23장에 가면, 어떤 사람들이 와서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일라 사람들을 쳐서 포로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그일라가 어떤 곳인가하면 한국지도로 말하면, 대전같은 지역입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내륙깊숙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상23: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번 지금 쫓기는 중이니 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다. 2번, 그래도 주님말씀이니까 도와주러 간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할까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순종해서 그일라 땅으로 내려갑니다.
저는 한 주간 이 부분이 참 많이 묵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다윗에게 이 도전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다윗의 위치는 아둘람굴입니다. 자기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든데, 하나님이 가라하신다고 순종한다, 이건 정말 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3절에 보면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도 다 만류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결단합니다. 전 이게 다윗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주님 말씀하실 때 꼭 모든 성공과 성취 다 보장되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손익계산 따지지 않고 주님 말씀앞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새해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삶도 바로 이런 도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꼭 모든 성공, 모든 결과가 보장되어서 따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 믿고 나아가는 믿음의 도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주신 결과가 무엇일까요? 5절에 보면, 다윗이 그일라 주민을 결과적으로 구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일로 인해서 다윗은 굉장히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전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전 이때 하나님의 마음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일까요? 전 이 장면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와는 전혀 다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어렸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를 때입니다. 하지만 지금 다윗은 다릅니다. 가족도 있고 부양해야 할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패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도 알고 있을 때입니다. 하지만 모든 성공/성취가 다 보장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님말씀 순종할 수 있는 삶, 이게 성공/실패냐를 떠나서 이게 주님의 뜻/아니냐를 묻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는 삶, 전 여러분삶이 이런 삶이길 기도합니다.
마무리 반주, 얼마전 한 후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참 제가 많이 아끼는 후배인데, 지구촌 초장기부터 저랑 같이 교제했고, 최근에는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홈스쿨링도 아주 잘 감당을 했던 목회자입니다. 이런 후배가, 최근에 개척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번 보자고 해서, 오랫만에 만났는데, 담임목사님이 만류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역이 전성기고, 개척도 시기적으로 넘 어렵고, 이미 다른 분이 개척 지원이 있어서 또 다른 개척 지원 상황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마음에 결정을 하고 사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물었습니다. 주목사, 꼭 지금이냐? 좀 있다가 해도 되잖아? 너, 실패해도 갈거야? 고개를 끄덕이기에 저도 더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내가 신뢰한다는 것은 결국 3가지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계획. 둘째 방법. 셋째, 결과 저는 결국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이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뭐가 가장 힘들까요? 저는 다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후배가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서,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하나는 안타까운 마음, 결혼하고 아이도 있고 정말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 저는 이 후배 목사님을 통한 도전과 감동입니다. 누가보아도 대형교회 있으면 더 안정적이고 쉽고 편한 길이지만, 그 길 내려놓고 말씀앞에 인생을 던지는 삶, 누가보아도 성공/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삶이지만, 말씀앞에 인생을 던질 수 있는 삶, 전 여러분의 삶이 이런 삶이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게 성공/실패냐로 묻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냐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no하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yes하고 가야하는 길, 그게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인 줄로 믿습니다. 전 새해 여러분의 삶이 이런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성공/실패를 먼저 묻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의 뜻이면 인생을 던질 수 있는 삶, 그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길 축복합니다.
이번 주 이런 후배목사에게 카톡 하나를 보냈습니다. 주목사야, 아침에 기도한다.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심을 믿는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를 떠나 주님을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는 삶되길 기도한다. 답이 왔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하신 주님을 따라 후회없는 목자로 살고 싶습니다!! 이 문자 하나가 저에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 이 목사님과 제가 귀한 찬양 하나로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2) 내가 걸어온 모든 시간 다 주의 은혜니 내가 걸어갈 모든 날도 주만 섬기며 살리 오직 예수 이름 부르며 살아가리라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의 내일이 성공과 성취, 모든 결과가 다 보장되지 않는다할지라도, 나를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고 찬양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일의 성공과 실패를 먼저 묻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뜻이기에 믿음의 진정한 도전 있는 삶, 그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