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누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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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뉘이신 그대로 죽으셨다.

우리 이렇게 고백해 보겠습니다.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복음인 예수님이 내 삶에 아름답게 일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우리 모든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성화 하나를 보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성화들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성화의 그림입니다. 예수님이 보통 천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구유가 나무로 만든 상자나 갈대상자로 만든 곳에 있습니다. 성화는 분명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때로는 이런 성화가 성경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놓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보편적인 성화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탄생이 아닌, 성경이 철저히 고증하는 성경속에 예수님의 탄생을 여러분과 함께 목도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탄생이 가지는 참된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누가복음 2장 8절입니다.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목자들이 밖에서 양 떼를 지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 본문을 보면서 오해하기를 자신의 양을 밤새도록 지키는 목자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목자는 사실상 자신의 양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목자들은 낮에는 자신의 양을 데리고 다니면서 풀을 뜯고 물을 먹입니다. 밤이 되면 마을 공동 목장에 양을 맡기고 쉬게 됩니다. 그때부터 이 양들은 마을에서 고용한 목자들을 통해 맡겨지게 됩니다. 이 목자들은 사실상 자신의 양들이 아니기에 목적은 하나입니다. 밤까지 아무 탈 없이 이 양들을 잘 보호하다. 낮에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고용된 목자들의 본래 직업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생활이 어렵기에 밤에는 이런 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질흙 같은 어두움에서 양들을 지켜야 했습니다. 밤에는 두 존재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맹수입니다. 또 하나는 강도입니다. 밤에 양을 지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 목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깨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밤이라는 것이 중의적 의미를 가집니다.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 밤은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며, 낮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열망이 담긴 시간입니다.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 밤은 불의와 불법이 자행되는 시간입니다. 절망의 시간이며, 고통과 슬픔의 시간으로 사탄이 지배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가가 밤에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마치 이 시대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유대 땅은 그야말로 절망이었습니다. 로마가 유대를 지배하고 있었고, 저번에도 이야기 했듯이 가이사라는 자는 자신이 신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 권력에 기생하는 헤롯이 통치하는 유대 땅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에 대한 바른 소리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 뒤에 숨어 온갖 이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신음은 더 깊어져만 갖습니다. 마치 오늘 밤에 서서 이슬을 온몸으로 막아내야만 하는 목자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복음 2장 9~10절입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각 유대 지역을 관할하는 목자들 앞에 주의 천사들이 옆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은 낮보다 더 환하게 바뀐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을 우리가 겪는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더욱이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 당시 사람들은 천사를 만날 때 자연히 갖는 생각이 있습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두 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심판과 저주의 메시지, 또 하나는 복과 평안의 메시지입니다. 이 가운데 어떤 메시지가 전해질지 알수가 없으니 앞에 사가랴와 마리아와 같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이야기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온 백성에게 미칠 어떤 소식입니까?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큰 기쁨이라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흘러나오는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의 소식을 누구에게 전한다고 이야기합니까? 너희는 단순히 목자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이땅의 온 백성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복음을 이야기하니깐 많은 경우 복음은 기독교 산물이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였습니다. 이 복음은 특히 로마 황제 가이사가 세상을 지배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이기거나, 황제의 자녀가 태어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일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기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하나님은 그대로 채용해서 천사들을 통해 선언하십니다. 지금까지는 한계가 있는 기쁨의 소식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되는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다 하고 말입니다. 그 소식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장 11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이 제일 먼저 경험을 했을까? 한 가지 이유는 분명 그들은 그 당시 가장 천한 자들이었기 때문이 맞습니다.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양을 지키는 목자입니다. 다윗이 원래 직업이 무엇입니까? 목자입니다. 누가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제는 이 땅의 참된 목자로 오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에서 올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항상 다윗을 그리워하면서 자신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할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윗 시대에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통치가 안미치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을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의 영원한 목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 목자는 오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장 27~28절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는 방식을 보면 세상의 관점으로는 정말 막무가내입니다. 그냥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 제자들을 예수님을 따릅니다. 왜 그랬습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참된 목자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실 목자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누가복음 2장 12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이 본문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묘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누가는 이 본문을 그렇게만 기술한 것이 아닙니다. 이 당시 아이가 태어나면 아기 주의를 천으로 휘감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유는 이렇게 하면 아이의 다리가 튼튼해질 것이라는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아이가 천에 둘둘 말려있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구유라고 하면 나무로 돈 통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서민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돌에 중간을 파서 만든 돌구유입니다. 그 곳에 지금 천에 둘둘 말려져서 누워계시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이 연상이 되지 않습니까? 눈치 채신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52~54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세마포는 바로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움직이지 못하게 싸는 재료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뉘이신 무덤 또한 돌을 깎아서 안에 내부를 비우는 방식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이 기쁜 이유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관련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1~12절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이 본문을 읽으때 대부분은 양을 버리고 가는 목자는 정말 나쁜 목자야 하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유대인의 법을 잘 안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본문을 보면 삯꾼 목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이 양은 자신의 양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삯꾼 목자들은 일정한 보수를 받고 마을에서 고용된 목자입니다. 그런 목자들은 한두마리의 맹수가 오면 싸워야 합니다. 맹수가 떼로 덤비는 경우 빨리 양을 버리고 도망을 가야 합니다. 맹수가 많기에 양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법적으로 처분을 받지 않습니다. 삯꾼 목자는 이 당시 보수를 받는 일반적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반적 목자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목자는 이 당시 세상에 없는 목자입니다. 그런 목자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우리에게 찾아온 기쁨의 소식, 즉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참된 목자가 된다는 소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 약속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주어진 기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 받은 큰 기쁨이라면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이 기쁨의 소식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나 쉽게 우리가 받은 이 기쁨의 소식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예수가 밥먹여주냐? 예수 믿으면 뭐 좋은 것 있어? 하고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무엇이 좋은지 아십니까?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11절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오늘 다윗의 동네에 우리를 위해 누가 나셨다고 이야기합니까? 구주가, 구주라는 말은 죄와 사망이라는 마귀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우리는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마귀의 손에 놀아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마귀가 끌고 다니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자신을 상하게 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이제 마귀가 함부로 끌고 다니지 못하도록 마귀의 결박을 끊어낸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끊어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끊어낸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산다는 말입니까? 마귀에게 끌려 다니는 인생을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영적인 실체가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는 예수를 안 믿어도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영적인 눈을 떠서 정확하게 보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자신의 손과 그 사람의 손을 사슬로 연결해 놓았습니다. 마귀는 정신없이 세상에서 끌고 다니면서 진을 다 빼놓습니다. 어찌 기쁨과 자유함 평안이 있겠습니까? 이런 영적인 실체가 보여야 합니다. 이게 보이면 예수를 안 믿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전도하지 않고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2월 첫째 주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2월 달 한달 동안 전도할 대상자를 찾아내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이 영혼을 찾아내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기진한 사람들을 찾으면 됩니다. 어떻게 찾냐구요? 이런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뭔가 재미도 없고, 왜 사는지도 모르겠어요. 뭔가 바쁘게 사는데 뭐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하는 사람들을 찾으면 됩니다. 그들이야말로 정말로 예수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이 사단과 우리가 연결된 결박을 끊었는데 그것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단과 결박은 끊어졌는데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형편에 있는 분들이 있다면 눈을 떠서 바로 보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마귀와 연결된 사슬이 없습니다.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우리를 이끄심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을 예수님이 붙잡고 함께 가자 하면서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떨까요?
누가복음 2장 13~14절입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목자들 앞에 나타난 천사들이 이야기합니다.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본문은 이중적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심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생전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5~16절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기 전에는 우리는 영광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 구약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극히 한정적이었습니다. 영광을 돌리는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렸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제 마귀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어떤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입니까? 믿으십니까? 죄에 넘어질때마다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세현아 너는 죄를 짓지 않는 정도가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는 존재야”하면서 말입니다. 첫 번째가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면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평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람들 사이에 잘 지내는 것을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평화는 그 정도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단어는 화해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제일 먼저 이 화해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본래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에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예수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관계로 완전히 사이가 바뀐 것입니다. 이런 관계의 전환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는 사람들의 화해로 연결됩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죽을죄에 대한 댓가를 탕감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예수를 믿으면 원수가 없어집니다. 용서가 당연해집니다.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 은혜가 경험되어 지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시한번 우리를 죽으러 이땅에 오신 성탄의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어떤 사람이 죽으러 태어나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안다면 우리의 삶은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는 정도의 삶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복음을 전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삶으로 말입니다. 이 삶의 모습이 있습니까? 우리를 점검하고 돌이키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단의 찬양하겠습니다. (내 삶을 깨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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